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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기도 - 47~48.

Joyfule 2014. 9. 19. 08:10

 

  성경적 기도 - 신상래 목사

 

 

47. 다니엘의 기도습관을 본받으라.

아시다시피 다니엘은 탁월한 영적 능력을 지닌 성경의 위인이다. 그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왕족출신으로 꿈과 이상을 해석하는 능력으로 왕의 총애를 받았다.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한 이야기는 유명하며 벨사살의 왕궁 벽에 쓴 손가락 글씨를 해석한 대목은 지금도 기이하다.

그뿐 아니라 대바벨론의 제국의 미래와 메시야 왕국의 도래한 자신의 꿈들 역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가 이렇게 위대한 성경의 위인으로 하나님이 구하게 사용하게 된 데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영적인 습관에서 그 탁월한 영적 능력의 원동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다니엘은 그의 정적들로부터 모함을 받아 30일 동안 왕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기도하지 못하도록 한 금령을 어기고 기도하여 사자굴에 빠뜨려지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 근거는 아래의 성경말씀이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이처럼 다니엘은 왕의 명령을 어겨 사형에 당할 줄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는데, 그것도 정적들이 볼 수 있도록 집의 윗방의 창문을 열어놓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였다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목숨이 위태로운 처지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한 것으로 보아 평소에도 그렇게 기도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관행을 물려받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 3번 기도했다는 대목이 성경곳곳에 나온다.

 

베드로도 고넬료를 방문하게 한 환상을 본 것도 규칙적인 기도시간을 통해서였다. 하루 3번 기도하는 것은 깨어있는 시간을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하루에 한번, 새벽기도회에 참여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있는 이유는 기도를 단지 종교적인 의무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기독교를 단지 여러 종교의 하나로 생각하겠지만, 크리스천의 입장이라면 종교가 아니라 진리이다.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일뿐 아니라 평안하고 형통한 삶의 절대적인 조건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 습관을 들이는 일이며, 이 습관이 규칙적으로 하루 3번 간절히 기도하는 삶의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니엘의 기도를 따라하는 사람들은 보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기도는 종교적인 의무감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기위한 절대적인 과정이다. 의무감으로 시작했다면 오래 갈수 없다. 다니엘은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기도행위를 버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총애를 받은 사람은 탁월한 능력으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음은 물론이다.

48. 야곱의 기도를 배우라.

성경의 위인들의 기도라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기도문과 바울의 기도문 그리고 다윗이 지은 시편의 기도문이 알려졌고, 요사이는 일약 베스트셀러가 돼서 유명해진 짤막한 야베스의 기도문까지 등장하였지만 야곱의 기도는 좀 덜 유명하다. 그렇지만 야곱은 절박한 기도로 그의 운명을 바꾼 사람이다. 그가 식구들과 가축들을 이끌고 하란의 삼촌라반의 집에서 떠난 것까지는 좋았지만, 어릴 적에 원수가 된 그의 형 에서가 병사들을 이끌고 그들을 맞으러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 최악의 상상으로 몸서리를 쳐야만했다.

 

그는 마지막 날 가족들과 가축들을 얍복강 건너편으로 보낸 후 홀로 밤을 맞았다. 그리고는 거기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자와 목숨을 건 기도를 시작했다. 얼마나 기도가 치열했든지 사자의 다리를 붙잡고 놓지 않자 그의 허벅지 다리를 쳐서 골절이 되어 평생 장애인이 되어 지팡이를 의지하며 걸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이라는 명예로운 새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겨뤄서 싸워 이겼다는 의미로, 지금 유대인의 국가이름이기도 하다. 성령께서는 야곱의 기도를 배우라고 하셨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기도란 하나님께 끈질기게 간청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을 따라 다녔던 과부도 끈질김으로 소원을 이루었고, 귀신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던 수로보니게 여인도 자신의 민족이 개로 비하되는 모멸감을 참고 견디면서 끈질기게 요청해서 고침을 받았다.

 

참고 견디면서 기도하는 것은 견고한 믿음을 담보로 해야 한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를 중도에 포기하기 일쑤이다. 중요한 기도응답은 쉽게 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응답이 없더라도 오랜 기간을 포기하지 않고 참고 견디면서 기도하는 끈기를 배우지 못한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기도를 하는 일꾼을 원한다. 그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믿음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성경의 위인들의 기도를 배우기보다는 세상적인 방식이나 관행적인 기도를 따라 하기 일쑤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데 무지하기 때문이지만, 정작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지 않는 성도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게 우리네 교회가 마주한 현실이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기도는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희생적인 기도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철저하게 하나님을 붙들고 호소하는 기도이다.

그 기도의 모본을 야곱이 보여주고 있다.

야곱이 어린 시절 형 에서의 복수를 피해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여정에서 노숙하던 차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꿈으로 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베개로 베던 돌을 세워놓고 평안하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면 평생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 결심이 자식들인 이스라엘 12부족에게 전승되어 의무적인 십일조헌금의 효시가 되었다. 이처럼 야곱은 하나님의 존재를 눈으로 보고 행동에 옮긴 사람이다. 얍복강에서의 처절한 기도가 끝난 후 하나님은 그에게 야곱이란 이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이름은 아다시피,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이다.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겨룬다는 게 언뜻 애해가 되지 않겠지만, 선한 뜻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견고한 믿음을 보여야 한다는 게 성경의 숨은 의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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