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
감독 : 알랭 꼬르노 / 1991년 / 114분 / Color / 프랑스
출연 : 쟝 삐에르 마리엘, 제라르 드빠르디유, 앤 보쉐, 기욤 드빠르디유, 미셀 부케
17세기 말엽,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궁정악단장인 ‘마랭 마레(제라르 드빠르디유)’는
악단의 연주연습을 감독하던 도중 갑작스레 깊은 탄식 속에 자신의 제자이자 단원들에게
진정으로 자연과 인생을 위한 음악적 삶을 영위한 그의 스승이자 비올의 거장이었던
‘쌩뜨 꼴롱브(쟝 삐에르 마리엘)’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17세기 중반, 루이 14세가 지배하던 때에 비올의 명인,
쌩뜨 꼴롱브는 아내의 죽음 이후 어린 두 딸에게만
자신의 비올 제작법과 연주법을 전수하며 시골의 오두막에 은거한다.
절대왕정의 치세였음에도 궁정의 초대를 거절한 채 자연과 가족만을 벗하며
마치 수도승의 모습으로 비올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구두수선공의 아들로서 가난하지만 자신만만한 음악도인 젊은 마랭 마레(기욤 드빠르디유)가
제자로 받아주기를 자청하며 꼴롱브의 오두막 집 문을 두드린다.
마레가 끌롱브에게 까지 흘러온 이유는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활용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는 궁정음악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야망이 그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끌롱브는 이러한 마레의 야망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의 드높은 재능을 더욱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조용하고 엄격하지만 최선의 열정으로 그를 비올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렇게 12번째 레슨을 위해 끌롱브의 집을 방문한 날,
마레를 문 앞에서 맞이한 이는 바로 꼴롱브의 장녀 ‘마들린(앤 보쉐)’이었다.
피끓는 청춘답게 발그레한 젊음과 빛나는 음악적 재능을 발산하는 그녀로 인해
생애 처음으로 사랑의 열병에 걸려버린 마레는 스승의 눈을 피해 마들린과 사랑의 밀어를 나눈다.
한편, 꼴롱브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에게 궁정초대를 제안하던 시종장은
성공의 야망에 불타는 마레의 재능을 접하게 되고 마레는 꿈에 그리던 궁정에서의 연주회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꼴롱브는 그러한 마레를 용납하지 못하고 파문시킴으로서 스승과 제자의 연을 끊고 만다.
그 뒤 꼴롱브는 제자의 배신으로 인해 더더욱 고독 속에 음악을 벗하며 초야의 삶을 이어가고
이미 그에게 지독한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린 마들린은 마레를 위해
아버지 꼴롱브의 오두막 연주를 몰래 엿듣도록 해준다.
이러한 마들린의 헌신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궁정에서의 성공에 빠져든 마레는
기어코 마들린을 저버리고 만다.
배신과 실연의 고통 속에 신음하던 미들린은 아기를 사산하고
자살을 선택하며 마레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마들린이 남긴 유언을 지키기 위해 다시한번 꼴롱브의 음악을 훔쳐듣던 마레와 오두막의 꼴롱브는
오로지 음악을 공유했기에 가능한 해후를 통해 삶과 사랑
그리고, 자연이 합치된 세상의 모든 아침을 맞이하는 협주를 시작한다.
지난 8월 29일 유라시아 대륙너머 저편 프랑스에서 한 부고가 전해졌다.
향년 67세의 나이로 영면한 그의 이름은 ‘알랭 코르노’...
사인은 오랜 시간동안 그의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던 ‘암’때문이었다.
(솔직히 오랫동안 ‘암’을 삶의 일부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인지 언뜻이라도 감조차 잡히질 않는다.)
한국의 영화대중들은 그의 이름이 일견 생소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간신히 떠오르는 기억의 서랍을 뒤적이며
찾을 듯 말듯 한 그 이름과 연관지울 수 있는 영화제목을 떠올리려 애쓸 수도 있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적을 부류,
그의 이름을 다음의 영화제목과 연관 지어 연상해낼 시네팬들이 존재할 것이다.
‘형사페로(폴리스 피스톨357)’, ‘인도의 밤’, ‘사강의 요새’, ‘악의 미로’,
‘두려움과 떨림’, ‘두번째 숨결’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침’까지...
한국에서는 비록 낯선 존재일 수 있으나
그는 모국 프랑스를 넘어서 유럽과 미주에 이르기까지 꽤 폭넓은 팬층의 지지를 받는 흥행감독이었다.
일례로 역시 오래전 고인이 된 프랑스의 전설 ‘이브 몽땅’이 살인 누명을 쓰고
이를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는 형사로 분한 꼬르노의 초기 대표작 ‘형사 페로
(1976년, 한국 개봉명, 원제는 ‘폴리스 피스톨357’)’는
프랑스에서의 대성공 이후 회수를 건너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는 시네마니아들에게
컬트적인 인기와 명성을 누리다가 일찌감치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에 리메이크 판권이 넘어가면서
‘케빈 코스트너’와 ‘진 해크먼’, ‘숀 영’ 등의 당대 흥행배우들을 출연시킨
<노웨이 아웃(1988년)>이라는 이름의 헐리우드식 스릴러물로 재탄생되어
전 세계적인 흥행몰이에 성공한 적도 있다.
그렇다고 그가 헐리우드나 최근의 한국영화계 흥행사 감독들과 같은 류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가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당대의 역사속에서
크나큰 시류를 형성하고 만들어내던 68혁명 세대의 기운이
상당부문 사그라들기 시작 할 무렵 영화계에 진출 했다.
당시 프랑스 영화계는 일명 ‘누벨바그’라고 불리우는 일군의 평론가 출신의 감독들
즉,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끌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자끄 리베트’ 등을 위시한 68혁명의 자장 안에서 영화의 역사적 단절과 형식의
획기적 변화를 꿈꾸고 주도하던 미래의 거장들에 의해 일대 변혁이 진행 중 이었다.
이들 누벨바그 감독들은 먼저 ‘까이에 뒤 시네마’ 등의 지면을 통해
‘줄리앙 뒤비비에’, ‘르네 클레망’, ‘앙리 조르쥬 클루조’ 같은
먼저 세대의 거장들을 영화를 문학의 하위 장르에 종속시킨 원흉들로 지목하며
이들이 더 이상 영화계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만
영화가 혁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적 매체로서 독자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이전까지 프랑스 영화 특유의 서사적 맥락을 구축해오던 영화적 전통은
수면 아래로 숨죽이며 낮은 포복자세를 취했으며 이후 한동안 프랑스 영화계는
대중과의 접점을 점점 좁혀 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때 나타난 68이후의 세대들 속에서 바로 ‘알랭 꼬르노’도 수면위로 등장하게 된다.
‘베르트랑 따베르니에’와 ‘알랭 꼬르노’를 위시한 이들의 등장은
온갖 혁명적 이고 형시적 실험성에 지쳐 있던 프랑스의 대중들을 다시금 극장 앞으로 모이게 했다.
누벨바그와 그 전 세대 프랑스 특유의 서사적 전통, 거기에 프랑스에도 밀어닥친 헐리우드 영화의 영향까지
편견과 선입견을 두지 않고 되도록 모든 영화적 사조의 영향력을 받아들인 이 세대는
대중영화를 만들되 작가적이거나 미학적인 인장을 대중영화 속에 새겨 넣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알랭 꼬르노를 사로잡은 영화세계는
그의 데뷔작인 <형사 페로>가 말해주듯 본래 스릴러라는 장르였다.
이렇게 언급해 놓고 보니 지금부터 이야기해야 할 작품인 <세상의 모든 아침>과는
어딘지 삐끗하게 어긋나버린 취향과 세계관을 지닌 감독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는데
그의 스릴러물은 여느 스릴러물의 장르적 외향을 띄면서도 세상과 인물,
인물과 인물의 관계를 그려내는데 있어서 헐리우드적 공식에서 비켜나와
이들 요소를 잊는 관계망과 자연적 숙명이라 할 만한 인과적 과정을 내밀하게 관찰하고
표현해내고 묘사하는데 주력한다.
그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처럼
사건을 능동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과 운명의 견고하고 복잡다단한 실타래 속에서 자신을 옥죄고 흔드는 것의 실체에
제대로 다가서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기 십상이다.
이러한 영화적 세계와 시선은 그가 간간히 제작 감독한
예술영화적 상향을 지닌 대중영화들 속에서도 찾아진다.
<인도의 밤>에서 봄베이의 대형 역 근처를 벗어나지 못한 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기다림에
무력해져가는 프랑스 남자가 그러하고, <두려움과 떨림>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탓에
언제나 그리워하고 선망하던 일본의 대기업에 입사한 후 확연히도 다른,
이해하기에도 적응하고 받아들이기에도 너무 벅찬 일본 특유의 위계 시스템 속에서
지옥을 경험하는 프랑스 여성이 그러하다.
<세상의 모든 아침>에 존재하는 모든 인물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다만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비올의 대가이자 은둔자인 ‘생뜨 꼴롱브’가
세상과 자신 사이에 놓여진 세속적 욕망을 은둔의 형태로 포기, 아니 버림으로 해서
오히려 자연과 합일된 ‘비올’의 소리와 그로인한 음악을 곁에 둔 자라는 것이다.
그에 반해 ‘마랭 마레’와 ‘마틸드’는 끝내 세상과 자신, 타인과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욕망의 실타래를 끊어내지 못한다.
그로 인해 초야에 묻혀 고고한 삶의 표상이 되는 꼴롱브와 달리 마레는
회한에 잠긴 질긴 삶을 이어가며 마틸드는 비통 속에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 각자의 선택과 숙명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택한 선택으로 인해 빚어진 삶의 흐름 안에서 인생과 예술(음악)이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관찰하듯 묘사할 따름이다.
이러한 서사의 방식은 꼬르노의 지극히 장르적인 외향의 스릴러물에서건
예술 취향적 대중영화 안에서건 변함없는 그의 영화적 인장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1991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이 지금에 와서 흥미로운 점은 바로 알랭 꼬르노 자신이
20년여 전에 그려낸 꼴롱브의 삶을 닮아 있었다는 점일 게다.
영화에서 성공을 꿈꾸던 야심찬 신진영화감독에서 어느 새 중견을 넘어
노장의 대열에 들어서기 시작할 무렵 세계를 마치 집시처럼 떠돌며 운둔자적인 삶을 살아가다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양 그렇게 조용한 영면을 맞이한 그의 삶은
자신만만한 야망으로 빛나던 젊은 날의 ‘마레’와 회환으로 가득한 중년의 ‘마레’를 거쳐
자신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숙명을 받아들인 노년의 ‘꼴롱브’적인 삶으로 마감하는
인생과 예술이 합치된 어쩌면 영화감독으로서는 최상의 방식인
자신의 영화적 세계를 닮아있는 회자정리 속에 떠나간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실 그가 본격적으로 운둔자의 삶을 선택한 시점 또한,
꼬르노가 양부로서 어린 시절부터 친딸과 다름없이 키워온 촉망받는 배우이자 영화감독이었던
‘마리 트래티냥(그녀의 친아버지는 프랑스의 명배우 ‘장 루이 트래티냥’이다.)이
록스타인 동거남에게 맞아 죽는 사고의 충격 때문이었으니
영화 속 ‘마틸드’를 잃는 ‘꼴롱브’의 삶과 꼬르노의 삶이 데자뷰 처럼 얽혀드는 것은
차라리 삶 자체가 자신이 구축해놓은 예술을 닮아가는 역설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비록 그가 암과의 투병으로 인한 고통 속에 죽어갔을지라도
그가 보여준 인생과 예술이 오묘하게 합치되는 마지막 삶의 장면은
어쩌면 그의 예술(영화)적 작업에 화룡점정을 찍는 최후의 작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해 본다.
그것이 필자만의 과도한 의미부여가 될 지라도 말이다.
Ps. 그러고 보니 프랑스의 국민배우라 할 수 있는 아버지 ‘제라르 드빠르디유’와 함께 출연한
젊은 마랭 마레역의 ‘기욤 드빠르디유’도 2008년 부자와의 연을 끊고 지내던
아버지와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2008년 10월 급작스레 세상에 이별을 고하였으니
새삼 <세상의 모든 아침>이 어느 덧 20년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과 함께
세월이 지닌 무상함이라는 속성과 그 존재의 보이지 않는 무게가 사무치 듯 느껴지는 순간이다.
- 대전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 대전독립영화제 총괄 프로그래머 민병훈 -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
이 영화는 1991년 프랑스에서 처음 개봉되었다.
영화의 제목은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 ’의
동명의 소설에 나오는 다음의 문장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Tous les matins du monde sont sans retour.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우리 모두에게 어떠하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서 ‘모든’ 은 전체가 아니라 우리들 각자를 말할 것이다.
사람 하나 하나의 개별적인 경험과 기억들, 아픔과 슬픔,
그리고 잠시의 기쁨들, 그리고 수 많은 ‘아침’ 그 자체들.
이것들은 모두가 그 자체로서 아름다울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면서.
마치 음악처럼.
‘알랭 코르노’ 감독은 음악과 오래 전부터 17세기를 주제로 하여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는데,
우연히 작가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를 만나게 되었다.
음악애호가였던 키냐르는 요즘 말하는 정격연주와 고음악연구가인 호르디 사발(Jordi Savall)의 음반을 통해
생트 콜롱브(Sainte Colombe)의 음악을 알고 있었다.
또한 키냐르는 이미 바로크시대의 악기비올(viol)에 대한 글을 쓴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알랭 코르노’ 감독을 중심으로 세명의 거장의 호흡이 이루어낸 명작이 탄생한다.
그들은 17세기 말의 훌륭한 비올 연주가이자 작곡가였던 마랭 마레(Marin Marais)와
그의 스승 생트 콜롱브(Sainte Colombe)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세가지를 접하며
17세기 말 프랑스의 음악과 진정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색의 길과 조우하게 된다.
그것은 ‘생트 콜롱브 (Sainte Colombe; 1691? - 1701?)’,
‘마랭 마레 (Marin Marais; 1656 - 1728)’ 그리고 비올(Viol) 이다.
꼴롱브(Monsieur de Sainte Colombe)는 17세기 프랑스의 음악가로
당대의 비올 연주자 중 가장 뛰어난 연주가였다 한다.
베이스 비올을 위한 작품을 상당수 작곡했는데 그의 작품들은 최근에 재발굴되고 있다.
그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의 제자였던 마레의 비올작품집 2권에
'Tombeau pour Monsieur de Sainte Colombe(생트 콜롱브 선생의 무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701년 즈음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레의 자품 출판년도가 1701년이다)
콜롱브는 6현에서 현 하나를 더 추가시킨,
7현 베이스 비올의 발명자로 풍부하고 무게감 있는 음색을 얻어냈으며,
유창한 왼손 테크닉과 노래하는 기악 양식을 발전시킨 인물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연주하기 매우 난해한 작품들이 많다 한다.
이로써 우리는 그가 당대 최고의 비올 연주자 였으리라 짐작을 한다.
그는 음악을 팔려하지 않았고 그의 살롱에서만 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에서는 이것이 큰 주제가 되어 우리를 음악에 대한 사색의 길로 이끌어 간다.
마랭 마레(Marin Marais)는 1656년 파리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음악공부를 시작했고
당대 최고의 비올 연주가로 명성을 날렸다.
꼴롱브의 제자로 단지 6개월만에 꼴롱브의 음악을 모두 섭렵했다고도 전해진다.
20세 되던 해에 그는 장 밥티스트 륄리의 궁정악단에서 연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륄리로부터 작곡기법을 완벽하게 익혔다고 한다.
1679년에 그는 왕실 음악가로 인정받게 되었고,
1686년부터 1725년까지 작곡한 5권의 비올 작품들이 특히 유명하다.
마레는 당시 이탈리아의 음악적 영향권 아래 있었던 프랑스 음악을
프랑스적인 것으로 되돌리는데 이바지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영화 전체를 음악으로 이끄는 악기 비올은 첼로의 전신인 바로크시대의 악기 이다.
왼팔로 받치고 턱을 끼워 연주하며 고음부를 담당했던 ‘비올라 라 브라치오’(팔의 비올) 와
오늘날의 첼로처럼 무릎에 끼고 연주한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 발의 비올 혹은 무릎의 비올) 가 있다.
우리는 바흐나 비발디 등 바로크시대 유명작곡가들을 통하여
‘비올라 다 감바’에 대하여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비올라 다 감바는 하프시코드 반주와 어울려 저음용 악기로서
바로크 시대 화성의 토대가 되었다(통주저음).
비올족은 점차 쓰임새가 없어져 사라졌다가 20세기에 와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이 인기를 끌자 새롭게 복원되었다.
비올족의 울림구멍은 f자 형이 아니라,
C자 형이므로 우리는 첼로등의 현대악기와 형태를 통해 구분할 수 있고
금속현이 아닌 음색의 부드러움과 깊이 등에서 사람의 소리와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악기는 ‘비올라 다 감바’ 이다.
1675년경부터 1770년 경에 걸쳐 프랑스의 비올라 다 감바 음악이 유럽각지에 퍼졌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마렝 마레가 작곡한 곡들이 유명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프랑스에서는 이 시기에 비올악파가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비올라 다 감바는 주로 귀족들이 모이는 살롱의 음악회에서 연주되었는데,
생트 콜롱브는 자신의 집에서 여는 연주회로 유명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그는 두 딸과 함께 합주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한 딸은 고음을 다른 한 딸은 저음을 연주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하여 그들이 들려주는 비올라 다 감바 트리오의 깊이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논하며 떠들어 대는 제자들의 소란 속에서
‘마링 마레’가 스 승 ‘생뜨 꼴롱브’를 회상하며 시작한다.
“세상 모든 음악의 끝은 죽음이라네.”
“난, 사기꾼일세.
아무짝에도 소용없고 이룬게 없어...
부끄러울 뿐이야.
그는 음악 그 자체였지...“
라고 말하며 스승 ‘생뜨 꼴롱브’의 삶과 음악적 전기를 회상한다.
비올라의 거장인 생뜨 꼴롱브는 사랑하는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자
어린 두딸과 전원속 오두막에 묻힌다.
궁정에서는 그를 모셔가려고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하며 거절한다.
"선생 ,뽕나무 위에 지은 한 채의 오두막,비올라의 일곱개의 현이 어우러져 내는 소리,
그리고 어린 두 딸들에게 나는 인생을 바쳤고. 추억들만이 내 벗일 따름이오.
저 버드나무들, 비에브르 강에 흐르는 물, 거기서 뛰노는 황어와 모샘치,
딱총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들.여기가 바로 내 궁전이오."
Une jeune fillette
스승과의 만남.
마들린과의 사랑.
궁정연주와 파문.
출세를 향한 집념과 엇갈린 사랑.
마들린의 자살.
회한과 반성, 그리고 성찰.
그리고 화해.
진정한 음악으로 향하는 이해와 몰입.
“자세도 좋고 감정해석도 좋아.
기교도 있고 매력적이야.
장식도 좋고.
하지만 음악은 들리지 않는군......
자네의 연주에서는 음악을 느낄 수 없어.“
“거리의 음악과 진정한 음악이 구별이 되나.”
“고통에 찬 자네 목소리 대문에 제자로 받아주겠네.”
"자네의 망가진 목소리가 나를 감동시켰어.
나는 자네의 예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네가 느끼는 고통 때문에 제자로 삼으려는 것이네."
처음의 만남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이르는 말이다.
“나에게서 훔쳐간 곡조들로 먹고는 살 수 있겠지.
나는 결코 작곡을 한적이 없다네.
그것은 종이위의 점들에 불과하니까.
보다 소중한 것들이 세상에는 많다네.“
"나는 작곡을 하지 않는다네.
나는 절대로 아무것도 작곡한 적이 없어.
내음악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떤 이름, 즐거운 날들의 회상,
비에브르 강을 흐르는 물, 강가의 개구리밥, 쓰디쓴 쑥,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들, 그런 것들이 내게 가져다 주는 선물일 뿐이지."
"나는 활을 그을 때 내 생가슴의 작은 조각을 찢는, 그런 느낌을 받네.
내가 알고있는 것은 단지, 어느 날도 축제일로 정해지지 않는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 뿐이네."
스승의 이별의 말이다. 그리고 출세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버린다.
세속에서 성공한 제자는 오히려 진정한 음악에 대해 번민한다.
그리고 다시 보름달이 환하고 구름이 높기만 하던 겨울 밤
다시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둔 스승을 찿는다.
“음악에서 자네는 무엇을 구하는가.”
“ 슬픔과 눈물을.....
“음악은 언어를 초월한다네.
음악은 왕을 위한 것도 아니고,
신을 위한 것도 아니고, 신의 음성이라네.“
“침묵을 위한 것인가요.”
“침묵은 언어의 이면이지.”
“공허도 아니라네.”
제자는 깨닫는다 스승의 첫 가르침에서.
“죽은 자를 위해 잔을 남겨두어야지요.
음악은 지친자를 위한 휴식이죠.
길 잃은 자를 위한.
구두장이의 망치소리를 잊기위한.
우리가 태어나기전,
생명도 없고 빛도 없던 그 때를....“
그리고 화해의 이중주,
먼저 간 마들린의 비욜로 연주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남자의 이중주.
그러나 오두막에서의 스승과 제자의 연주를 통한 화해와 이해 속에서도
진정한 음악의 길에는 이르지 않는다.
단지 마레는 콜롱브가 지향하는 음악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었다.
진정한 음악은 영혼 자체를 구원하고 안식에서 숨쉬게 하는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를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꼴롱브가 제자에게 나타타고 이 순간
꼴롱브의 몸짓과 말과 눈, 그리고 빛이 어우러지는 영상적 형상이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정한 음악의 뜻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진정, 음악은 소리와 소리의 사이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어져 있지도 떨어져 있지도 않는, 생과 생 사이에,
생과 죽음의 사이에, 그 소리와 소리 사이에.
시간의 선위에서 새로운 시간의 파랑을 안에서 잉태하는,
모든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들 사이의 흐름들.
흘러 평온하고 흘러서 안식으로 향하는 모든 사이의 공(空)은 아닐까.
그렇게 엮어가는 음악적 천위에
바로크 정물화라는 깊은 무늬가 여백을 만들어 간다.
스승의 음악을 몰래 엿듣던 마랭의 눈빛, 움푹 패인 마들렌느의 얼굴,
신발을 묶는 노란 끈, 보긴의 과자, 와인 술병 그리고 초가 타오르는 바로크 정물화.
그리고 그 정물화와 같은 음과 색으로 마지막 2중주를 연주하는 스승과 제자...
한폭의 바로크 시대 그림이 비욜의 음악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듯한 아름다운 영화이다.
영화의 음악은 스페인의 고음악학자이자 연주가인
호르디 사발(Jordi Savall)이 맡았다.
꼴롱브, 마링 마레, 쿠프랭등의 음악에
본인이 바로크식으로 작곡한 곡들을 연주한다.
어쩌면 영화 보다 더 유명해진 것이 OST음반 일지도 모르겠다.
사발도 애착을 가지고 다시 발매할 정도 였으니까.
Improvisation sur les Folies d'Espagne (M. Marais)
유명한 'La Folia(라 폴리아)'의 이베리아 테마를 마레가
콜롱브의 앞에서 최초로 즉흥연주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곡이다.
12. LES PLEURS
이어듣기
01. MARCHE POUR LA CEREMONIE DES TURES
02. IMPROVISATION SUR LES FOLIES D'ESPAGNE
03. PRELUDE POUR MR VAUGQELIN
04. GAVOTTE DU TENDRE
05. UNE JEUNE FILLETTE
06. LES PLEURS
07. CONCERT A DEUX VIOLES "LE RETOUR"
08. LA REVEUSE몽상
09. TROISIEME LECON DE TENEBRES A 2 VOIX
10. L'ARABESQUE
11. FANTAISIE EN MI MINEUR
12. LES PLEURS
13. LE BADINAGE
14. TOMBEAU POUR MR DE SAINTE COLOMBE MR DE SAINTE
15. MUZETTES I-II
16. SONNERIE DE STE GENEVIEVE DU MONT DE PARISMONT-DE-PARIS
<세상의 모든 아침>에 등장하는 꼴롱브와 마랭 마레는 실존했던 인물들로 17세기 프랑스의 전설적인 비올 연주가이며 작곡가였다. 그러나 꼴롱브(Monsieur de Sainte Colombe)에 대해서는 음악학자들도 아는 바가 거의 없어 그에 대한 자료를 찾기는 힘든다.
다만 그는 17세기 당대의 비올 연주자 중 가장 뛰어난 연주가였으며, 베이스 비올을 위한 작품을 상당수 작곡했는데 그의 작품들은 현대에 와서 재발굴되고 있다는 것과 6현인 비올에 한 줄을 더 추가해 보다 풍부하고 무게감 있는 음색을 얻어냈다는 정도이다. 그의 작품들은 연주하기 매우 난해한 작품들이 많으며, 이 때문에 그가 당대 최고의 연주가였으리란 추측이 가능하다. 그는 음악을 팔려하지 않았고 그의 살롱에서만 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랭 마레(Marin Marais)는 1656년 파리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음악공부를 시작했고 당대 최고의 비올 연주가로 명성을 날렸다. 20세 되던 해에 그는 장 밥티스트 륄리의 궁정악단에서 연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륄리로부터 작곡기법을 완벽하게 익혔다고 한다. 1679년에 그는 왕실 음악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마레는 오페라도 작곡했는데, 1686년부터 1725년까지 작곡한 5권의 비올 작품들이 특히 주목할만하다. 마랭 마레는 당시 이탈리아의 음악적 영향 아래 있었던 프랑스 음악을 독창적인 프랑스음악으로 만드는데 이바지한 인물로 현재까지 기억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악기는 비올라 디 감바라는 중세시대 악기이다. 이 악기는 왼팔로 받치고 턱을 끼워 연주하는 높은 소리를 내는 비올라 라 브라치오(팔의 비올)와 오늘날의 첼로처럼 무릎에 끼고 연주하는 비올라 디 감바(발의 비올)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음악을 맡은 죠르디 사발은 고음악연구가로 100번 이상의 레코딩과 '디스크 프랑스 아카데미'(1989)와 '샤를 꼬로 아카데미'(1990)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음악가이다.
이 영화에서는 꼴롱브의 <Gavotte du Tendre>, <Les Pleurs> , <두 대의 비올을 위한 협주곡 귀환> 과 마렝 마레의 <꿈꾸는 소녀>, <라베스크>, <Le Badinage>, <Tombeau pour Mr De Sainte Colombe> 등의 비올 연주를 들을 수 있다.
- 출처 ; 김영일 교수의 영화보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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