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신앙인물

김용기 장로

Joyfule 2018. 9. 10. 08:28

 

김용기 장로

 

● 효율적 경제 위해 의식주개선부터

 

우리 가정의 생활원칙은 아버지가 처음 가정을 이루었던 때부터 계획을 세워 실천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가정의 생활원칙을 정한 것은 온 국민이 잘 사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우리 가족이 계획적으로 생활함으로써 그 모범을 보이자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가족은 땅을 개간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 땅이 기름지게 되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옮겨다녔으며, 또 어디에 가든 우리가 살 집보다 먼저 교회를 세웠다.

그래서 아침 기상과 동시에 그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고 그날의 일을 시작하며, 기도로써 그날의 일을 끝낸다. 이것은 우리 가족들이 잠시라도 신앙심을 잊지 않게 하려는 의도이며, 일상 생활을 기도와 감사의 마음으로 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교육도 반드시 신앙교육을 시킨 뒤에 생업을 위한 기술교육을 가르친다. 또한 우리 아들들이 교육이나 농촌 시찰 등으로 외국에 나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배워 가지고 오는 것은 좋지만, 그 대신 네 것(신앙심)을 놓고 와서는 안된다”고 이른다.

우리집은 아침 4시(겨울에는 5시)면 종소리에 맞춰 일제히 기상한다. 그 기상종은 아버지가 친다. 그 종을 치기 위해서는 가족들보다 10분쯤 먼저 일어나야 한다. 아버지가 먼저 일어나 종을 치는데 가족들이 안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기상과 동시에 예배를 드리고 운동과 집안팎의 청소, 세면, 식사를 한다. 8시에 식사를 끝내면 30분 동안의 휴식을 취하고 각자의 분담된 일을 시작한다. 일거리는 우리 가족 모두가 미리 생각하여 함께 그 계획을 세우고, 각자가 분담한다.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점심, 1시부터 2시까지는 라디오를 듣거나 독서를 하고, 2시부터 다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6시부터 7시까지 저녁식사, 7시에서 10시까지는 독서와 신문 읽기, 라디오 듣기 등 휴식을 취하고 10시에 일제히 취침한다.

 

● 식사기도 드리며 우는 사람은 첨 봤소

 

우리 집의 가계와 경제적인 책임은 모두 아버지가 맡았다. 그래서 우리집에서는 단 한 푼도 아버지의 승인없이는 지출이 되지 않는다. 40세가 될 때까지 교통비를 아버지께 타가게 했다. 쓰고 남은 돈은 반드시 반환해야 하는데, 약간의 훈련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부터 솔선하여 실천하니까 가족들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두 형님이 일본에서 개최된 동남아시아 농촌지도자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때 아버지는 정부에서 책정한 최소한의 여비규정에 맞춰 그 액수만을 형님들에게 주어보냈다. 그런데 정부에서 책정한 여비는 터무니없이 적은 액수였기 때문에 그들은 비행기로는 일본에 가지 못하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게 되었다.

그 배 안에서 점심을 사 먹는데, 벌써 호주머니 속의 달러가 많이 줄어든 기분이라서 앞으로의 여행기간 동안 그 돈으로 살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더라는 것이다.


낯선 이국땅에서 돈이 떨어진다는 것을 상상하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식사기도를 드릴 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눈물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다분히 섞여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들이 울며 기도를 마치고 눈물을 닦고 있을 때 노신사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기도를 드리는 거로 봐서는 크리스천인 것 같군요. 나도 크리스천인데, 지금까지 식사기도를 울면서 하는 사람들은 처음 봤습니다.”


그 노신사는 옆자리에 앉더니, 어디에 사느냐, 어디까지 무슨 용무로 가느냐를 낱낱이 물었다. 그래서 두 형님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 자신들이 울게 된 연유를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그 노신사는 감탄한 어조로 “훌륭하신 아버님이시고 훌륭한 아드님이시군요. 내 집이 시모노세키인데, 우리집으로 갑시다”하며 호의를 베풀었다. 그리고 두 형님은 노신사의 안내와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며, 무사히 교육을 마치고 돌아왔다.

경제생활은 의식주, 이 세 가지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효율적인 경제생활을 하려면 무엇보다 이 의식주의 비경제적인 면을 근본적으로 시정해야 한다.

 

● 구들장 문화

 

이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6~8시간을 자기 위해 방안을 온돌로 만들어 3인치의 돌(구들장)을 달구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 덕분에 산이 모두 벌거숭이가 되어버렸다. 그 폐해는 심각한다.

첫째, 몸이 허약해진다. 외국 사람들은 쉴 때 반드시 드러눕지는 않는다. 앉아서 쉴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방바닥이 따뜻하므로 누워서 쉰다. 편할지는 모르지만, 누워 있으면 기운이 탈진되어 또 다시 일어나기가 싫어지므로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또한 밥 먹은 즉시 누울 경우, 소화가 잘 안되고 척추의 발달에도 장애를 받는다. 라디오 소리도 누워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우리 가족들에게 라디오를 앉아서 듣게 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앉아서는 일을 할 수 있지만, 누워서는 일을 하기 어렵다는 거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에 비해 비활동적인 것은 바로 이 온돌의 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의 폐해로는 구들을 달구기 위해서 시골에선 대부분 나무를 구해다 땐다는 점이다. 그래서 산의 나무들을 장작으로 베게 되었고, 목재가 부족하게 되자 그 방면의 산업이 모두 위축되어 버렸다. 건축, 조선, 제지 등 산림 자원이 고갈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집에서는 온돌방을 폐지한 지 오래다. 그 대신 벽을 한 자 이상이나 되는 두꺼운 흙벽돌로 하였고, 창을 이중유리창으로 만들어 방 안으로 들어온 태양열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정히 추운 날이면 연탄난로를 피우면 되니 절약도 되는 것이다.

 

● 식생활과 의복의 개선

 

우리나라 국민들은 1일 3식을 하며, 쌀을 주식으로 한다. 그런데 그 쌀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기 위해선 매끼니 때마다 불을 지펴야 하며 음식을 끓이고 버무리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의 경우는 1주일 분량의 빵을 한꺼번에 구워 놓고 먹는다. 그리고 반찬을 만드는 시간도 그리 소요되지 않는다. 빵에 버터나 기름을 바르거나 고기나 야채를 살짝 데치는 정도의 조리를 하므로 부엌에서 해방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부라는 사람은 하루 진종일 부엌에서 빠져나올 틈이 없다. 갖은 반찬을 양념으로 버무리고, 끓이고, 볶고, 찐다. 그리고 밥을 먹고 난 다음에는 산더미같이 쌓인 밥그릇이며 반찬그릇 등을 씻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또 다시 다음 끼니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여자들은 일평생 부엌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들이고 노력해서 만든 우리나라의 음식들은 보기 좋고 가짓수는 많지만, 영양적인 면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은 원시적인 음식물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주식으로 먹고 있는 쌀밥과 보리밥의 경우, 겨우 껍질만 벗겨서 삶아 먹는 수준으로 이것은 아주 미개한 취식 방법이다.

왜냐하면 문화가 발달한 민족일수록 가공을 한 음식물들을 주로 섭취한다. 그들은 쌀, 보리, 밀, 콩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일단 빻아서 가루로 만든다. 그리고 다시 여러 가지 영양이 담겨져 있는 원료를 섞어서 반죽하고 구워서 먹는데 이러한 가루 중에서도 굵은 가루보다는 고운 가루일수록 맛이 좋고, 값도 더 비싸다.


그래서 우리집의 경우는 쌀이나 보리 등을 가루로 내어 빵을 해 먹는다. 여자들이 부엌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점도 있다. 우리집처럼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 집도 드물 것이다. 하루에 2·30명의 손님을 맞이하는 건 흔한 일이며, 많을 때에는 1백명이 넘게 찾아온다. 그러나 우리집은 손님 대접이라고 해서 특별나지 않는다. 평상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구워놓은 빵을 대접하면 되니, 손님들이 몰려온다고 해서 어려울 것도, 크게 돈이 들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집은 그 많은 손님들이 와도 언제나 즐거우며 부담감이 없다. 손님들이 와 주어서 즐겁고, 함께 있어서 즐거우며, 편히들 있다가 고맙게 생각하고 가니, 모두가 즐거운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먹는 것만큼이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있다. 우리의 웃옷이며 외출복인 두루마기는 세월이 흐르고 생활이 바뀌었지만, 소매가 약간 좁아졌을 뿐이다. 여자의 치마 저고리, 남자의 바지 저고리 등은 도무지 그것을 입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옷들이 아니기 때문에 실용성이 없다. 특히 흰색으로 만들어진 옷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도시의 직장인들이 입고 다니는 양복이나 양장만 해도 그렇다. 빳빳하게 세운 바지의 줄이나 하얀 와이셔츠, 목을 꽉 옭아매는 넥타이, 자리에 앉으면 속옷이 보일 정도의 짧은 치마와 몸에 딱 달라붙는 옷 등 도무지 일하기 위해 입는 활동복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우리집에서는 실생활에 알맞은 복장으로 고쳤다. 국산 옷감으로 만들되, 간소하고 내구성이 강하며, 염색한 옷감에 활동이 편하고, 보기 좋은 것 등에 기준을 두어 남녀복, 외출복, 작업복 등을 직접 고안해 만들었다. 그래서 남자들의 외출복도 넥타이를 매지 않는 국산 양복으로 했고, 구두 대신 고무신을 신도록 통일했다. 



●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라는 말은 우리 민족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목전의 이익을 위해서는 장차 거둘 수 있는 커다란 이익을 예사로 버리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시야가 좁고 계획성이 없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자녀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심어주는 대신 좀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책 대신에 과자를 사주는 것이 우리나라의 부모들이다.


농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논밭을 장만할 때에도 토질이 좋을 것을 찾지, 토질이 나쁜 것을 값싸게 사서 개량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노력이 요구되는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이다. 그래서 기름진 논밭을 가지고도 우선 편한대로 금비(金肥)만으로 농사를 짓는다. 그러다 토지가 산성화되면 팔거나 개토를 한다. 집도 마찬가지이다. 그곳에서 살다가 집이 낡으면 고쳐서 살기보다는 그 집을 팔고 다른 새집으로 이사를 간다. 그래서 나는 이와는 반대로 나쁜 토지만을 골라서 산다. 값이 싸기 때문에 많은 땅을 살 수 있고, 몇 년만 공을 들여 일을 하면 좋은 땅이 되니 그걸 사는 것이다. 집 또한 마찬가지이다. 낡은 집을 싼값에 사서 조금만 손을 보면 새집처럼 되니 그때 팔더라도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


농촌에 가보면 넓은 울타리 안에 과수 하나 없는 집들이 많다. 과수를 심어놓고 3년이나 4년만 기다리면 과일이 열릴 터이지만, ‘그걸 어떻게 기다리냐? 이 집에서 그때까지 살지 안 살지도 모르는데 구태여 그런 것들을 심을 필요가 있느냐?’하는 마음들인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들을 보면서, 사람의 수명이 얼마나 된다고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혀를 찬다. 어불성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이란 그렇게 짧은 것도 아니며, 내가 하는 고생은 결코 고생을 하기 위한 고생이 아니다. 장차 편히 살기 위한 고생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그 사람이야말로 당장은 나보다 편안할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영원한 고생이 그 사람의 대를 이어 따르게 될 것이다.


나는 다각 영농을 한다. 우리나라 농촌의 경우, 한 가지 농사만 짓는 게 고질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봄에 못자리를 하면 모가 자랄 때까지는 한가하다. 그리고 모를 심고 결실할 때까지 또 한가해진다.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 들이면 또 겨울에 할 일이 없어진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농사꾼들은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다. 이건 놀고 싶어서 노는 게 아니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노는 것이다.

그것은 벼농사 한 가지만을 짓기 때문에 비롯된 일이다. 밭에다 여러 가지 농작물을 곁들여 지어보라. 절대로 놀래야 놀 시간이 없게 된다. 이놈을 거둬들일 때는 저놈이 싹이 트고, 저놈을 거둬들이면 이놈이 또 싹이 튼다. 그야말로 1년 내내 거두고, 가꾸어야 한다.


또한 축산을 같이 하기 때문에 잠시 동안도 한가한 시간이 없게 된다. 연중무휴로 일하는 사람과 절반쯤 손을 놓고 지내는 사람과의 수입은 굳이 비교해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농사만 지을 때, 만약 그 농사가 흉년을 맞게 되면 굶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각농을 하면 한두 가지 농사가 흉년을 만나도 끄떡없다. 그런 잇속을 사람들은 왜 저버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비단 1년 농사만을 그렇게 짓는 것이 아니다. 나는 처음 토지를 구입하게 되면 적어도 5년 내지 7년 동안의 계획을 세워 그렇게 밀고 나간다. 처음에는 몇 년 후의 수확을 계획하고 과수를 심는다. 그리고 고구마와 기타 작물을 간작한다. 간작물은 당년에 수확하지만 과수들은 2년 후, 혹은 3년이나 5년 후에나 수확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간작물이 실패할 경우 과수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완전한 실패가 아니며, 과수들이 실패를 해도 그 역시 완전한 실패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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