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5677

망초도 꽃이다 - 오솔길

망초도 꽃이다 - 오솔길아침나절 읍내 가는 버스를 탄다차창 밖으로 망초들 무리를 본다망초도 모여 피니 정겹다아무도 갈지 않은 묵밭에서군 부대의 철조망 담장 밑에서흐드러지게 핀아 너도 꽃이었구나하찮은 잡초가 아니었구나버스 안은 온통 촌로들일생을 흙과 살다가이제는 늙고 병들어 묵정밭 잡초같은 노인들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때로는 한숨 쉬고때로는 가슴 훈훈해 지는 나도 망초였구나모여서 아름다운 망초였구나

시선 - 마종기

시선 - 마종기어떤 시선에서는 빛이 나오고다른 시선에서는 어두움 내린다어떤 시선과 시선은 마주쳐자식을 낳았고다른 시선과 시선은 서로 만나손잡고 보석이 되었다다 자란 구름이 헤어질 때그 모양과 색깔을 바꾸듯숨 죽인 채 달아오른 세상의 시선에당신의 살결이 흩어졌다어디서 한 마리 새가 운다세상의 바깥으로 나가는 저 새의 시선시선에 파묻히는 우리들의 추운 손잡기

춘화春畵 - 김종제

춘화春畵 - 김종제북한산 쪽두리봉 기슭에야한 춘화 그려져 있다고어디서 소문 듣고 구경간다진달래, 홍매화 처녀들저고리 풀어헤쳐탐스런 젖가슴 드러내놓았고개나리,산수유 저 여인네들허벅지 슬쩍 보여주며숲속에 앉아 노닥거리는데이팔 청춘의이제 막 물 오른신갈나무, 작살나무 남정네들까치발로 훔쳐 보고 있네누가 그려 놓은 저 춘화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내 속에서 발기하는 것 있어낙엽 위에 돗자리 하나 깔아놓고사랑하는 사람 불러내야겠다절벽에는 또 울긋불긋사람꽃들이 피었네너럭바위에 앉아서꽃밥에. 꽃찬에. 꽃물에 취해서황홀한 봄 아닌가불끈불끈 솟는 봄기운을도대체가 감당할 수 없어서아직 차가운 시냇가에풍덩, 몸을 던졌다

봄 - 김진섭

봄 - 김진섭양지언덕에푸릇푸릇 봄의 전령이 고개 들고너른 하늘 향해 두리번두리번거리는봄이다민들레가 오면노란 민들레 피어 오르면바야흐로 봄인 거다네 잎 크로바낡은 책갈피 납작 마른 돌연변이가 생각나고크로바 잎 따라가버린 꿈소녀가 생각나는아릿한 봄이다못 잊을 여정초등학교2학년꽁보리밥에 돌나물무침범벅이 되어교실 밖으로 부끄러워 달아나던 나의 봄봄이다

나비의 여행 - 정한모

나비의 여행 - 정한모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수면(睡眠)의 강(江)을 건너빛 뿌리는 기억(記憶)의 들판을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나르다가깜깜한 절벽(絶壁)헤어날 수 없는 미로(迷路)에 부딪치곤까무라쳐 돌아온다.한 장 검은 표지(表紙)를 열고 들어서면아비규환(阿鼻叫喚)하는 화약(火藥) 냄새 소용돌이전쟁(戰爭)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파란 공포(恐怖)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 버리고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해후(邂逅)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焦燥)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꿈의 이슬에 촉촉이 젖은 나래를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아가야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공포의 독수리를 만나소스라쳐 돌아왔느냐.

사월에 내리는 눈 - 김정희

사월에 내리는 눈 - 김정희눈 내린 듯사월의 산야에 가득 피어난 하얀 벚꽃끝없이 펼쳐진 고운 붓질의 향기로운 수채화아름드리나무 아래로 흩날리는 꽃잎이달빛에 푸르게 빛나는 몽환 같은 밤그대와 함께 꿈을 꾸듯 다정하게 걷고 싶습니다일 년 내내 피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은화려하게 피었다가 한순간에 떨어지는 꽃이기에더욱 아름답고도 마음은 아려 옵니다그곳에서라면 지고지순한 마음으로내 사랑을 고백해도 용납될는지내 바보 같은 사랑은 마음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라고 합니다다시 사월이 오고 이지러진 꽃잎처럼마음엔 그리움 꽃비로 뚝뚝 떨어지는 날그대 내게로 오시렵니까사월에 내리는 꽃눈 맞으며

라일락 그늘 아래서 - 오세영

라일락 그늘 아래서 - 오세영 맑은날네 편지를 들면아프도록 눈이 부시고흐린날네 편지를 들면서롭도록 눈이 어둡다아무래도 보이질 않는구나네가 보낸 편지의 마지막한 줄무슨 말을 썼을까오늘은 햇빛이 푸르른날라일락 그늘에 앉아네 편지를 읽는다흐린 시야엔 바람이 불고꽃잎은 분분히 흩날리는데무슨 말을 썼을까날리는 꽃잎에 가려끝내읽지 못한 마지막 그한줄

벚꽃 축제 - 박인혜

벚꽃나무 - 이창훈 지나간 흔적들 중에 맑았던,아무런 치장도 그 어떤 윤색도 없이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을 단 하나 꼽으라면성북동 벚꽃나무 아래서 당신을 기다렸던 일하얀 눈보라같이 아름답게 속삭이던꽃잎들 아래서 시를 읽으며 깜장 똥이 묻어나는 모나미볼펜으로 시를 끄적이면서...그렇게 마치 멎은 듯한 시간 속에서간절하게 나직나직이 부르면낮게 엎드린 가난한 집들 사이 고샅길로땅에 떨어진 꽃잎을 한 아름 안고서눈동자에 나를 담으며 서서히 다가오던 그대세상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조차도잊어버리게 했던 그때로 돌아가서한 그루 벚꽃나무로 서서당신을 기다리며

활짝 핀 벚꽃 아래서 - 장석주

활짝 핀 벚꽃 아래서 - 장석주 두개골 속에 꽃봉오리들이 툭, 툭, 터지는 소리가벼락치고,네 입술이 기르던 애벌레가나방이 되어 날아간다.네 입술,네 둥근 젖,네 흰 이마,네 검은 머리칼,네 젖은 어깨,네 샅,네 꽃피던 자궁,네 모든 게 천천히 지워진다, 일찍이내 이럴 줄 알았다,벚꽃 폭설 아래 나 혼자 걸으면벚꽃 흰 눈 몇 점 머리에 이고네가 나와 마주치고도저문 강 쳐다보듯 무심할 줄을.에움길 돌아 돌아가면우리가 미처 살아내지 못했던 시간들이아직도 매캐한 슬픔이 피우는연기 속에 자욱하다.숯으로 네 눈썹을 그리던푸른 밤들이 여전하다깨진 거울과 빈 밥그릇,곰팡이 슨 산수화 한 점과 함께언 호수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묵은 가지마다 햇빛이 팝콘처럼 부풀고핏속에는 웃음과 한숨과 입김들이한꺼번에 피어난다.내 핏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