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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하고 싶은 일

Joyfule 2024. 10. 21. 12:29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하고 싶은 일      

 

가끔씩 나의 글을 보면서 댓글로 하소연을 하는 분들이 있다. 오늘도 먹고 살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꾹 참고 돈을 모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언젠가는 맛집을 돌아다녀 보고 책을 보고 글을 써 보고 싶다고 했다. 젊은 나이 때 나도 돈을 많이 벌어서 즐기면서 살고 싶었다.

변호사로 바쁘게 뛸 때 나는 사회적으로는 고소득자인 셈이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즐기면서 살 시간이 안 됐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돈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싫은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걸 노동 선택권이라고 부른다면 어떨까. 나는 어느정도의 돈을 벌어야 그런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나는 갑질을 하면서 돈을 주려는 놈들을 사무실에서 내쫓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그 기준으로 했었다. 어느 순간 그런 때가 왔다. 충성하던 부하직원에게 자기가 저지른 죄를 모두 씌워 달라며 큰 돈으로 유혹하는 악덕사장에게 이렇게 욕한 적이 있었다.

“개보다 못하게 돈을 벌어 개 같이 쓰는 네가 싫어”

그는 나를 노예로 만들려고 던졌던 썩은 고기조각같은 돈뭉치들을 껴안고 도망치듯 나갔다. 그 순간 나는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돈보다 하고 싶은 일이 위인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소설가 조정래씨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교사를 했다고 했다. 매일 똑같은 말을 들어가는 교실마다 되풀이 하는 게 싫었다고 했다. 그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몇 년의 생활비를 마련한 후 사직서를 내고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방에 앉아 소설 태백산맥을 썼다고 했다. 그 소설이 히트를 치면서 그는 베스트 셀러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대단한 용기이고 선택이었던 것 같다.

소설가 정을병씨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 위해 젊은 날 아예 최저의 생존을 각오했다고 말했었다. 그는 평생 하루에 한 끼만 먹기로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죽을 때까지 실행했다. 그가 죽기 일년 전 쯤이었을까. 그는 내게 국립도서관에 가면 거기에 있는 칠십권가량의 책이 자신이라고 했다. 그런 소설가들은 가난해도 노동 선택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예술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고 보통사람들은 정말 자기가 모든 걸 희생하면서 하고 싶은 좋아하는 일이 있는 것일까.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냥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얻자는 생각으로 살았다. 일도 그냥 무심히 받아들였다. 크게 재미있지도 특별히 재미없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뭔가 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무채색 같은 삶이었다고 할까.

우리 사회에서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써주지를 않기 때문이다. 나 같은 전문직이라도 일정한 나이를 지나면 사정은 비슷하다. 이상하다. 사회에서 배제되어 가니까 힘들고 하기 싫었던 일들의 가치가 달라지는 느낌이다. 그 일들이 귀하게 여겨진다고 할까.

내가 묵고 있는 실버타운 노인들은 오전이면 골프를 즐기고 오후가 되면 온천을 하고 저녁이면 영화를 본다. 어떤 분은 캠핑카를 몰고 여행을 다닌다. 대개는 연금생활자이다. 공무원으로 선생님으로 군인으로 수십년을 일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이제 인생의 황혼에서 밤이 되는 사이의 짧은 순간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들이 오히려 일을 하고 싶어하는 걸 발견했다. 실버타운 안에 있는 한 부부는 주민센터에 가서 종이접는 일을 하겠다고 신청했다. 백화점의 종이팩에 손잡이를 끼우는 기계적인 단순한 일이다. 그 부부는 젊은 날 좋은 직장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던 것 같다. 저축한 돈도 꽤 되는 것 같았다. 그 부부는 그냥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 부인은 지역도서관의 사서보조로도 일하고 있다.

명문고등학교와 서울대학을 나오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수십년간 교수를 하다고 한국으로 온 작달막한 노인이 있다. 그 노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일을 하고 싶어요. 자루와 집게를 들고 해변가에 나가서 쓰레기를 줏으면 안 될까요?”

노인은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실버타운의 노인들이 지금 하고 싶어하는 일들은 그들이 젊었을 때는 전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모습들을 보면서 ‘도대체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요즈음 변기청소하는 일이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 되어간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 것 같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든 그게 자신의 천직이 아닐까. 젊어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