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번역본들의 증거
초기 번역본들의 증거
초기 번역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것은 시리아어와 라틴어의 번역본이다. 성경 번역의 역사는 헬라어 원문의 역사와 평행선상에 위치하는데, 특히 <구라틴 역본, Old Latin>과 <구시리아 역본, Old Syriac>은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이후 50년도 지나기 전에 번역된 것으로, 대부분의 헬라어 사본들이 필사되기 이전에 번역된 초기 번역본들이다.
학자들이 여러 가지 반론을 제기하지만, 분명히 <구라틴 역본>은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4세기)보다 먼저 있었다. 이는 2세기와 3세기의 교부들이 <구라틴 역본>을 인용한 것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시리아의 교회들이 모두 <구시리아 역본>을 사용했음을 보아 알 수 있다(시리아의 교회들은 431년 경에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그 두 그룹들은 모두 같은 성경을 사용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변개된 성경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가장 오래된 필사본"으로서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을 제시하지만, 그 사본들이 있기 오래 전에 이미 통용되던 성경이 그 두 사본들을 반대하고 있다면 그 두 사본, 즉 학자들이 그렇게도 숭배하는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의 권위는 무너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학자들은 이 두 번역본이 A.D. 2세기의 것이 아니라고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이다.
1. 시리아어 역본들
시리아는 팔레스타인의 북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유대인이 유래한 곳이기도 한데(신 26:5), 특별히 중요한 것은 그곳에 처음 성경을 가르치고 선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인 안티옥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다(행 11:26). 또한 시리아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조상들이었기에(창 11,12,24장), 하나님의 말씀이 유대인에게 맡겨졌다는 것이(롬 3;2) 적용될 수 있다.
1) 사복음서의 구시리아 역본 : 큐레토니안 시리아 역본(Curetonian Syriac, syc[c는 sy의 오른 쪽 위에 표기됨], syrc[c도 동일]) 과 시내 시리아 역본(Sinaitic Syriac, sys[s는 sy의 오른 쪽 바로 위에 표기됨] syrs[s도 syr의 오른 쪽 바로 위에 표기됨)이 있다. 특별히 후자는 시리아-비잔틴 계열의 헬라어 필사본들과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무조건 "서방원문"이라 부른다.
2) 페쉬타 / 시리아 벌게이트 : 페쉬타(Peshitta)라는 말은 "곧은, 똑바른"(straight)이나 "자, 척도"(rule)라는 뜻이며, 벌게이트(Vulgate)는 "일상적으로, 또는 평범하게 수용된"의 뜻이다. 약 1700년 동안 성경대로 믿는 교회들의 정통적인 견해는 페쉬타가 2세기 초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페쉬타가 <킹제임스성경>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 입장은 학자들에 의해서 부정되었다.
3) 팔레스타인 시리아 역본(sy pal[pal은 sy의 바로 오른 쪽 위에 표기됨]) : A.D. 400-450년에 기록된 것이다. 헬라어 <표준원문>과 일치하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카이사랴 계열"이라는 것을 만들었으며, 이 역본을 <표준원문>과 다른 계열(카이사랴 계열)로 분류해 버렸다.
2. 라틴어 역본들
<구라틴 역본>의 번역도 시리아의 안티옥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리스도인 선교사들의 손을 통해 유럽과 아프리카로 전해졌다. 이것이 후에는 두 개의 개정본, 즉 아프리카의 개정본과 유럽의 개정본으로 바뀌게 된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라틴어 역본에 외경이 첨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라틴어 역본을 신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외경이 첨가된 <구라틴 역본>의 초기 필사본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라틴어 역본에 외경이 첨가된 것은 후에 개정된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에서였다(A.D. 400-420). 이것은 중세 기간 중에 로마 카톨릭의 공식 성경이 된다.
현재 파리의 도서관들에만 800개 정도의 필사본들이 있고, 수천개의 <구라틴 역본>과 벌게이트의 필사본들이 개인과 도서관들에 소장되어 있으며, 여러 시기의 많은 벌게이트 판본들이 나타난다.
1) 구아프리카 라틴 역본 : 여기에는 코덱스 팔란티누스(Codex Palantinus, e), 플레리 팔림세스트(Eleury Palimpsest, h), 보비엔시스(Bobbiensis, k) 등이 있다.
2) 구유럽 라틴 역본 : 여기에는 코덱스 베르셀렌시스(Codex Vercellensis, a)와 코덱스 베로넨시스(Codex Veronensis, b), 코덱스 콜베르티누스(Codex Colbertinus, c), 코덱스 베자(Codex Bezae -Cantabrigiensis / Codex Claromntanus, d), 코덱스 기가스(Codex Gigas, gig) 등이 있다. 여기서 코덱스 베자는 헬라어와 라틴어의 대역인 베자사본에 있는 라틴어 역본을 지칭하는 것이며, 특별히 코덱스 기가스는 때때로 "마귀의 성경"(The Devil's Bible)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이 성경이 유럽에서 "반카톨릭주의", 즉 카톨릭이 "이단"으로 부른 사람들에게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3) 라틴 벌게이트(vg, A.D. 420) : 암흑시대에 카톨릭에 의해 이루어진 공식적인 개정본이다. 제롬이 만든 이 역본은 <표준원문>의 본문과 <구라틴 역본>의 본문을 제거했고, 대신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의 본문으로 대체시켰다. 그 결과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의 신약은 기본적으로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의 본문이 된다. 그러나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나온 이후에도 <구라틴 역본>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 필사되었다. <구라틴 역본>은 초기의 켈트인(Calts)과 서유럽의 프랑크족(Franks), 골 사람들(Gauls)에게 전수되었다.
터툴리안은 A.D. 200년에, 씨프리안은 A.D. 240-250년에, 이래내우스는 A.D. 120-190년에, 히폴리투스는 A.D. 180-235년에 <구라틴 역본>을 인용했는데, 이은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이 등장하기 오래 전이었다. 그래서 제롬은 권위있는 이 성경에 상충되는 카톨릭의 공식적 개정본을 제시함으로써 성경변개의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라틴 역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i) <구라틴 역본>은 <킹제임스성경>과 매우 일치하며,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나 오리겐을 반대한다.
ii) <구라틴 역본>은 많은 헬라어 필사본들에 없는 본문들(예를 들면 요일 5:7-8, 행 8:3; 9:5-6)을 담고 있다.
iii) 제롬의 카톨릭 <라틴 벌게이트>는 많은 부분에서 <구라틴 역본>을 개정했다. 이는 <구라틴 역본>이 카톨릭 교회의 적들, 즉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성경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왈덴시안들이 구라틴 역본을 사용했다.) <구라틴 역본>의 본문들은 프랑스의 보존된 성경 <올리베탄>과 이태리 성경 <디오다티>와 같이 <표준원문>에서 번역한 다른 번역본들과도 일치한다. 이 <구라틴 역본>이 아일랜드에서 성 패트릭(389-465)이 가지고 있던 성경이었다(고대 영국은 카톨릭이 오염시키기 이전에 패트릭에 의해서 복음화가 되었는데, 그 초기의 브리튼(British) 그리스도인들은 <구라틴 역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니고 있었다. 이는 오리겐이 헥사플라를 만들기 전이며,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가 만들어지기도 전이었다. 드루이드교도들도 패트릭을 통해 개종했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성경은 물론 구라틴 역본이었다.)
3. 고트어 역본(goth)
고트어 역본은 울필라스(Ulfilas, A.D. 350)가 번역한 것으로, 유럽의 언어로 번역한 첫번째 역본이다. 평가되기로는 울필라스가 "아리안주의"(Arianism)를 취했다고 하는데, 사실 그 용어는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 "반 카톨릭"의 입장을 취하는 모든 사람에게 붙여진 용어였을 뿐이다. 그래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항상 "아리안주의자"로 불리게 된다.
울필라스는 고트인들에게 선교하는 감독이었는데, 문자가 없이 말로만 사용된 고트어를 기록된 형태의 문자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그는 고트어 알파벳을 만들었다. 울필라스는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과는 다르게 콘스탄티노플(비잔틴)에서 유래한 헬라어 필사본들, 즉 전통원문(표준원문)의 필사본을 사용했다. 고트어 성경은 A.D. 330년에 사용되고 있었고, 그 이후까지 바티칸사본과 시내사본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울필라스의 필사본들은 알렉산드리아의 변개된 성서들보다도 최소한 20년이 앞서거나 100년은 더 오래된 것이다.
현재 울필라스의 역본 중 남아 있는 것은 "코덱스 아르겐테우스"(Codex Argenteus) - "은 코덱스"(the silver Codex) -인데, 그것은 복음서 전체를 담고 있으며, 벨럼에 은 잉크를 사용하여 큰 글자로 기록한 것으로, 현재 스웨덴 웁살라의 대학 도서관에 있다. 고트어 역본은 이외에 바울 서신서들의 필사본과 아홉 개의 다른 필사본들에 보존되어 있다.
4. 에디오피아 역본(eth)
에디오피아 역본은 A.D. 350년 경에 열 권의 외경과 일곱 권의 위경을 담은 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에디오피아 역본의 본문은 혼합된 본문이지만, 훼손당하기 전에는 비잔틴 본문이었다는 분명한 표시가 나타난다.
5. 아르메니아어 역본(arm)
아르메니아어 역본은 때때로 "역본들 중의 여왕"이라고 불리며, 학자들에 의해서도 초기 역본들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정확한 것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라틴 벌게이트>를 제외하면 아르메니아 역본의 필사본들은 고대의 다른 역본들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 이 역본은 마태복음 1:25; 5:22; 6:13; 누가복음 2:14; 23:42, 요한복음 9:35 등과 다른 많은 곳에서 변개된 성서들과 달리 올바른 본문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성경 변개자들은 시리아 원문 유형의 다수 필사본들에서 아르메니아어 역본을 제거하려고 이 역본이 성격상 "카이사랴 계열"이라고 분류했다.
군인이었다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선교사가 된 메슬롭(Mesrob, A.D. 361-439)은 울필라스가 고트인들을 위해 했던 것처럼 헬라어와 시리아어와 페르시아어의 글자들을 아르메니아어 글자들로 전환시켜서 아르메니아어의 알파벳을 만들었고, 그것이 아르메니아어 신약에 사용되었다.
6. 그루지아어 역본(geo)
그루지아는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구소련의 연방에 있던 공화국이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선교사들이 A.D. 330년 경에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루지아어 역본의 복음서 필사본들 중에서 오래된 것은 A.D. 897년의 아디쉬(Adysh)와 A.D. 913년의 오피자(Opiza)와 A.D. 995년의 트베트(Tbet) 필사본등이 있다. 그루지아어 역본은 분명하게 시리아-비잔틴 원문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또 다시 학자들에 의해 억지로 "카이사랴 계열"로 분류된다.
7. 그 밖의 번역본들
1) 슬라브어 역본 : A.D. 792-816년 경에 번역되었다.
2) 아라비아어 역본 : 전통에 따르면 A.D. 650년에 시리아 역본에서 번역되었다.
3) 누비아어 역본: 12세기에 번역되었다.
4) 페르시아어 역본: 17, 18세기에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