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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사용 설명서

Joyfule 2014. 11. 14. 10:13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기도 - 신상래 목사

 

 

기도 사용 설명서

 

벌목을 직업으로 하는 어떤 사람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톱이 잘 들지 않자, 시내로 톱을 사러가서 직원이 권해주는 최신형 톱을 아주 비싼 돈을 주고 사갖고는 흥이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일주일 뒤에 화가 잔뜩 난 채 아주 피곤한 모습으로 톱 상점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직원을 불러대고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의 얘긴즉슨, 톱이 무겁기만 하고 나무가 잘리질 않는다는 거였다.

 

그러자 그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톱을 받아들고는 시험을 해보았다. 그는 톱을 가져다가 콘센트에 코드를 꼽고는 전원스위치를 켜자 힘차게 톱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그 사람은 그 톱이 전기로 사용하는 전동톱인줄 전혀 몰랐다고 실토했다. 그동안 그 톱을 일반톱처럼 사용하니, 무겁고 힘들어서 비지땀만 흘리면서 끙끙대었지만, 나무가 전혀 잘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일이 기도에도 있다. 교회에 오면 사람들은 기도를 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다. 그래서 교회마다 여러 이름의 기도회가 있다. 가장 흔하게 듣는 게 새벽기도회이다. 금요심야예배를 드리고 나면 기도회를 갖기도 하고, 매일 저녁마다 기도회를 갖는 교회도 적지 않다. 직분이 묵직하거나 문제가 있는 교인들은 이런 저런 기도회에 참석해서 기도를 열심히 하곤 한다.

 

그러나 기도응답을 받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쉽지 않다. 성경에는 믿고 기도하는 것마다 받을 줄로 믿으라거나, 환난 날에 내게 부르짖으라, 네 입을 크게 벌라 내가 채우리라 등의 응답을 약속한 성경구절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는 데 아무런 응답이 없는 일들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럴 때마다 목회자에게 이런 상황을 토로하면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느니, 아직 때가 안 되어서 그랬다느니, 하는 상투적인(?) 대답이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야심차게 시도했던 기도는 실망과 한숨과 함께 내려놓기 일쑤이다. 개중에는 묵직한 직분을 가지고 있거나, 오랜 신앙의 연륜으로 기도회에 참석하는 습관으로 수십 년간 기도회에 참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사정은 별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 대부분은 야심차게 기도한 것들이 응답이 없고 열매를 맺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목회자의 답변대로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거나 때가 되지 않아서 일까? 물론 그런 이유도 더러 있겠지만,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답변은 아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연륜이 묵직하고 열정적인 신앙행위를 보여주는 이들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수많은 개척교회들이 교인이 없거나 재정이 부족해서 문을 닫는 현상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목회자들이 기도가 부족하고 믿음이 부족한 탓인가, 아니면 때가 아니어서 교회 문을 닫았다는 것인가? 그 대답은 성경에 명쾌하게 나와 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사는 시대는 성령의 시대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대로 간절한 기도 끝에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셔서 초대교회가 세워진 토대위에 지금의 기독교 교회가 자리 잡았다. 지금도 물론 성령이 우리네 교회를 이끄시는 시대에 살고 있음은 물론이다.

 

결국 정답은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냐에 달려 있는 것 아닌가? 예배의 마침은 축도로 끝맺는다. 그 축도의 내용 중에 성령이 교통하심이라는 말이 있다. ‘교통이라는 뜻은 헬라어인 코이노니아를 번역한 것인데, 그 뜻은 교제, 사귐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성령이 교제하심이 우리와 함께 있게 해달라는 기도가 바로 축도인 셈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드리는 기도에는 성령과 친밀하게 사귀고 깊이 교제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하나님께 맡겨놓았던 것을 달라고 듯이 아우성치는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성령과 깊게 사귀고 깊이 교제하는 기도는 기도에 몰입되는 기도를 말한다. 말하자면 기도에 집중에 되어 어디론가 쭉 빨려 들어가 있는 상태이다. 기도를 하지만 기도 안에 들어가 있어 자신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한다.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것은 물론 전율이 일거나 감정이 격앙되기도 한다. 머리가 느슨하게 압박받는 느낌도 좋은 기분이다. 이러한 상태를 경험하면 누구나 기도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두세 시간도 잠시 지나간 것 같다.

성령과 교제하는 기도가 바로 이런 상태이다. 이런 기도를 마치면 잔잔한 평안과 넘치는 기쁨이 두세 시간이상 지속된다.

입에서 찬송이 흥얼거리고 자신도 모르게 영으로 기도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하나님의 생각이 머릿속에 빼곡하게 들어가 있다. 마치 연애하는 상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하루 종일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는 하나님과 연애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이런 기도를 시작해야 비로소 기도의 강을 건너는 것이다. 기도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적어도 하루에 한두 시간 이상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다. 이런 기도의 강을 건너는 시간이 오래 되면 드디어 능력 있는 기도를 하게 되는 날이 온다. 성경에 약속한 각종 은사가 쏟아지고 기도응답이 급속하게 내려오며 지난한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

성경의 위인들은 이런 몰입의 기도를 했던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 성령께서 영음으로 기도의 가장 큰 포인트는 집중이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도에 몰입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기도를 시작하기 무섭게 자신의 기도목록을 외치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기도의 몰입이 무엇인가 알지도 못한다. 잘못된 기도습관이 기도에 집중하는 것은 막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몰입되는 기도를 시작하려해도 타성에 젖은 몸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또한 몰입되는 기도를 시작하면 악한 영의 공격을 받게 된다. 악한 영은 사람의 생각을 속이고 들어오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집요하게 방해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도를 시도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또한 몰입되는 기도는 평소의 분주한 삶을 내려놓아야 한다. 돈을 벌고 소비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이런 기도시간을 내지 못한다.

 

또한 정신적인 에너지를 뺏는 일들도 줄여야 한다. TV나 영화, 컴퓨터 게임, 스마트폰 채팅 등 정신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뺏는 것을 줄이지 않는다면 기도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졸리거나 잡념이 들어 기도에 몰입할 수 없다. 3학생이 게임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이성친구가 생겼다면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성령에 몰입되는 기도는 기도훈련이 필요하다. 기도의 강은 건넌 인도자가 일대일로 지도해주어야 그 강을 건널 수 있다.

 

이렇게 쉽지 않은 기도지만 이런 기도가 크리스천에게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라는 사실이다. 성령과 교제하는 기도를 해야 성령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천국을 볼 자가 없다는 말을 상기해 보라. 우리네 교회는 기도회는 많이 갖고 있지만 기도사용법에 대한 가르침은 없다. 성령과 교제하는 기본적인 기도사용법도 모르면서 기도를 하는 것은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고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사람과 같다. 가전제품은 작동이 안 될 뿐이지만, 이런 기도는 천국의 자격을 상실하게 하고 악한 영의 지배를 받아 생명과 영혼을 빼앗기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