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기도 - 신상래 목사
33.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려고 애써라.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은 모든 기도자의 소원이기도 하다.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최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극소수이다. 필자부부는 작년부터 영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있다. 영음으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펴내기도 했다.
성령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널리 전파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비용으로 출판해주겠다는 출판사가 나타나지 않아 근처 제본소에서 제본을 해서 지인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부부처럼 영음으로 들려주시는 경우는 극히 희귀한 일이다. 물론 교회주변에는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그들의 말과 행태를 지켜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게 아니라 자의적이거나 악한 영의 사주를 받는 이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치거나 뾰쪽한 눈을 치켜뜨고 위협도 불사할 터이니 그들의 속내를 알 길은 없다.
다만 성경의 잣대로 판단하거나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판단력을 얻어 구별해내는 방법 밖에 없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이들의 희생자가 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성령으로부터 영음으로 듣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굳이 영음으로 듣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필자는 사역을 하면서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 성령께서 원하는 분야에 대한 깨달음을 주신다. 그래서 필자는 일 년에 서너권의 책을 집필할 수 있었다. 특히 아침에 기도할 때는 노트를 옆에 두고 기도하곤 했다. 수시로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자신이 알고자 하는 분야에 대해 말씀해주시는 반면, 영음으로 들려주시는 일은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씀이 생각 속에 들어온다.
심지어는 자신도 모르는 단어, 전혀 유명하지 않은 성경인물을 말씀하기도 한다. 그래서 듣고 나서는 성경사전을 뒤져 이 사람이 누군지 찾아보기도 한다. 자신도 잘 쓰지 않은 한자나 성경말씀을 인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처럼 영음으로 들을 때에는 하나님과 대화도 가능하다. 그래서 자신이 궁금한 사항을 물어볼 수 있다. 물론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시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질문들은 대답해주시지 않는 경우도 있다. 미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물어보는 것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생각으로만 말씀해주시는 게 아니라 입을 통해서 음성으로도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말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성경에 있는 것을 말씀해주시는 게 보통이다. 영음으로 들려주시는 게 깨달음과의 차이는 깨달음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 대해 알게 된다면, 영음은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말씀하시므로 깨달음의 영역이 무한대라고 볼 수 있다. 깨달음과 영음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나님께 고도로 집중할 때 말씀해주신다는 것에 있다.
세미한 음성이라고 하신 까닭이 바로 그런 이유이다. 하나님께 모든 정신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들을 수 없다. 때로는 단어나 구절만을 던지셔서 오랫동안 집중해야 전체적인 상황을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깨달음과 영음이외에도 환상이나 꿈으로도 말씀해주신다. 환상은 깨어있는 상태에서 보는 것이고 꿈은 잠자고 있을 때 보는 것이 다르다.
아무래도 환상은 드물게 나타나지만 꿈은 자주 나타나는 편이다. 그러나 꿈이라고 모두 하나님이 말씀해주시는 영적인 꿈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생리학적으로 꾸게 되는, 소위 개꿈도 있고 악한 영이 주는 꿈도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평소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기도를 하는 사람만이 경험하곤 한다. 이렇듯 기도를 하게 되면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여러 통로를 통해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자세하게 깨닫고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34. 성령을 소멸치 않도록 유의하라.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성경구절은 바울이 한 말씀이다.(살전5:19) 소멸하다는 말은 헬라어 σβέννυτε(스벤뉘테)라는 단어로서 ‘불을 끄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뜻은 불을 상징하는 성령의 활동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로 해석된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를 하게 될 때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예외는 있지만, 간절히 기도해도 서너 달이 걸려야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항상 유지되는 게 아니다. 성령이 내안에 내주하셔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게 되려면 일상의 삶에서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성경을 권면하고 있는 이유이다.(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는 상태를 유지하려면 항상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야 가능하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성이 들어나는 생각과 행동이 돌출되면 성령께서도 탄식하시고 답답해 하신다. 성령의 활동이 급격하게 줄어들며 잠잠해하시며 휴면모드로 들어가신다. 그래서 평소에 기도를 방해하는 것을 예방하며 조심해야하는 이유이다. 자신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악한 영의 조종을 받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으며, 자신도 모르게 악한 일에 휘말려 들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럴 때는 마음을 쪼개는 회개기도가 곧바로 이어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희생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우리 몸에는 죄성이 남아있어 이 몸을 벗어버리는 날까지 이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이를 두고 사도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14)라고 표현했다. 성령이 항상 내 안에 있어 당신의 뜻으로 나를 인도하시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도를 위한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때로 넘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실망에 빠지지 않고 다시 회개기도를 통해 성령의 도움을 간구해야 한다. 성령의 활동이 소멸된다는 것은 성령이 내게서 떠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일을 절대로 방치해두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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