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기도 - 신상래 목사
35. 성령으로 태어나기를 기도하라.
기도의 끝은 없다. 새날이 되면 다시 기도를 시도하고 하루 종일 기도하기를 즐기며 지내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기도의 내공을 쌓다보면 달라지는 것이 있다. 세속적인 인생관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관으로 바뀌고, 부족한 성품이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이는 그냥 기도해서 되는 게 아니라,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를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희생적인 기도의 경력을 자랑하지만 정작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오래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하는 날이 온다.
유대교의 랍비인 니고데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늦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다. 그리고는 그간 가슴에 품은 궁금증을 내뱉는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의 하신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요3:5) 그러나 그는 성령의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해 전혀 무지했다. 그래서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냐고 되물어볼 정도이다. 그 유대교의 지도자들도 성령에 대해 무지하였으니,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내린 성령세례로 인해 기독교가 역사 속에서 새롭게 등장했으며 우리네 교회에서도 성령은 아주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전히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아주 어렵다. 성령으로 태어났다는 말은 세상적인 사람에서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사람의 특징은 인생관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며, 부족한 성품이 거룩한 성품으로 확연히 변화된 것이 감지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령이 사람이 되었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실천하며 기도응답과 문제해결이 즉각 내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기도의 목적인 즉각적인 응답이나 지난한 삶의 문제를 해결 받는 데 있다기보다,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십자가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하는 외아들을 아낌없이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남은 일생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작정하고 실천하는 데 인생의 목적을 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기도의 내용과 신앙의 태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랜 신앙의 연륜에도 세속적인 모습을 벗어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기도를 시작하면 오직 부와 명예, 성공, 건강 등의 자신을 위한 내용으로 일관되지만 성령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와 그 나라를 위한 능력만을 구한다. 목회자나 다른 교인들이 자신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보아주기를 원하는 종교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교회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성령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하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네 주변에는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을 보기 어렵다. 집회분위기에 휩쓸린 감정적인 느낌을 성령충만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더욱 많다.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 될 수 있다.
또한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각종 은사와 능력으로 무장하여 귀신을 쫒아내며 질병을 낫게 하며 영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한다. 사람들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면서 정작 영적인 습관을 들이는 일에 애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성령의 사람이보기 드문 이유이기도 하다.
36. 기도는 종교적인 행사가 아니다.
교회에 나가면 기도하라고 종용받는다. 새신자라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뜨거운 감자(?)를 피해가겠지만, 신앙의 연륜이 깊어지고 묵직한 직책을 받았다면 목회자의 권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새벽기도회를 비롯한 각종 기도회에 참석하게 된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다보면 종교적인 기도습관이 들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하는 행위는 쉽게 기도습관을 들이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스스로 기도하는 독립심을 얻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특정한 행사의 목적에 따른 필요를 제공해주지만 그 목적이 사라지면 기도 역시 존재감을 잃는다.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경지에 오른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도는 힘들고 어려운 노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기도는 놀이처럼 즐겁지 않고 스포츠처럼 쾌감으로 주는 보상도 없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 성령이 주는 잔잔한 평안과 그 보상을 누릴 때까지 기도는 스스로 하는 게 아니라 마지못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행사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힘들고 고된 정신노동이므로 처음부터 성경적인 기도습관을 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경우처럼 종교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기도습관을 들였다면 성경적인 기도습관을 들이는 것은 요원하게 보인다. 종교적인 행사로 시작하는 기도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게 아니라 참석하는 데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단 10분 기도했더라도 만족해한다. 이렇게 자기만족이나 교회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받으려는 목적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론 교회에서의 갖가지 목적의 기도행사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행사는 개인 기도를 충실히 하면서 참여해야 한다. 일상의 삶에서 성령과 깊은 교제의 기도가 없이, 다만 기도행사에 참여하는 기도는 열매가 없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처럼 기도행사를 많이 하는 나라도 별로 없다. 새벽기도를 비롯해서 얼마나 많은 기도행사를 개최하고 있는가? 그러나 기도회의 숫자에 비해 기도의 열매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개인 기도를 가르치지 않은 우리네 교회의 현주소이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영적 침체는 가속화되고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무거운 직책이 있든 아님 오랜 신앙의 경륜이 있든지 간에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지 않다면 죽은 신앙이다. 죽은 신앙일수록 겉치레를 화려하게 하고 신앙행위를 중시한다. 내면에 하나님이 없음을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위해서이다. 이런 현상의 주원인이 형식적인 기도회에서 능력 없는 기도의 습관을 들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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