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 (1) - 안영복
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 (1) - 안영복
제 2장 영성발달을 위한 인간 이해와 성령의 역사
C.인격의 세 영역에서의 영성발달을 위한 성령의 역사
영성발달을 위해서 성령의 역사와 기독교 교육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학문적으로 기독교교육은 반드시 성령론과 접목되어야 한다. 인지적 영역, 정서적 영역, 행위적 영역은 교육학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학습이론이다. 인간의 인격도 지성, 정서, 의지로 구성되어 있고, 성령님도 그런 세가지 영역의 인격자이시다. 즉 성령님은 <지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가르치시며, <감정>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뜻대로 살 때에 기뻐하시고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 슬퍼하신다. 그리고 그 분은 또한 <의지>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자기의 뜻을 따라 행동하신다.
기독교교육이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존하여 전인적인 인격발달을 목표로 삼는다면, 기독교 교육을 통하여 영성발달을 도모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기독교교육>과 위로부터의 <성령의 역사>가 동반된다면, 놀라운 영성발달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럼 인간 인격의 세 영역에서의 영성발달 문제를 상고해 보기로 한다.
1.인지적 영역(cognitive domain)과 성령의 역사
(1)정의(definition)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의하면, <인지>(cognition)란 “앎의 과정”이라고 함으로 인간의 이성(理性)과 관계가 깊음을 말한다. 렌너(Renner)라는 학자와 그 동료 연구원들은 <인지(認知)란 사람과 그 환경과의 계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라고 정의하였다.
(2)인간발달을 위한 인지적 발달
인지적 발달은 영성발달이나 인간발달에서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는 인지심리학과 학습의 인지적 스타일 그리고 인지학습을 소개함으로, 인간발달을 위해 인지적 발달이 어떠함을 소개한다.
1)<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 --
<인지심리학>이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간의 지적인 과정과 기억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지심리학은 효과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효과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은 기독교교육에서 아주 중요한 관심사이다. 왜냐하면 기독교교육은 인간 행동의 변화에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의 인지적 영역은, 심리학에서도 큰 관심사이고 또한 이것은 영성신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지적 능력을 상실하거나 왜곡하면 인격과 신앙의 기본적인 틀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다서에도 이성을 잃은 사람을 짐승으로 비유하고 있음을 본다. 이것은 인지적 작용이 인격 및 영성에 매우 중요한 것임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몰라도 영성은 발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바른 말이 아니다.
2)<학습의 인지적 형태들: FID / FD> -- 위트킨(Witkin,1978)과 그의 동료들은 1940년 후반에 실험을 통하여, 두가지 형태의 인지적 학습 방법을 발견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는 <장의존(field dependence: FD)의 학습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장비의존(field independence: FID)의 학습 형태>이다.
<장의존의 학습 형태>란 어떤 정보 자체보다도 그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 더 관심을 두는 경향이다. 이 학습형태에 속한 학생들은 교사를 볼 때에 정보 제공자로 보기보다는 한 인간으로 보게 된다. 반면 <장비의존의 학습 형태>란 어떤 지각적 장(a perceptual field) 안에서 발견되는 자극들을 장(field)에서 분리시키려 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 학습 형태에 속하는 학생들은 교사를 볼 때에 한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정보의 제공자라는 관점에서 보게 된다. 그래서 장의존적인 사람들은 관계를 중요시하고, 장비의존적 사람들은 분석을 좋아한다.
3)기독교교육에 대한 인지학습적 접근 --
피아제(Jean Piaget) --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배운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상급이 된다.
브루너(Jerome Bruner) -- 인지적 발견학습의 대변자로서, 교사가 학생으로 하여금 학습의 장에 대한 전체적 구조를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고 구체적 내용을 학생 스스로 발견하는 기쁨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학습효과가 더욱 높아진다.
오슈벨(David Ausubel) -- <의미 있는 학습>은 그 사람의 현재의 지식 체제에 새로운 정보가 잘 합쳐질 수 있게 한다.
내부에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있다는 피아제의 이론이나 배움의 기쁨을 강조한 브루너의 이론이나 학습의 의미를 강조한 오슈벨의 이론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지적 영역에 있어, <지성>과 <감성>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욕이나 기쁨이나 의미라는 용어들은 감성적인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피아제의 주장은 교사가 교수학습과정(teaching-learning process)을 설정해야 하고, 브루너의 경우엔 교사가 문제해결과 발견학습을 위한 자극이 될 자료들을 공급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오슈벨의 경우엔 교사가 의미 있는 학습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자료 제공자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 모두에게 공통점은, 교사가 적극적이며 자발적인 <정보 제공자>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피아제의 경우도 비판을 받는데,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도교적 입장에서 볼 때, 그가 전제하는 인간성의 궁극적 선에 대한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브루너의 발견학습의 경우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은 고도의 기술과 많은 정보가 요구되는 시대인데, 발견학습만을 고집한다면 정보를 제공받는 일에 뒤떨어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발견학습을 모든 학생에게 적용시킬 수 없으며, 그의 이론은 단지 하나의 학습이론일 뿐이다.
우리 기독교 교육에서 교육의 절대적 내용은 <성경>이며, 절대적 교사는 <성령님>이시다. 기독교교육에서 메시지는 절대적이지만, 그 방법은 다양해야 하므로, 비기독교교육 이론들이 제시한 교육방법이라도 진리 전달 방법으로 적합하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3)영성발달을 위한 인지적 발달
인지적 발달은 영성발달과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을 영성발달의 원천적 자료로 삼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려면 일단 이성과 지성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쉘튼(Shelton, 1990)은 영성발달에서 <감정 이입>(empathy)이 매유 중요하지만, 동시에 분별력, 지각, 혹은 자기이해(self-understanding) 등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였다. 로빈슨(Robertson, 1975)은 지적하기를 성령충만한 신자의 삼대특징 중의 하나는 <구원에 대한 확고한 지식>("a know-so" salvation)이며, <아마 내가 구원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구원>(“a maybe-so” salvation)에 대한 인식만 가지서는 성령충만한 신자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카터(Carter, 1974)는 영성발달의 인지적 영역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시각에서 자신을 알고 남을 알고 세계를 아는 것이 영성 발달의 일곱 단계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가 <전지하심>(omnisceince)인데, 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이성적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그 이성은 영적인 세계에 대한 믿음을 수용하는 조건하에서의 이성이어야 한다.
1)성령과 인지적 영역과 영성발달 -- 이성이 없는 영 곧 비이성적인 영은 하나님의 영은 아니다. 인간의 이성 역시 영의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이다.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는 모범인간(a model Man)으로서, 물질로 된 육신(material body)과 이성적인 영혼(reasonable soul)을 가지셨고, 지적이고 도덕적인 인격을 가추셨다. 영성 발달이 그 분을 닮아가는 과정이라면 인지적 영역은 영성발달에 분가분적이다.
2)하나님의 말씀과 인지적 발달 -- 양자는 아주 깊은 관계를 가진다.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영성발달의 근원이 되는 <말씀>을 주시고 그의 종들로 그 말씀을 가르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신6:1-3, 마28:18-20). 가르친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은 인지적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지각을 사용하여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어린아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히5:13-14).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 말씀을 공부하여 진리를 깨달아 앎으로써 영성이 발달한다는 원리는 성경이 가르쳐준다 ---
ㄱ)행20:32 --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ㄴ)골1:9 --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여기서 바울은 영적 성장의 3가지 요소를 “신령한 지혜”, “총명”, “아는 것”이라는 인지적 영역과 관련시킨다.
ㄷ)벧후 1:5-7 --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영성발달을 위하여 지적 영역의 중요성을 말해주며, 또한 정서적 영역이 함께 함을 말한다.
ㄹ)렘3: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약육하리라.”
ㅁ)잠 2:10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성영의 역사로 작용하는 지적 작용은 영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ㅂ)사 43:10 --“나 야웨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
여기 “알고 믿으며”란 표현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분리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구약에서 앎이란 체험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머리의 지식>(head know-
ledge)이 <가슴의 지식>(heart-knowledge)으로 연결되어 삶의 정황 속에서 체험적으로 아는 지식을 의미한다. 중생자에게 성령이 역사할 때 머리의 지식이 가슴을 거쳐 삶의 현장으로 연결된다. 학습(learning)의 세 영역인 인지적 영역, 정서적 영역 및 행위적 영역도 같은 맥락으로, <학습>(learning)이란, 알고(knowing), 느끼고(feeling) 행함(doing)으로써 완전한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인지적 능력을 통하여 영성을 발달시키는 영적인 자원이 된다. 만약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냥 믿기만 한다든지 혹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알려고만 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영성발달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에베소 4:13에서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교훈한다. 크리스천들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은 물론, 자신과 타인과 세상에 대한 것을 알아야 그들의 <영성>이 정상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 지식은 영성발달에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