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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숨은그림 같은 삶의 메시지들

Joyfule 2024. 10. 8. 22:25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숨은그림 같은 삶의 메시지들   

 

등산로 입구에서 보면 나뭇가지에 여러색의 리본이 매어 있는 걸 발견한다. 누군가에게 갈 길을 알려주는 표식이다.

인생을 살아오는데도 순간순간 내 길을 알려주는 표식들이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 숨은그림처럼 존재했다. 그것들은 책의 한 페이지에 드라마의 한 장면에 또 어떤 때는 무심히 던지는 다른 사람의 한마디에 나의 갈 길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었다.

중학교 삼학년무렵 판자집에 살던 가난한 동네친구가 나와 같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옆에서 한마디 툭 던졌다.

“야, 고시라는 게 있는데 그거 한 큐 잡는 거래.”

“한 큐가 뭔데?”

“나도 몰라. 하여튼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대 순경 안 무서워해도 되고 부자도 될 수 있대”

우연히 그쪽으로 눈이 열리게 된 단초였다. 익지 않은 우리들의 인식은 거기까지였다. 그때 법대를가서 고시를 봐야겠다는 막연한 마음이 들었다.

고등학교 삼학년 때였다. 나는 원하는 대학에 갈 성적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영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프린트물을 나누어주었다. 거기에 나와 있는 영어지문은 소설 ‘차탈레이부인의 사랑’중 한 대목이었다. 그중 이런 짧은 문장이 있었다.

‘장애물이 있을 때는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도 안되면 극복을 해야 합니다.’

그 한 줄의 문장에서 나는 엉뚱하게 가고 싶은 대학을 포기하기로 했다.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한 단계 낮은 대학으로 지망했다. 그것도 안 될 때는 재수 삼수라도 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간단한 한 문장이 내 대학을 결정했다.

동부검찰청에서 검사직무대리로 일을 배우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고교 선배 조영래 변호사가 찾아왔다. 그가 나와 조용히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수갑을 차고 묶여온 피의자에게 그 포승을 풀어주고 따뜻한 커피 한잔 담배 한 개피 줘 봤어?”

그 한마디는 나의 뒷통수를 때린 망치였다. 그 말을 듣기 이전에 내 앞에 있는 존재는 사람이 아닌 죄인이었다. 그저 사건기록일 뿐이었다. 나는 메마른 법률 지식으로 스크린해서 세상을 볼 뿐이었다.

삼십대 중반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읽었다. 늦은 가을날 김이 피어오르는 우물가에서 한 승려가 빨래를 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이렇게 욕심없이 담백하게 살 수 있구나 하는 감동이 마음으로 잔잔하게 물결져 왔다.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점에 가서 스님의 수필집은 물론 다른 수필집 수십권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무렵 ‘고개숙인 남자’란 제목의 드라마를 봤었다. 탈랜트 최불암씨가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연기하는 작품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낡은 마루바닥에 놓인 초라한 작은 책상에서 그는 컬럼을 쓰고 있었다. 그는 세상을 향해 바른 소리를 하는 언론인의 표상이었다. 그 모습이 매력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넓은 방에 큰 책상을 놓고 위압적인 모습의 성공한 법조관료보다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예인선에 조금씩 방향이 틀리는 배같이 나의 인생은 어떤 것들이 조금씩 방향을 틀면서 끌고가는 것 같았다.

어느새 내 인생 마흔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였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뜬금없이 성경이 읽고 싶었다. 내면에서 그 욕구가 솟구쳤다. 그 엉뚱한 욕구가 이상했다. 내가 이성으로 그 욕구를 누르자 무엇인가가 내 등을 강하게 떠밀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 차를 몰고 서점으로 가서 성경을 샀다. 그 다음 날부터 성경에 빠졌다. 근무 시간에도 읽었다. 상관이 방을들려도 그 앞에서 읽었다. 그렇게 삼십번쯤 읽었을 때였다. 내면에서 어떤 존재가 나보고 사표를 쓰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었다. 그동안 공들인 시간이나 인간관계등 모든 것을 버렸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으로 스스로 내려가 다시 시작했다.

내 삶에서 일어난 일들은 돌아보면 내 앞에 나타난 일련의 표식들을 따라온 것 같다. 그 표식들을 따라오니 지금이다.

사실 그 표식들은 숨겨져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현실 속에서 불필요한 것들에 너무 시선을 많이 빼앗겨 못 보고 지나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세속적인 성공에 관계 없이 나는 결과에 감사하고 있다. 내 머리로 만든 계획과 욕심에 따라 살았다면 중간에 방해를 만나 꺽였을 것 같다. 이제와서 깨닫는다. 크나큰 계획은 언제나 나의 의지나 계획을 넘어서 있었던 것을.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내가 틀릴 수 있어   

 

그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의 동생이었다. 공직자의 장남으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컸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자집 딸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미국으로 갔다. 그시절 미국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 무역업으로 성공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물건을 수입해서 미국 각 지역의 상점으로 넘기는 일이었다. 그가 사기죄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수입한 물건의 대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형제들이 그의 구명운동에 나섰다. 그는 무죄라고 확신했다. 물건이 팔리지 않아 돈을 다 지급하지 못한 걸 사기죄로 구속시킨 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감옥 안에서도 그의 생활은 건실해 보였다. 내가 만나러 갈 때 그는 읽고 있던 문고본 영어책을 접견실까지 들고오곤 했다. 그와 삶의 철학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법정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그의 결백을 주장했다. 재판결과는 유죄판결이었고 징역형이 선고됐다. 나는 속에서 억울한 감정이 치솟았다. 그를 모르는 바위같은 재판장이 원망스러웠다.


몇 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징역을 다 살고 나온 그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반가왔다. 변호하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와 정이 들었다. 속으로는 무죄를 선고받지 못하게 한 미안함도 컸다.

“감옥에서 나와 친척 집에 얹혀 있습니다. 미국으로 가서 다시 사업을 할 겁니다. 아직도 미국에는 내 재산들이 있습니다. 가족들도 기다리구요.”

잠시 그가 말을 끊고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가 가지고 온 가방 안에서 카달로그를 꺼냈다. 정수기류의 사진이 보였다.

“제가 지금 형편이 어려워서 외판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 하나 사겠습니다. 제일 수당을 많이 받는 걸로 주세요.”

그가 더 이상 말이 나오기 전에 내가 승락했다.

“감사합니다 한 가지 부탁을 더 해도 되겠습니까?”

그가 조심스런 표정으로 덧붙였다.

“뭔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미국수표가 있습니다. 일주일 후에 은행에 넣으시면 바로 현금으로 결제가 될 겁니다. 돈이 너무 급해서 그러는데 그 수표를 받으시고 돈을 돌려주실 수 없을까 해서요?”

“그러시죠”

수표까지 주겠다는데 걱정할 게 없을 것 같았다. 작은 액수는 아니었다. 나는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그에게 주었다.

일주일 후 그 수표를 가지고 은행에 갔다온 여직원이 내게 말했다.

“변호사님 그 수표는 처음부터 이미 지급정지가 된 것이었대요. 그 분이 애초에 가짜를 들고 온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머리가 띵했다. 돈보다도 내가 진짜라고 믿어온 그에 대한 신념들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한 행동은 전형적인 사기꾼의 행태였다.

그를 통해 나는 ‘내가 틀릴 수도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나만 진실이고 진짜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왔다.

내가 지지하는 이념이나 내가 믿는 종교 내가 깨달은 진리만이 진짜라고 주장했다. 나아가서 다른 것들은 전부 가짜라고 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부류였다. 나는 법정에서도 그리고 텔레비젼 토론장에서도 한번 주장하면 그게 절대 옳다고 하면서 조금도 후퇴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 개인의 관점 안에 있는 주관적인 판단을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 고수하려고 했다.


그렇게 행동하던 나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진실보다는 나를 세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고 함으로써 나의 에고를 만족시키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진 외눈박이였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이후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개인적인 관점과 주장을 어느 정도 내려놓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까 의외로 조금은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다시 몇년이 흐른 어느 날 다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변호사님 사기죄로 다시 구속이 되게 생겼습니다. 이건 정말 별 게 아니예요. 오셔서 변호해 주실 수 없을까요?”

“별 게 아니라는 건 주관적인 판단이실수도 있죠. 저는 여기까지이고 싶습니다.”

진짜 사기범은 자기의 거짓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틀릴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