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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기도 - 51~52.

Joyfule 2014. 9. 21. 08:16

 

  성경적 기도 - 신상래 목사

 

 

51. 죄성(罪性)이 자신을 지배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교회에 오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교회에서 듣는 죄인은 세상의 죄인과 달리 종교적인 수사로 들리기에 오래 듣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십상이다. 물론 세상에서 말하는 죄인과 기독교의 죄인은 차이가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죄는 현행법을 위반하여 법적인 처벌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대부분 교도소에 수감되어 죗값을 치루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교회에서 말하는 죄인은 형사적 혹은 민사적인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출생하였기에 누구나 예외 없이 죄인의 신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에서 듣게 되는 죄인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이도 별로 없고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죄인과 기독교의 죄인은 죄의 성질 자체도 다르고 치러야 할 죗값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세상 죄인은 법원에서 판사가 선고한 형벌을 이행하면 죄에 대한 책임은 소멸된다. 전과기록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다시 죄를 짓지 않는다면 문제될 게 없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세상에서 말하는 죄와 다르다. 즉 우리의 조상이 범죄한 이후에 운명적으로 죄가 우리의 몸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사 혹은 형사적인 죄를 짓지 않더라도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죄의 대가는 사망이며 이 땅에 사는 동안에서 불행한 삶의 빌미를 제공한다. 이러한 내용은 교회의 교육이나 설교에서 들어왔던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죄가 우리의 생명과 영혼 또한 평안한 삶에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소홀히 생각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감기 증상이 있는데 이를 소홀히 하다가 폐렴까지 악화되어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 이르는 것과 같다. 죄성을 소홀히 여긴다면 고단하고 불행한 인생을 살다 영원한 지옥의 불못에 떨어지게 되어있다.

사람에게 죄가 없던 상태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죄가 들어온 상태의 정반대라고 보면 아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담의 범죄이후 죄가 세상에 들어찬 이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기고 오직 멸망 받은 운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의 특징은 탐욕과 방탕, 분열, 술취함, 싸움, 분노, 질투, 살인, 음란, 간음 등의 불의한 속성을 낱낱이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속성은 인간인 이상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의 희생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루고 용서하셨기에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죽어 육체를 떠나기 전까지는 죄의 속성인 죄성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셔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몸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셔서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가 절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성령이 내주하기 전에는 죄가 지배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고,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고 난 후에도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을 가까이 하는 영적인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많은 크리스천이 오랜 신앙의 연륜에서 부족한 성품이 거룩한 성품으로 변하지 않고 세속적인 삶의 방식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변화하지 않는 이유가 여전히 죄가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를 통해 성령이 죄성을 억제하고 힘을 쓰지 못한 상태가 되어서야 비로소 성품이 변화하고 살아가는 이유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가 성령이 기뻐하는 생각과 육체가 추구하는 죄성의 싸움판이 되는 것이다.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가 없다면 여전히 죄가 지배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허전하고 냉랭하며 기쁨과 평안이 없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교회에 오면 이를 감추고 기쁜 척 평안한 척, 속내를 숨기고 있겠지만 말이다. 성령이 함께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라도 언제 죄성이 틈을 타서 자신을 지배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항상 조심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일상의 삶에서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하며 늘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놓지 말아야한다. 

 

 

52. 탐욕과 방탕에서 벗어나라.

탐욕과 방탕은 죄의 대표적인 속성이다. 그런데 이 같은 죄성이 왜 기도를 방해하는지 살펴보자. 탐욕은 대부분 돈과 연관지어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게 세상 사람들의 공통적인 소망이며 아무도 이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자는 대부분 탐욕적이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많은 돈을 버는 데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 누우며 주말도 휴일도 없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게 몸을 혹사하는 이유는 부자가 되고 싶지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돈을 버느라 기도할 시간을 내지 못한다. 설령 시간이 났더라도 몸이 피곤해 기도를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바빠서 기도를 할 수 없다는 변명을 한다. 이의 속내는 돈을 버는 시간을 줄여가며 기도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적지 않게 돈을 벌어두어 이미 평생 쓸 만한 재산을 가진 사람도 탐욕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많아진다.

 

성경은 이를 두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으로 만족함이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결국 가난하면 돈을 버느라 기도를 하지 못하고 부자는 부자대로 더 큰 부를 쌓아두느라 기도할 시간이 없다. 결국 재산의 유무가 아니라 탐욕을 없애지 않는다면 기도할 생각도 없고 기도할 시간도 내지 못한다. 탐욕이 기도를 방해하는 걸림돌이다. 이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도를 할 수 없다. 돈과 하나님,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명령이 나온 까닭이다.

또 다른 죄의 속성은 방탕이다. 방탕은 쾌락을 추구하는 마음을 말한다. 가장 일반적인 쾌락의 수단이 술과 성적인 음란이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술은 뇌의 활동을 둔화시켜 쾌감을 얻기 때문에 기도와는 상극이다. 기도는 정신을 몰두해야 하는데 술을 마신다면 집중을 할 수 없다. 물론 약간 마신다면 큰 상관은 없겠지만 질제하지 못하는 알코올 의존증이나 중독에 가깝다면 기도를 할수 없다. 술이 아니라 다른 중독들도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게임이나 포르노, 주식 중독이 되었다면 자신의 생각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그들의 노예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이런 사람들은 형식적인 기도는 할 수 있겠지만 깊이 몰입하는 기도를 절대 불가능하다. 음란물에 빠진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음란에 빠지면 생각을 지배하고 있기에 기도에 몰입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음란은 간음죄를 짓게 한다. 죄를 지으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악령의 공격의 대상이 된다. 기도는커녕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탐욕과 방탕은 범죄의 빌미가 되어 악령의 포로가 되기 십상이기도하지만, 먼저 기도를 방해하는 걸림돌이다. 탐욕과 방탕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은 성령과 내주하는 기도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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