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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기도 - 67~68.

Joyfule 2014. 9. 29. 06:24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 기도 - 신상래 목사

 

 

67. 그냥 기도와 능력 있는 기도는 다르다.

예수님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된다.”(행1:8)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려면 그냥 교회에 오기만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성령이 내주하시는 영적 습관을 통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이 말씀을 간과하기 일쑤이며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고 대하기 십상이다.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비성경적인 신비주의자로 몰아세우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성령의 능력이란 말을 성경에서 보기는 하였지만 삶의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에 그런 말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이단종파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물론 거짓 예언이나 거짓 귀신축출, 거짓 치유하는 이들에게서 얻은 부정적인 학습효과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에게서 속아 넘어간 것도 진짜 성령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에 그런 것일 게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아예 성령의 능력을 말하는 자들을 아예 처음부터 거부하고 듣지 말라는 교육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는 빈대가 귀찮아 초가집을 태우는 것과 같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냥 기도와 능력 있는 기도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냥 열심히 기도하면 됐지, 다른 무엇이 필요하냐는 투이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약5:16) 하였다
. 의인이라 누군가?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긴 사람이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들에게는 보통 사람과는 달리 응답이 빠르다는 증거이다.

 

능력 있는 기도란 성령이 내주하셔서 드러나는 기도를 말한다. 성경에는 믿는 자들이라면 귀신을 쫒아낼 수 있다고 있다고 하였지만(막16:16) 이를 현실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어 기도하면 즉시 낫는다고 하였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막16:17) 이는 기도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있는 기도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기도의 원천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이다.(행1:8)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네 주변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바울은 이들에게서 돌아서라고 경고하고 있다.(딤후3:5)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고전4:20) 능력 있는 기도를 할 수 있어야 빠른 기도응답과 탁월한 문제해결뿐 아니라 성령의 다양한 은사도 받을 수 있기에 하나님의 도구로써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형통하고 평안한 삶은 덤으로 얻어지는 축복이기도 하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는 희생적으로 기도해야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방식대로 기도해야 한다. 간절히 기도해야 하고 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삶의 현장에서 쉼 없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한다. 쉽게 오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기는 하지만, 삶의 우선순위에 기도를 둔다면 누구나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 없고 성령과 교제하는 기도에 대해 무지한 크리스천이라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68. 기도를 군인정신으로 하지 말라.

우리네 교회는 기도를 무슨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병사로 비유한다. 그래서 40일 작정 새벽기도, 일천번제 기도회는 예사이다. 아예 기도원에 올라가면 금식기도는 기본이고 기도할 때마다 두둑한 헌금봉투를 곁들이면 빠른 응답이 온다고 은근한 압박을 가한다. 마치 기도응답이 부자 아버지에게 유산을 받아내려고 억지를 쓰는 불량한 아들이 생각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나 기도원의 관행이 어떻더라도 성경적이 아니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기도의 태도는 일상의 삶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데 있지, 무슨 특정한 기도회를 희생적으로 참여하는 데 있지 않다. 교회에서 하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벽기도회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항상 기도하라고 하셨다.(눅18:1) 금식기도를 한다고 응답이 더 빨리 온다는 얘기도 없다. 사실 성경은 희생의 강도를 높인 기도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게 자신이 기뻐하는 금식기도이라고 하셨다.(사58:6) 그런데 헌금봉투를 덧붙인다면 응답이 빨리 올 거라고? 하나님은 돈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행하는 것을 더욱 기뻐하신다. 그렇다면 기도 때마다 두둑한 헌금봉투를 드리는 것보다 기도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뜻에 더 합당한지 더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군인정신으로 기도하라는 것은 희생의 강도를 더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한 투의 말은 백일기도나 천일기도, 혹은 낮에 기도하는 것보다 새벽에 기도하거나 밤을 새워 기도하는 행위 등의 희생을 더하는 기도가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 하늘이 감동해서 응답이 빨리 내려온다는, 우리네 기복적인 민간 신앙관과 정서가 맞물려 있다. 그래서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만이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으로 하여금 성경에 기록하게 하시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밝히셨다. 그래서 성경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하신 이유이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면 아무런 가치 없는 쓰레기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우리네 교회의 주변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방식보다 근본을 알 수 없는 기괴한 관행들이 더 판치는지 알 수가 없다.

인정신을 받들어 희생의 강도를 더해 기도하는 것은 세상의 지혜일뿐이며 인간적인 생각일 뿐이다. 기도란 적을 패퇴시켜 승리를 쟁취하는 전투행위가 아니라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사귀는 영적 통로이다. 하나님과 사귐을 통해 그분의 뜻을 깨닫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더 이상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를 이루기 위한 희생적인 종교행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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