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 말고 과학으로 국가 과제 해결을 _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1년 새 코로나 논문 25만건
미국, 중국, 영국 順
백신 개발도 그 나라들이
K방역 자아도취가
국민 고통 더 끌게 만들어
궁극엔 과학이 해결사
코로나 확산 11개월 만에 등장한 백신은 인류가 코로나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백신은 생명의학계가 축적해온 과학 지식의 결과물이다. 세계 최대 논문 검색 데이터베이스인 ‘다이멘션즈’의 집계로는 지난 1년 사이 전 세계에서 발간된 코로나 관련 연구 논문이 25만건이 넘었다. 모든 논문의 4%가 코로나 논문이었다. 미국이 4만1800건, 중국 1만7800건, 영국1만7600건의 순이다. 논문을 많이 낸 나라들이 대체로 백신도 개발해냈다. 대학으론 미국 하버드가 2000건, 영국 옥스퍼드가1700건이었다. 중국 우한의 화중(華中)과기대도 1200건으로 미국·영국 대학들 틈새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국가 전체로 1949건, 하버드대 한 개 대학 수준이다.
환경오염, 기후 붕괴 대처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욕망 억제형’이다. 덜 소비하고 덜 배출하고 에너지도 덜 쓰는 방법으로 생태 충격을 줄여가자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과학기술 해결형’이다. 과학기술로 더 많은 효용을 창출하면서 자원과 에너지는 적게 쓰는 방법으로 생태 부담을 줄여가는 것이다. 과학기술 해결형은 기술 낙관주의(techno-optimism) 입장에 선다.
기아, 질병 등 난제(難題)들도 결국은 혁신 기술로 극복이 가능하다.
현 시점의 인류 최대 위기는 코로나 바이러스일 것이다. 이것의 극복에도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그리고 백신이다. 욕망 억제형인 거리 두기는 자유의 구속을 통해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한다. 모이지 말고, 마스크 쓰고, 추적하고, 격리시키는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 고통이 따른다. 모든 나라가 가혹한 통제 정책을 썼지만 바이러스를 누르는 데는 실패했다.
백신은 과학기술 해결형 접근법이다. 과학기술은 연구 성과, 인재 양성의 축적이 있어야 가능하다. 기술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시간도 필요하다. 우리 정부의 실책은 코로나 확산 상황에서 단기적으론 거리 두기가 유효하지만, 궁극적 해결책은 백신이라는 걸 간과한 데 있다. 정세균 총리는 “100명 미만일 때는 백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확진자가 하루 100명 미만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바이러스가 돌아다니는 이상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거리 두기를 늦추면 감염자가 늘고 조이면 줄어드는 일이 반복될 뿐이다. 인구 70%가 감염돼 저절로 집단면역이 생기길 기다릴 수는 없다. 결국 백신밖에 없다. 정부에 그걸 꿰뚫어보는 컨트롤 타워가 없었던 점과 K방역 자아도취가 국민을 몇 달 더 코로나 터널 속에서 고통받게 만들었다.
국내 제약사들의 백신 개발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과학 역량도 부족했겠지만, 임상시험을 시도할 만큼 감염자가 많지 않았다.
모더나는 3만명 상대 3상에서 코로나 감염자가 95명 나왔다. 화이자는 4만명 가운데 170명이었다. 백신의 유효성을 판정할 유의미한 통계를 뽑아내려면 임상 그룹에서 100명, 200명의 감염자가 나와야 한다. 한국에서 그만한 감염자를 만들어내려면 임상 규모가 수십만명은 돼야 했을 것이다. 초기 단계에 감염자 규모가 작았던 우리로선 외국 백신을 도입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까지 판단이 섰다면 정부가 민관 안테나를 총동원해 외국의 백신 개발 동향을 파악하고 진작부터 백신 대량 구입에 나섰어야 했다. 판단 착오를 인정하기 싫다 보니 “화이자, 모더나가 백신 사라고 우리를 재촉하고 있다” “터널 끝이 보인다” 같은 거짓말, 허풍이 입에서 나온다.
어떤 백신이 성공할지 미리 내다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여러 종의 백신을 중복 구매하는 전략을 택했다. 캐나다는 국민 전체가 10번 이상 맞을 수 있는 백신을 확보해뒀다. 선구매 방식이어서 돈을 날릴 수 있겠지만, 그 손해보다는 국민과 경제의 코로나 탈출이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결국은 과학기술의 진흥에 산업의 운명, 국가의 운명이 달렸다. 문제는 여러 기술이 경합할 경우 무슨 기술이 최종적 해결사 역할을 할지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에너지 분야에선 태양광, 풍력, 원자력, 탄소 분리 저장, 수소, 바이오 등의 기술이 경쟁하고 있다. 어떤 기술이 기후 붕괴와 대기오염의 궁극적 해결책이 될 거라고 예단하는 건 섣부르다.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의 현명한 선택은 주기적으로 기술의 발전 동향을 재평가해가며 유망 기술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형성해가는 것이다. 코로나 위기에서 여러 종의 백신을 확보해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정부의 의사결정 최종 책임자가 개인적 직관과 신념에 의존해 어떤 기술은 아예 배제시키거나 다른 어느 기술에 ‘다 걸기’를 한다면 그건 국가 운명을 걸고 도박하는 것이 될 뿐이다.
/ 조선일보 [한삼희의 환경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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