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윤석열은 추미애와 싸운 적이 없다
이기홍 논설실장 입력 2020-11-27 03:00수정 2020-11-27 10:05
일방적 폭행이 쌍피 사건으로 호도되듯
秋의 일방적 가해를 秋-尹 갈등인 양 몰아가
친문 목표는 정권 겨냥 수사 봉쇄 넘어
사법시스템을 정권 창출 도구로 개조하는 것
며칠 전 직접 본 일이다. 지인이 지하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차의 운전석 쪽에 누군가 한 뼘 가량의 공간만 남을 정도로 바짝 붙여 승합차를 세워놨다. 바닥의 구획선을 한참 넘었다. 승합차 운전석 쪽은 공간이 꽤 있었다. 잠시 후 30대 남자가 걸어오더니 미안해하는 눈짓조차 전혀 없이 승합차 운전석에 올랐다. 곧 차를 빼겠지 싶었는데 휴대전화 문자를 하는지 한참을 그냥 있었다.
지인이 차를 빼달라고 하니까, 남자는 창문을 내리더니 “반대쪽으로 타면 되잖아”라고 반말로 소리쳤다. 지인이 “차를 너무 바짝 붙여 놔 못 타고 있지 않느냐”고 하자 “너가 차를 못 타든 말든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귀찮게 해 XXX야. 죽어볼래”라며 차에서 뛰어나오더니 멱살을 잡을듯이 달려들었다.
경찰이 출동하자 남자는 경찰에 “(지인이) 욕설을 해서 화가 났다”고 주장했다. 지인은 욕설을 한 적이 없었다. 경찰은 “실제 폭행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 좁은 주차장이니 역지사지해 화해하라”며 타일렀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기 어려울 만큼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사안이 쌍방 허물로 변질된 것이다.
세상의 분쟁이나 다툼은 경중은 달라도 양측 모두에 허물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99 대 1로 잘못한 쪽이 명백한 경우마저 일방폭행이 아니라 쌍방피해(쌍피)로 포장된다면 그건 공정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요즘 여당 의원들과 친정부 언론들이 “추미애-윤석열 갈등에 국민은 지긋지긋해한다. 둘 다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제기한다. 추 장관과 윤 총장 모두 해임시켜 분란을 끝내라는 주장이다.
얼핏 중립을 가장한 듯 보이지만 본질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검란(檢亂)으로 번진 이 사태는 추-윤 간의 쌍피가 아니라 99% 추미애가 가해를 가한 일방폭행 사건이다.
정권에 불리한 수사에 참여한 검사들을 죄다 좌천시키고, 수사지휘권을 남발한 추미애의 일방적 공격이 계속됐을 뿐, 윤석열은 조국 의혹을 수사하고 권력형 비리사건 수사를 독려한 것 외엔 먼저 싸움을 건 게 없다. 윤석열 입장에선 상대방이 인간의 질량을 저울에 달아볼 때 싸울 가치조차 없는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일방적 가해를 쌍피로 둔갑시키는 것은 좌파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6·25 남침을 내전설, 미국과 남측의 전쟁유도설로 호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추미애가 읽어 내려간 윤석열의 혐의들은 1953년 김일성이 박헌영을 숙청할 때 ‘미제(美帝)의 스파이’ 죄목을 내세운 것이 연상될 만큼 허접했다. 박헌영이 미국과 접촉이 있었다는 단편적 사실을 엮어 공산주의 운동의 1인자를 미국 간첩이라며 처형했는데, 전혀 존재하지 않는 팩트는 아니지만 실제론 전혀 다른 내용들을 완전히 다른 색깔로 색칠하는 수법이다.
추미애만 보면 그 내공의 얄팍함에 놀라게 되지만 집권세력의 내공까지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윤석열 직무배제를 놓고 월성원전 수사를 막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이 나오지만 필자는 그렇게만 보지 않는다. 집권세력은 단지 현재 진행중인 정권 겨냥 수사를 막는 것뿐만 아니라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법시스템의 구조와 미션 자체를 바꾸려는 것이다.
1980년대 운동권 내에선 ‘혁명 완수를 위한 정의로운 물리력’에 대한 염원이 컸다. 반(反)혁명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민중의 군대에 대한 염원이었다.
현재는 검찰 경찰 등이 대표적인 물리력인데, 저들에게 그 물리력은 이른바 ‘선한 권력’, ‘정의로운 권력’에까지 사소한 트집을 잡아 칼을 들이대는 그런 법(法)만능의 몰가치적인 존재여선 안 된다.
‘부패한 보수 냉전 친일세력이 민족의 장래를 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진보 장기집권이 역사의 대의’이므로 검찰 등 사법기관들도 역사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수처 검찰 경찰 법원 등을 철저히 코드 인사들로 채우려는 데 거침이 없는 것도 그런 대의를 위한 과정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런 공권력을 ‘권력의 사냥개’, ‘애완견’이라 부르지만, 자기들끼리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 데 기여하는 개혁 공권력’이라고 착각한다.
그런 반(反)자유주의적 확신을 바탕으로 그 어떤 무리수도 마다하지 않지만 ‘쌍피 사건화’ 전술은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는 것도 ‘법무장관과 총장간의 갈등이 도를 넘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총장을 경질해야 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 만큼 명분을 쌓기 위함일 것이다. 쌍피 사건화 과정을 안 거치면 검찰 장악을 위해 임기제 총장을 자른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선거 때 진영을 결집할 논리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은 ‘시간이 지나면 국민의 절반은 세세한 내용은 잊고 추-윤 갈등 정도로 기억할 것’이라고 계산하며 억지 논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퍼뜨린다.
눈 밝은 국민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사태는 쌍피 사건이 아니라, 과거 어느 정권도 엄두를 내지 못했을 만큼 질 나쁜 일방적 폭행임을 정확히 기록하고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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