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윤석열 결정’에서 희망을 보았다 -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폭주하는 권력을 사실·법리로 판단한 법원이 막아섰다
검찰 독립성과 법치 누가 훼손했는지 국민은 알게 됐다
힘겨웠던 2020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코로나19 감염병이란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의 존엄, 자존, 공존이 한계 상황에 내몰린 한 해였다. 하지만 이 자연재해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상식에 부합하는 민주적 사회질서가 이른바 운동권 독재세력에 의해 허물어진 일이었다.
독선적이다 못해 광기의 양상으로까지 치달린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그 동조자들의 행태는 지켜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 나라와 국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기에…” 하는 개탄 속에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던 건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거침없는 권력의 기세 앞에 어떤 호소도 분노도 저항도 무력해 보였다. 이 폭주하는 권력을 법원이 막아섰다.
법무부 장관의 검사에 대한 직무 집행 정지 권한을 총장을 해임하는 도구로 전횡하는 것은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몰각(沒却)하는 행위라는 조미연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의 준열한 판시가 그 시작이었다. 조국 전 장관 아내 정경심씨의 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불법 투자 등에 대해 징역 4년의 중형을 선고하고 정씨를 법정구속한 임정엽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그리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낸 2개월 정직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홍순욱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의 결정이 그 뒤를 이었다.
그중 홍순욱 판사의 결정문 내용을 읽어보았다. 누가 보든 편드는 결정이 아니었다. 그 한 사례로 검찰총장의 2개월 직무 정지는 검찰 전체의 운영에 중대한 공백을 가져오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검찰 수사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초래한다는 윤석열 총장 측 주장을, 검찰총장 직무를 대행하는 대검 차장검사나 일선 검사들 하나하나가 국민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관으로서 이 공백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논리로 수용하지 않은 것을 들 수 있다. 일체의 가정, 주관적 주장, 애매함을 배격한 채 사실관계와 법리에만 기초한 판단이었다. 친문 진영의 라디오 진행자 김어준은 이를 두고 “행정법원의 일개 판사가…”라고 분개했다. 하지만 삼권분립의 정신에 기초한 사법부 본연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판결들로 일단락된 추미애·윤석열 대립 사태는 비록 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긴 했지만 그만큼 값진 교훈을 전해 주었다. 금번 사태는 검찰이 비정치적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정치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정치권력의 검찰 장악 시도로 퇴행할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냈다. 이제 다수의 국민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하고 법치주의를 침해하는 주범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다. 개혁의 주체는커녕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들이 검찰 개혁 운운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코미디 같은 일이었다.
이 사태는 또한 검찰의 독립을 지금까지 정치권이 주장해온 제도 개혁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검찰을 포함해 정치적 상호작용의 중심에 위치한 권력기관이 그 어떤 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때로 직접적으로, 때로 은밀하게 작동하는 정치권력의 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은 세계 주요국의 역사가 웅변하는 사실이다. 당장 금번 추·윤 사태는 검찰의 책임 있는 독립을 제도화한 검찰 인사,감찰, 징계 제도가 그 본연의 취지를 벗어나 정치적 수단으로 얼마나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야당의 후보 추천 거부권을 무력화해서 여당의 뜻대로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할 수 있게 개악한 공수처법이 제도적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견지하면서도 검찰 스스로 권력기관화하는 문제를 해결할 대안은 무엇인가?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검찰의 변화는 외부로부터의 제도적 개혁에 앞서 검사 개개인이 내면화한 책무성과 소명 의식, 이른바 규범성을 강화하는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검찰의 실질적 변화의 시작과 끝은 그 어떤 외생적 제도 개혁에 앞서 검찰 구성원 개개인의 변화라고 할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검찰 자체의 개혁을 넘어 검찰 문제의 근원인 정치적 후견주의의 개혁에 기여할 것이다.
기득권 집단인 검찰 성원들에 의한 이러한 내생적 변화가 쉽지 않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금번 사태에서 검찰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정치권력에 맞서 검찰의 2000여 구성원들, 심지어 추미애 사단으로 분류된 일원들까지 하나가 된 모습, 그리고 이를 지지한 법원의 결정들은 이러한 변화의 희망이 결코 꿈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윤석열 총장이 중심을 굳건히 지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영화된 정치적 검찰을 넘어 진영을 초월한 규범적 검찰의 가능성을 그가 열었다. 2020년 세모의 한국 사회는 새로운 희망으로 따뜻했다.
ㅡ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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