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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열매를 맺으라.

Joyfule 2014. 11. 12. 10:08

 

  기도 - 신상래 목사

 

 기도의 열매를 맺으라.

 

 우리는 남에게 보여주는 신앙행위를 좋아한다. 주일성수와 십일조, 각종 봉사는 기본적인 덕목이고 새로운 신자를 교회에 데려왔다면 금상첨화이다. 새 신자가 다른 교회에 다녔던 신자이든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신자이든, 그게 중요하지 않다. 목회자들과 다른 교인들에게 새 신자를 전도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고 덕담을 듣는 게 뿌듯하다. 아마 머릿속에는 천국의 게시판에 포도알 스티커가 큼지막하게 붙여지고 있다는 상상에, 천국에서 받게 될 면류관과 엄청난 상급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기도행위에도 다르지 않다.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면 엘리트 교인이다. 교회에서 요청하는 각종 기도회나 가끔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라고 하고 왔다면 목에 힘을 주고 표정관리를 해야 할 지경이다. 교회에서는 기도의 용사라는 칭호가 붙여지고 중보기도를 부탁하려는 이들이 줄을 선다. 이런 대접이 나쁘지 않다. “그럼, 내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 사람인데, 몰라주면 서운하지.”라고 속으로 생각하기 일쑤이다.

   눅 13: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열매라는 말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위의 말씀처럼 주인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베어버리겠다고 한다. 이러한 투의 경고는 여기에만 있는 것만 아니다. 예수님도 열매를 맺지 않은 가지는 아버지께서 베어버린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있다.(요15:2) 모든 신앙의 행위에는 열매가 있다. 기도도 그렇다. 그렇다면 희생적인 기도행위를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도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어 있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불과하다. 곧 찍혀 베어질 운명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풍성한 열매를 맺기보다 남에게 보여주는 기도행위에 더 열심이다.

기도의 열매란 무엇인가?

열매란 오랜 노력의 결과를 함축한 말이다. 고등학생이 3년을 열심히 공부하며 바라던 명문대학에 들어갔다면 그동안 수고의 열매를 얻었다고 칭찬할 것이다. 그 어렵다는 사법, 외무, 행정고시에 합격해도 고향마을 입구에는 현수막이 걸리고 부모는 기쁨을 가누지 못해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라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무런 열매도 없이 쓸쓸하게 사라진 이들도 적지 않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열심히 수고했더라도 열매가 없다면 아무런 보상도 없고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이를 아는 가족과 지인들만이 안타까움을 더할 것이다. 더욱 실망스러운 사실은, 허탈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오랜 시간 새벽기도회의 시간을 맞추려 단잠을 억지로 깨야했고, 교회의 각종 기도회에 참가하려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했다. 더러는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의 배고픈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그렇지만 간절하고 희생적인 기도에 대한 결과 없다면 허망한 일이다.

기도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종교적인 수단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특별한 방식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육체적인 방식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 방식으로 만나야 한다. 또한 기도의 기본적인 토대는 우리가 원하는 사항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일이다.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려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일이다. 기도의 삶이란 이렇게 찬양과 감사, 회개와 요청을 통하여 끊임없이 성령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비로소 그분의 도움이 내려오고 기도가 응답이 되며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행복한 인생

평안하고 행복한 삶은 누구나 꿈꾸는 인생이 아닌가? 이러한 삶은 은수저를 입에 물로 태어난 억만장자라도 쉽지 않다. 로또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그 예이다. 수십억원의 당첨금이 독이 되어 인생을 망친 이가 적지 않다. 그렇지만 그 교훈을 얻지 못한 대다수의 서민에게는 인생역전을 한방에 가능케 해주는 마법으로 여기고 있다. 돈은 많지만 원만하지 못한 대인관계, 폭력적이며 피해망상적인 성격, 지난한 질병, 정신질환,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가족, 막강한 사회제도, 예측할 수 없는 자연과 금융환경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원천이다. 그렇지만 연약한 의지와 한계를 지닌 부족한 인간으로서 이런 것들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그래서 부자이든 가난뱅이든 삶은 고되고 팍팍하다. 가끔씩 좋은 일도 있지만 잠시뿐이다. 또다시 무료하고 고단한 시간으로 인생을 채울 뿐이다. 차라리 불행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운명이라 여기며 매일처럼 소주를 털어넣고 사는 게 속 편하다.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기도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수단이다. 기도에 성공했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불안하고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할 때마다 여전히 부와 성공을 원하는 기도만 주구장창 반복하고 있다면 아직 멀었다는 증거이다. 봉건시대에서 왕자로 태어났다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혈통이 부와 권력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왕자라도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생기거나 이 땅을 떠나가면 무용지물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에게 천국을 약속하셨고 이 땅에서도 항상 동행하시고 돌보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한 믿음의 원칙이 바로 기도의 통로를 통해서이다. 그래서 비록 가난하고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살더라도 가슴한 구석에는 이러한 뿌듯함과 기쁨이 항상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행복의 조건이 아닌가? 행복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항상 기쁨과 평안을 공급해 주시고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돈이 하나님보다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시대를 가리켜 황금만능의 물질주의 시대라고 불린다. 돈이 부족하다면 삶이 불편하고 불평스럽다. 크리스천일지라도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보다 돈을 벌고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렇지만 세상의 물질이나 세속적인 조건으로 채우는 삶은 만족이 없다.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더 많은 갈증을 유발할 것이다. 진정한 평안과 행복한 삶은 세상의 주권자인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삶이다. 그게 바로 기도로 이루어지고 기도를 통해 내려온다. 오랜 시간 기도할지라도 평안이 찾아들지 않고 희생적으로 기도했을지라도 행복이 깃들지 않는다면 열매가 없다는 반증이다.

 

평안하고 행복한 삶은 소원하던 욕망의 목록이 채워진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가난해도 마음이 평안하고, 삶이 보잘 것 없어도 잔잔한 행복이 넘쳐난다면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님과 깊게 친밀하게 교제하는 경지에 이르면 불투명한 미래로 걱정하고 염려하는 일도 없으며 부족한 수입 때문에 짜증을 내거나 실망하지도 않는다. 절제와 자족함을 몸에 배어 부족하지만 만족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 또한 물질적인 풍요를 기쁨의 조건으로 삼지 않으니 빛나는 가난을 뽐내며 살수도 있다. 세속적인 눈으로는 도저히 꿈꿀 수 없는 일이다.

응답 받는 기도

간절한 기도 끝에 응답이 왔다면 신나고 행복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연일 입이 벌어져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싱글벙글거린다. 기도응답의 사건이야말로 크리스천의 특권이 아닌가? 필자가 처음 교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 것도 누군가의 전도가 아니라 기도가 응답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도가 응답되는 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다. 그렇지만 성경의 약속과는 달리 기도응답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희생적인 기도가 전부가 아니다. 그렇다면 깊은 산중의 기도원에 들어가 오랜 금식기도에 몰입하는 이들의 기도는 전부 응답이 내려와야 될 것이 아닌가?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된 순서로 응답이 오는 것도 아니고 교회 직분이 무거운 순서는 더더욱 아니다. 기도응답의 조건은 여러 가지이지만, 결국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하는 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게 아니다. 희생적인 기도에도 쭉정이 뿐인 이들도 있고, 짧게 기도해도 열매가 풍성한 이들이 있다.

   마 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수많은 기도를 하게 된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이루어야 할 목록들도 많다는 것일 게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기도응답을 받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런 응답이 없다. 기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하나님의 뜻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도가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져 응답을 받아 누리는 자는 많지 않지만, 그런 사람이 되었다면 앞으로의 기도 역시 대부분 응답이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응답이 오지 않은 사람들은 앞으로의 기도도 여전히 응답이 없을 확률이 높다. 말하자면 기도내용에 따라 응답의 여부가 달려있는 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오랜 기도에도 응답이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은 결과로 응답이 오기 시작한다면 드디어 기도열매가 맺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거꾸로 그동안 기도응답이 많았지만 웬일인지 기도응답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면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기도응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기준에 합격했다는 의미이고, 그렇다면 다른 기도도 역시 응답이 올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기도응답이 없다면 여러 자격에 미흡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보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곰곰이 살펴보고 고치도록 애써야한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자신의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고집스럽게 응답하시지 않으시는 분이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삶의 지난한 문제가 생기면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오랜 기도에도 응답이 없으면 실망스러워하며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기도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희생적인 기도로 일관한다고 응답이 금방 내려오지 않는다. 기도응답이 오려면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한다. 소나기처럼 들쭉날쭉 하는 기도가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꾸준히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탐욕스런 성품도 내려놓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오랜 기도에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믿음을 보여주는 모습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사실 응답의 시기는 기도의 내용에 따라 다르다. 다급한 것은 빨리 들어주시고, 훈련이 필요한 것은 더디게 들어주신다. 우리가 닦달한다고 원칙을 바꾸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래서 응답이 기도의 열매인 셈이다. 일단 응답이 내려온다면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고 기뻐하신다는 반증이다. 물론 응답이 더디 오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여전히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 그래서 탐스러운 열매를 맺으려면 자신의 노력이나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