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기도 - 신상래 목사
75. 종교적인 신앙인이 되지 말라.
필자의 지인은 열정적인 신앙인이다. 모태신앙으로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교회에서 주관하는 대부분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대외적으로도 다양한 신앙 활동을 하고 있고 전도와 봉사에도 열심이다. 말하자면 모든 목회자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교인임에 틀림없다. 자신도 목회자나 교인들의 평가를 당연히 생각하고 있어 보인다. 생업도 가지고 있기에 이분은 너무 바쁘다. 부족한 잠에도 불구하고 본교회의 새벽기도회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직장 일에 매달리다보면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가곤 한다고 하소연이다.
필자는 그 지인에게 하는 일을 줄이고 바쁘게 살지 말며 충분히 쉬면서 기도하는 것과 말씀 읽는 시간을 더 많이 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그 지인은 필자의 조언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새벽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 다른 기도회에도 참여해서 열심히 기도하며 순간순간마다 기도하며 살아가는 데, 기도가 부족하다는 필자의 조언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을 최고의 종교엘리트층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들은 하루 세 번의 기도, 철저한 안식일 준수, 내다 팔려는 목적이 아닌 집에서 기르는 야채까지 철저히 십일조를 드렸다. 그렇지만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님의 판단은 혹독했다. 회칠한 무덤과 독사의 자식이라는 책망을 하셨으며, 이들의 의를 넘지 않으면 천국은 언감생심이라고 하셨다. 아마 이 시대에도 이들보다 더욱 신앙생활에 철저한 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조차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자신들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천국을 자신하고 있다면 웃기는 얘기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들의 문제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보다 희생적이고 열정적인 신앙행위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좋아하며 자기만족을 즐기는 데 있지 않았을까?
필자의 지인의 신앙관이 잘못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보다 자신의 의지나 열심히 신앙행위를 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역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읽는 것을 다른 여러 신앙행위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 차이는 미미한 것 같지만 결코 작지 않다. 여러 기도회에 참석하고 각종 예배를 드리며 다양한 신앙 활동을 하는 것을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기도와 말씀을 전념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아 그 능력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예배와 전도, 봉사를 포함해서 말이다. 자신의 의지로 열심히 하는 것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게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기도 하는 것과 말씀 읽는 행위만이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과 깊게 교제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나님의 일은 이 두 가지를 통해 능력을 받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신앙행위의 절반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읽는 것을 여러 신앙행위 중에 구색으로 끼워 넣는 듯하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면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이 같은 이들은 종교적인 신앙인으로 말하고 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기도하는 것과 말씀 읽는 것은 다양한 신앙행위 중에 하나가 아니다. 이 행위를 통해 성령의 능력이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라고 하셨고,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으며,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을 죄라고 고백하였다. 히브리파와 헬라파 과부의 구제분배에 머리가 아파진 베드로는 집사들을 따로 세워 맡기고 자신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하겠다고 한 말을 곰씹어보라.
베드로의 고백은 기도가 왜 모든 신앙행위 중에 시간과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투입해야 하는 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종교적인 신앙인들은 기도를 여러 신앙행위 중의 하나로 생각하는 반면 영적인 사람들은 기도를 삶의 최우선을 두고 살아가는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네 주변에는 영적인 능력이 내려오는 기도방식을 가르치는 교회가 드물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에 성실하게 참여하면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는 그게 아니다. 기도는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한다. 기도와 말씀읽기가 하나님의 일의 전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힘과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기 때문이다.
76.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애써라.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한 위인들의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살았던 성경위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하나님도 되신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기도로서 우리의 영혼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살아갈 수 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도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도란 어떤 기도를 말하는 것일까? 말 그대로 일상의 삶에서 늘 하나님과 대화하며 살아가는 기도이다. 그러한 기도의 방식으로,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라고 하셨으며 사도바울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기도습관을 들이기 위한 훈련을 시작할 때 그런 기도를 꿈꾸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런 기도를 하고 있나 돌이켜보곤 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상태란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 찬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일이나 공부 등으로 정신을 집중할 때를 제외하고 느슨한 상태에서는 하나님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올라야 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고 부르며 찬양하고 감사하며 요청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시작하면 자신이 요구하는 목록을 경쟁적으로 요청하기에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에 관심이 없다. 성령이 내주한 상태는 보통 감정의 상태와 아주 다르다. 성령이 없는 상태에서는 마음이 건조하고 냉랭하다.
그러나 성령이 내주하면 마음이 잔잔한 평안함으로 채워지며 지극히 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그런 기도의 기쁨을 알아야 일상의 삶에서도 지속적으로 기도를 시도하고, 기도를 시도하면 성령 충만한 상태가 되기를 애쓴다. 하나님은 인격체이시므로 우리의 영혼과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다. 감정과 지성을 서로 나눌 수 있다. 그런 상태를 누리고 있어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희생적인 기도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성령과 동행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풍성한 기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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