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기도가이드

성경적 기도 - 31~32.

Joyfule 2014. 9. 11. 08:21

 

  성경적 기도 - 신상래 목사

 

 

 31. 성령의 열매를 맺어라.

성령의 열매는 갈 5:22~23에 잘 나와 있다. 그곳에는 9가지의 거룩한 성품을 열거하고 있다. 성령이 오랫동안 내주하면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된다는 것 일게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그것만이 아니다. 삶의 목표가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삶으로 바뀐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인생관을 갖게 된다. 또한 기도응답과 더불어 삶의 문제가 해결되어 형통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교회의 부흥회나 기도원에서의 예배는 열정적인 찬양에 이어 뜨거운 기도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때는 너 나 없이 성령충만함을 경험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건조하고 냉랭한 신앙상태가 계속되면 그 때의 뜨거웠던 통성기도시간이 그리워 부흥집회를 찾아 나서거나 기도원에 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격앙된 감정의 상태에 연연하지 말고 성령의 열매가 있었는지 냉철하게 판단해 보아야한다. 성경은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계속하면 풍성한 성령의 열매가 맺어진다고 단언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유창한 방언기도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격렬한 통성기도를 보여주는 이들도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유구무언인 이들이 적지 않다. 드높은 교회의 직책과 오랜 신앙경륜을 자랑하는 이들조차 그렇다. 종교적인 신앙행위와 신앙의 경륜이 성령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도들과 제자들은 간절한 기도 끝에 며칠이 안 되어 성령세례를 받았다. 베드로의 설교로 초대교회에 입교한 수많은 유대인들도 성령충만함으로 기존의 교인들과 마음을 나누는 교제를 하고 재산을 나누었다. 이들 역시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간절한 기도 끝에 성령세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들 대부분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희생적인 순교자의 길을 걸어갔다. 성령의 풍성한 열매는 당연한 결과였다.

 

이들은 오랜 신앙의 경륜이 없어도, 성경지식이 부족했어도, 교회의 직책이 없었음에도 놀라운 성령의 열매를 맺었다. 이 시대에 들어와 남부럽지 않은 상황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이 내주하여 오랫동안 계신다면 당연한 결과로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오랜 신앙의 경륜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교회의 관행적인 기도가 아니라 성경적인 기도로 다시 시작해야할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천국의 자격도 언감생심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는 것(요3:5)을 상기해보라.

32. 성령의 능력을 요청하라.

기도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깊고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크리스천은 별로 없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라도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기도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문제만 생기면 기도하라는 주문을 받고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기도응답을 경험하거나 문제가 해결된 이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알려주는 지도자들도 별로 없다. 수시로 기도를 해보았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응답을 경험하지 못한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었다면 적어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품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채 교회를 떠나가게 되었으며, 이들은 반 기독교인사가 되어 기독교를 폄훼하고 교회를 공격하는 데 앞장을 서고 있다. 그간 겪은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실망이 분노로 바꿔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기도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이지만, 성령이 임재하는 기도를 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성령이 임재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게 끝난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가 아니다.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요정 지니처럼 램프만 문지르면 ‘펑’하고 나타나서 주인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다른 종교의 신처럼, 복을 빌면 이루어주는 기복신앙처럼 여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복을 빌기만 하면 퍼부어주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다. 많은 설교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신명기 28장의 복에 대해 살펴보자. 하나님의 복이 내려오는 조건은 교회의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여하거나, 새벽기도회에 나오고, 혹은 헌금을 과도하게 드리는 것에 있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하고, 청종하는데 달려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교회예배에 성실하게 참석하고 과도하게 헌금을 드리더라도 그 마음과 속내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된다는 것이다. 즉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순종하며 삶을 사는 데 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한 채 형식적이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하면서 복을 요청한다면 아무런 응답이 없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요청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능력의 원천은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에 있지 않다. 이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 나온다. 즉 성령께 요청하여야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약할 때 강하다고 고백하였던 것이다.(고후12:9~10)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탁월한 열매를 맺는 선교사역을 감당하면서 갖가지 기적을 행하며 이적을 행사하였지만, 이 같은 능력의 원천이 성령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요청하여야 한다. 귀신을 쫓아내거나 질병을 낫게 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원천과 믿음을 유지하는 힘을 포함한 모든 능력을 철저하게 요청하여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는 존재이다. 즉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살아가야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모든 기도로서 세상을 힘 있게 살아가고 행복과 평안의 원천인 성령의 능력을 요청해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소원을 이루는 것이 기도의 목록이 아니다. 기도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뜻 안에서 기도해야 응답이 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응답이 없고 문제 해결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기도를 자신의 욕망충족의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의 모든 것을 기도로서 요청해야한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한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며, 기도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멸하기 때문이다.

 

 

'━━ 영성을 위한 ━━ > 기도가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적 기도 - 35~36.  (0) 2014.09.13
성경적 기도 - 33~34.  (0) 2014.09.12
성경적 기도 - 29~30.  (0) 2014.09.10
성경적 기도 - 27~28.  (0) 2014.09.09
성경적 기도 - 25~26  (0) 2014.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