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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손으로 창조한 완벽한 이상형 "마이 페어 레이디"

Joyfule 2012. 4. 17. 11:10

 

 

사랑 앞에서, 우선멈춤 <클로저closer>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은 오로지 자신이 창조한 완벽한 여자 조각상 갈라테이아하고만 사랑에 빠질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완벽한 갈라테이아는 행복했을까? 자신을 창조한 피그말리온을 사랑했을까? 여기서 출발한 영화가 <마이 페어 레이디>이다. 영화에서 음성학의 대가인 교수는 시골뜨기 처녀 일라이자를 세련된 요조숙녀로 변신시킨다. 그녀의 바뀐 모습은 창조자인 교수를 설레게 하지만, 일라이자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뿐이다.
사랑과 지배욕을 혼동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타인에 대한 지배욕이 너무 강한 나머지, 생을 뒤흔드는 사랑이 찾아왔을 때조차도 그것이 사랑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하곤 한다. 아무리 멋진 상대가 나타나도, 익숙한 지배욕으로 관계를 규정하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음성학자 헨리 히긴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여성을 평등하게 무시한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작 <피그말리온>에서, 버나드 쇼는 헨리 히긴스의 성격을 이렇게 요약한다. 히긴스는 꽃 파는 처녀와 공작부인을 얼마든지 똑같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공작부인만큼 꽃 파는 처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공작부인조차 꽃 파는 처녀처럼 무시하는 그는, 심각한 여성 혐오증을 앓고 있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을 맡은 <마이 페어 레이디>

피그말리온의 일시적 승리
그리스 신화에서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조각상 갈라테이아와 달콤한 해피 엔드를 맞이한다. 주변의 모든 여성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피그말리온은 오직 자신이 창조한 조각상 갈라테이아를 통해서만 사랑의 이상을 충족시킬 수 있다. 피그말리온의 지독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낸 그리스 신화에는 결정적인 '틈새'가 있다. '갈라테이아는 과연 피그말리온을 진심으로 좋아했을까?'라는 질문이 빠져 있는 것이다. 버나드 쇼는 이 질문을 시종일관 날카롭게 해부한다. 피그말리온의 현신으로 그려지는 음성학자 헨리 히긴스는 그 사람의 말투와 억양만으로도 그 사람의 출신지는 물론 이사 경로까지 파악할 수 있다. '심각한 사투리'와 '저급한 영어'를 구사하는, 거리에서 꽃을 파는 처녀 일라이자 두리틀을 보자마자 그는 이 아가씨의 출신성분을 간파한다. 일라이자는 꽃집 점원으로 취직하는 것이 소원이지만 번번이 억양 때문에 거절당한다. 음성학자 히긴스와 피커링은 '음성학의 가능성'을 놓고 토론을 벌이다가, 기막힌 내기를 제안한다. 평생 빈민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일라이자에게 6개월 안에 '바람직한 영어발음'을 주입해 사교계의 여왕으로 데뷔시켜보자고. 히긴스와 피커링 대령의 대화를 듣던 일라이자는 정말 자신도 언어습관을 교정하는 것만으로 '숙녀'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천박한 영어를 하는 저 아이를 보십시오. 저 영어는 죽는 날까지 저 아이를 빈민굴에 처박혀 있게 할 겁니다. 자, 선생. 저는 석 달 안에 저 아이가 대사의 가든파티에서 공작부인 행세를 하게 할 수 있어요. 저 애가 보다 수준 있는 영어를 요구하는 귀부인의 하녀나 가게 점원 자리를 얻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일라이자를 바라보며) 너는 이 멋진 기둥이 있는 고귀한 건축물에 대한 수치고, 영어에 대한 모욕 그 자체야. 나는 네가 시바의 여왕 행세를 하게 할 수 있다.
-버나드 쇼, 김소임 옮김, <피그말리온>, 열린책들, 2011, 36쪽.

세 사람의 거래는 이렇게 성립된다. 히긴스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받고 싶어 하고 피커링 대령은 음성학의 힘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일라이자는 번번이 발음과 억양 때문에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자신의 좌절감을 떠올리며 이 위험한 도박에 올인한다. 여태껏 그녀의 유일한 목표는 꽃집 점원으로 취직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발음만 교정하면 취직을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이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어떻게 바뀔지는 미처 상상하지 못한다. 일라이자는 놀라운 학습능력과 뛰어난 언어 감각으로 고된 음성학 훈련을 통과하고, 마침내 결전의 그날이 다가온다. 세 사람의 디데이는 바로 그녀가 귀족들의 가든파티에 참여하는 날이다. 그녀의 초라한 출신 성분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녀를 누구든 귀족으로 대접해준다면, 이 기막힌 음성학 실험은 전무후무한 '승리'로 기록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승리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 탁월한 음성학 프로그램으로 런던의 뒷골목 영어를 명실상부한 귀족형 영어로 탈바꿈시키는 히긴스의 것일까. 아니면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경이로운 학습능력으로 6개월 이내에 최고의 영어문장을 구사하게 된 일라이자의 것일까. 피그말리온의 승리는 과연 갈라테이아의 승리이기도 했을까.


언어습관 교정만으로 '숙녀'가 될 수 있을까?

피그말리온 효과, 혹은 콤플렉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는 누군가의 간절한 기대가 그 기대의 대상을 통해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을 말한다. 아이들을 무조건 혼내지 말고, 아이들에게 '기대'와 '믿음'을 먼저 보여주면 그 기대치에 맞게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피그말리온 리더십'이라는 경영 전략이 나올 정도로, 피그말리온은 현대인에게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식의 성공전략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피그말리온 효과의 결정적 딜레마는 '나의 소원'이 '타인의 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즉 기대는 '이쪽'에서 하는데 정작 그 기대를 이루어주어야 할 사람은 '저쪽'인 셈이다. 피그말리온 효과 자체가 타인을 향한 소유욕이나 독점욕을 유발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버나드 쇼는 뛰어난 음성학자 헨리 히긴스를 통해 이 피그말리온 효과가 지닌 고유의 딜레마를 흥미롭게 그려낸다. 헨리 히긴스는 자신의 전공인 음성학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어린아이보다 미숙하다. 그는 '내가 만든 것은 나의 것이다.'라는 창조주의 우월감으로, 자신의 '작품', 일라이자를 바라본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피그말리온의 치명적인 콤플렉스를 숨기고 있다. 피그말리온은 현실의 여성에게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이상 속의 여성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현실의 여성들은 왜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을까?'하는 고민이 조각상 갈라테이아를 만들게 한다. 피그말리온은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을 바람직한 이상형으로 바꾸려는 열정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주어진 현실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우울한 완벽주의자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 속의 피그말리온은 현실의 여자를 싫어하지만 '사랑' 자체는 싫어하지 않는다. 피그말리온은 뼛속 깊이 절절한 사랑을 간직한 로맨티스트였다. 그러나 버나드 쇼가 그린 현대의 피그말리온은 한층 더 심각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 히긴스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관계 자체를 포기하는 소심함을, 타인에 대한 지배욕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일라이자는 모두가 깜빡 넘어갈 만한 요조숙녀가 되지만, 요조숙녀가 된 뒤 어쩐지 전에 없던 서글픈 표정을 짓곤 한다. 꽃 파는 소녀의 생기발랄한 매력은 사라지고, 우울한 몽유병자처럼, 아름답지만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그녀. 이제 원하는 것을 드디어 이루었는데, 그녀의 모습은 왜 그리 서글퍼 보일까.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기에 신비로워 보이지만, 자신의 진짜 페르소나를 숨겨야 하기에 그녀만의 그녀다움을 잃어버려 그토록 슬퍼 보이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의 말씨를 교정시켜준다는 명목으로 커다란 이득을 취하는 사기꾼 네폼먹은 일라이자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어, 그녀는 틀림없이 '헝가리 왕족'이라고 자신 있게 선언한다. 그녀는 대단한 사기꾼을 속여 넘긴 더 커다란 사기꾼이 된 것이다. 일라이자는 모두가 자신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며 히긴스에게 고충을 털어놓는다. "더는 못 견디겠어요. 사람들이 모두 나만 뚫어지게 쳐다봐요. 어떤 할머니는 내가 빅토리아 여왕이랑 똑같이 말을 한다고 그랬어요." 그녀는 한때 이들과 비슷해지고 싶었지만, 이제는 이 귀족들의 체면 놀이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도 이 사람들이랑 똑같아질 수는 없어요." 그녀는 그저 '숙녀 인증'만 받으면 내기에 이길 수 있었지만, 휘황찬란한 공주 대접을 받자 더더욱 어쩔 줄 몰랐던 것이다.


누구나 우러러보는 우아한 여자가 되었지만 일라이자는 행복을 얻지는 못했다

갈라테이아의 우울증
 
신화 속의 갈라테이아는 태어나자마자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운명을 감내한다. 신화적 세계관으로 보자면, 그녀는 이미 조각일 때부터 '살아있는 존재'였다. 그녀의 영혼은 조각상 안에 갇혀있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피그말리온의 따스한 시선을 받으며 이미 '사랑받는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는, 일라이자가 아름다운 갈라테이아의 현신이 되고 나자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어두워진다. 아름다운 옷과 장신구도, 뭇 남성들의 시선도, 도무지 그녀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녀의 우울한 기분에는 아랑곳없이, 피커링과 히긴스는 승리감에 도취된다. 일라이자가 '도대체 이제 나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동안 남성들은 승리의 찬가를 부르며 기세등등해진다. 히긴스는 일라이저의 숙녀 데뷔를 '자신의 승리'라 단언한다. 그러는 동안 일라이자는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난 무엇에 어울리는 사람이죠? 나를 무엇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만든 거예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해요? 난 뭘 해야 하죠? 나는 어떻게 될까요?" 히긴스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며, 이제 소원대로 꽃집 점원이 되든지 멋진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고 부추긴다. 일라이자는 분노에 차서 절규한다. "나는 꽃을 팔았지 나를 팔지는 않았어요. 당신이 나를 숙녀로 만들어버려서 나는 이제 어떤 것을 팔아도 어울리지 않아요." 히긴스는 거리의 꽃 파는 처녀를 일약 사교계의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자신이며, 그녀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은 모두 자신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그 애 머릿속에 넣어주지 않은 생각, 내가 그 애 입에 심어주지 않은 단어가 하나라도 있나 곧 보시게 될 거예요. 코번트 가든의 으깨진 배추잎을 가지고 제가 이 물건을 만들어냈다니까요. 그런데 이제 나한테 숙녀 행세를 하려고 하다니!"

일라이자는 자신을 진정한 숙녀로 만들어준 것은 히긴스의 '음성학 수업'이 아니라 피커링 대령의 '친절과 존중'이었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피커링 대령이 '둘리틀 양'이라고 불러주는 순간, 처음 보는 낯선 신사가 이름 모를 꽃 파는 처녀에게 정중하게 '둘리틀 양'이라고 불러주는 순간. 그 순간이 진정한 '자기 존중의 시작'이었다고. 피커링 대령 스스로도 너무 자연스러워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잘한 행동습관들, 즉 숙녀 앞에서 모자를 벗는 것, 여성이 먼저 지나가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 등등, 이 모든 행동들이 그녀를 진정한 숙녀로 만들었다고. 옷을 멋지게 입는다거나 상류층의 발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에게 진정한 숙녀 대접을 해주는 순간, 진짜 숙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싹튼 것이다.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접받느냐에 달렸죠."

"정말로, 진실로 숙녀와 꽃 파는 소녀의 차이는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접을 받느냐에 달렸죠."
-버나드 쇼, <피그말리온> 중에서
일라이자가 고통스러워하며 집을 나가버린 후에야, 히긴스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어머니에게 상의를 한다. "난 어떻게 해야 하죠?" 지혜로운 히긴스 부인은 아들의 잘못을 알기에 현명하게 충고해준다. "가만히 있는 게 좋겠구나, 헨리. 그 애는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권리가 있단다." 그러나 히긴스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허둥댄다. 자신의 스케줄과 소지품은 물론 자신의 기분과 생각까지 알아채고 일일이 챙겨주던 훌륭한 비서, 나아가 어쩌면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최후의 여인이었을 소중한 존재를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다.

난 약간의 친절을 원해요. 난 천하고 무식한 아이고, 당신은 유식한 신사인 거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당신 발톱의 때는 아니에요. 내가 그 일을 했던 건 옷을 얻거나 택시를 타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나는 우리가 같이 있으면 즐겁고, 내가 선생님을, 좋아해서, 좋아하게 돼서 했던 거예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되기를 원했던 것도 아니고 우리가 신분이 다르다는 걸 잊은 것도 아니에요. 단지 더 친해졌으면 했던 거예요. -버나드 쇼, <피그말리온> 중에서

원작 <피그말리온>에서는 일라이자가 젊은 남성 프레디와 결혼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히긴스와의 새로운 러브 스토리가 시작될 것 같은 희망적인 분위기로 끝을 맺는다. 버나드 쇼는 '일라이자가 히긴스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구구절절이 적어 대중의 '집단적 오독'을 가로막으려 했지만, 히긴스의 그 잘난 콧대를 꺾어 놓고 그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진짜 남자가 되기를 바라는 대중의 뜨거운 열망은 꺾어놓지 못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멋진 요조숙녀가 된 것은 일라이자였지만, 진정으로 마음 속 깊이 '우아한 젠틀맨'이 되어야 할 사람은 바로 히긴스였던 것이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더 나은 존재로, 더 빛나는 존재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만든 자'와 '만들어진 자'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그 관계는 한쪽에게는 피조물의 부채의식을, 한쪽에게는 창조주의 우월감을 줄 뿐이다.

갈라테이아는 결코 피그말리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와 그의 관계는 너무 신성해서, 전적으로 좋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버나드 쇼, <피그말리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