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라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라
< 행복은 감사에 달려있다 >
성공적으로 사는 제일 비결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바하와 헨델은 모두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다. 그런 사랑을 통해 놀라운 음악이 창조되었다. 미켈란젤로도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와 같은 불후의 명작들을 남길 수 있었다. 단테도 하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기에 위대한 문학작품인 <신곡>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하면 자신의 원초적인 능력보다 훨씬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살다 보면 힘든 일도 생긴다. 지난 세월 동안 힘든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면 새로운 힘이 주어진다. 사람은 감사하는 만큼 행복해진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는 말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과 실패와 배신과 죽음으로 저주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 말씀이 들리지 않는 막힌 귀, 감사를 전혀 모르는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행복은 감사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감사하고 기뻐하면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진다. 가족들이 서로 감사하면 가정이 행복해지고 교우들이 서로 감사하면 교회가 행복해진다. 감사가 넘치면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고 원망과 짜증과 절망도 사라진다. 대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치게 된다. 진실한 믿음은 감사로 표현될 때가 많다.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것과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내일의 소망을 넘치게 주신 것도 감사하라. 평소에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많이 하고 기도할 때도 감사기도를 많이 드리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때 복의 역사가 당대로 그치지 않고 후대로 이어진다.
<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라 >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른다(5절). 대대로 복 받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라(1절). 성도도 가끔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절망과 좌절의 표시는 아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아무리 큰 문제가 있어도 영생의 소망을 품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 한 성도가 임종할 때 유언했다. “제 장례식 때 슬픈 언어와 슬픈 눈물이 없게 하고 잔치하듯이 치러주십시오.” 결국 그의 장례식 날은 축제날처럼 되었다.
성도의 삶은 기본적으로 축제다. 주일은 축제하는 날이다. 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기쁘고 즐겁게 살라. 즐겁게 노는 것도 필요하다. 열심히 살았다면 즐겁게 노는 것을 정죄하지 말라. 건전한 놀이는 건강한 마음을 가져다준다. 한국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이지만 사실상 “잘 놀 줄도 알아야 해.”라는 말이 훨씬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 후자의 말은 힘써 땀을 흘리고 공부하는 삶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현대 교육학에서는 놀이를 매우 중시한다. 놀이는 인간관계 학습의 통로가 된다. 놀이를 통해 건전한 인격과 건강한 인생이 펼쳐진다. 천국은 지상 최대의 동물원보다 더 아름다운 놀이동산이다. 노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지 말라. 자녀들의 노는 문제에 대해 너그럽게 되라. 사람은 기타 줄처럼 늘 팽팽한 상태로 살 수 없다. 어차피 사람에게는 쉼이 필요하기에 쉬는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성도란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즐거움이 간헐적이거나 일시적인 즐거움이 아닌 항구적인 즐거움이 되게 하는 비결은 ‘하나님 안에서’란 표현에 담겨 있다. 하나님 안에 있어도 어려움을 겪지만 그 어려움이 하나님 안에 있는 성도를 좌절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은 삶의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시기도 하고 느슨하게 풀어주시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줄을 하나님이 붙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믿으면 용기가 생기고 내면 깊은 곳에서 즐거움이 차오르고 그 즐거움이 지속적인 복을 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