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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 알퐁스 도데.

Joyfule 2009. 11. 4. 08:12
        마지막 수업 - 알퐁스 도데.  
    (어느 알사스 소년의 이야기) 
    그날 나는 등교가 무척 늦어졌어요. 
    게다가 아멜 선생님이 분사법(分詞法)에 관해 질문하겠다고 하셨는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책망을 들을까 봐 꽤 겁이 났어요. 
    그래서 나는 차라리 학교를 가지 않고 벌판이나 싸다닐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날씨는 활짝 개여 있었어요. 
    숲가에서는 티티새가 떼지어 지저귀고,
     제재소 뒤 리뻬르 들에서는 프러시아 군대들이 훈련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이것들이 나에게는 분사법보다 더 마음에 들었지만, 나는 참고 학교로 뛰어갔어요. 
    면사무소 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철책을 두른 게시판 앞에 모여 있는 것이 내 눈에 띄었어요. 
    이태 전부터 패전이니 징발이니 하는 
    프러시아 군사령부의 여러 가지 언짢은 뉴스들은, 다 이곳에서 나왔던 거예요. 
    "또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나는 여전히 뛰어가면서 생각했어요. 
    내가 광장을 지날 때였어요. 
    대장간집 와슈테르 영감이 조수와 함께 게시판을 들여다보다가 말하는 것이었어요. 
    "얘야, 그렇게 서두를 거 없다. 지각은 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영감이 나를 놀리는 줄로만 알고 숨을 몰아쉬면서 
    아멜 선생네의 비좁은 마당에 뛰어들어갔어요. 
    평소에는 수업이 시작되면 으례, 책상 뚜껑을 여닫는 소리며 
    책을 잘 외우기 위해 귀를 막고 커다란 소리로 읽어 내려가는 소리, 
    그리고 '좀 조용히 해' 하고 책상을 마구 두들겨 대는
     선생님의 회초리 소리 등이 떠들썩하게 한길까지 들려와, 
    나는 그 법석을 부리는 통에 살짝 내 자리로 가려고 하다가 주춤하곤 했지요. 
    그런데 그날은 일요일 아침처럼 조용했어요. 
    열린 창문을 통해, 진작 제 자리에 앉은 아이들과 
    그 무서운 회초리를 팔에 끼고 서성대는 아멜 선생님이 보였어요. 
    나는 이처럼 조용한 가운데 문을 열고 들어가 앉는 도리밖에 없었어요. 
    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렸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천만에요, 
    선생님은 아무 화도 내지 않고 날 바라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프란츠, 어서 네 자리로 가서 앉거라. 
    우리는 그냥 수업을 시작할 뻔했구나." 
    나는 얼른 의자 너머의 내 자리로 가 앉았어요. 
    두려운 마음이 좀 사라지자, 선생님이 푸른 프록코트 차림에, 
    가슴에는 주름 잡힌 장식을 달고, 
    수놓은 검은 비단으로 된 둥근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그것은, 장학관의 시찰이 있거나 시상식 같은 것이 있는 때에만 입는 예복 차림이었어요. 
    그리고 교실 전체에 여느 때와는 다른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어요. 
    가장 놀란 것은, 평소에 비어 있던 교실 안쪽 의자에 
    마을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었어요. 
    머리에 삼각모를 쓴 오제 영감과 전면장, 우체부, 그밖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어요. 
    그들은 저마다 슬픈 표정들이었어요. 
    오제 영감은 모서리가 다 해어진 프랑스어 초보 교재를 무릎 위에 펴놓고, 
    그 위에 커다란 안경을 올려 놓고 있었어요. 
    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 그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아멜 선생님이 교단에 올라가더니, 
    나를 맞아줄 때와 다름없는 부드럽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어요. 
    "여러분, 이것이 내 마지막 수업이에요. 
    베를린에서 알사스와 로렌의 학교에서는 독일어만 가르치라는 지시가 내렸어요. 
    내일 새 선생님이 오십니다. 
    오늘로서 프랑스어 공부는 끝입니다. 명심해 들어요." 
    나는 선생님의 이와 같은 몇 마디 말씀에 마음이 흔들렸어요. 
    아, 고약한 놈들 같으니! 면사무소에 나붙은 게시는 바로 그거였어요. 
    마지막 프랑스어 공부- 
    그런데 나는 그때 겨우 글을 쓸 수 있을 정도였어요. 
    이제 아주 배우지 못하게 된단 말인가! 
    이대로 끝맺어야 하나! 
    이제는 헛되이 보낸 그 시간들이-
    새 둥지나 찾아다니고 자아르 강에 얼음이나 지치러 다니느라고 
    학교를 빠진 시간들이 한스럽기 짝이 없었어요. 
    조금 전만 해도 그처럼 지겨운 생각이 들고 두려운 생각이 앞서던 내 책들- 문법책, 
    성경 등이 이제 와서는 헤어지기 아쉬운 친구처럼 생각됐어요. 
    아멜 선생님에 대해서도 같은 심정이었어요. 
    선생님이 떠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벌을 받고 회초리로 얻어맞던 생각은 씻은 듯 가셔 버렸어요. 
    가엾은 선생님!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옷을 잘 차려입은 것도 이 마지막 수업을 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마을 영감들이 교실에 와 있는 것도 그 때문이구요. 
    그것은, 그들이 학교에 좀더 자주 얼굴을 내놓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있다는 뜻으로도 보였어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 선생님이 사십 년 동안이나 수고하신 공로에 대해 감사하고, 
    또 사라져가는 조국에 대한 자기들의 의무를 다하려는 뜻도 곁들여 있는 것같이 보였어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나를 지명하셨어요. 
    내가 욀 차례가 된 거예요.
     내가 그 분사법을 조금도 틀리지 않고 
    큰 소리로 줄줄 욀 수만 있었던들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러나 나는 첫마디부터 막혀 버렸어요. 
    나는 안타까운 생각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몸만 흔들고 있었어요. 
    아멜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프란츠, 난 널 탓하지 않아. 넌 충분히 뉘우치고 있을 테니까. 
    으례 그런 거야. 누구나 이렇게 생각해 왔지. 
    '뭐 서두를 것 없지 않나, 내일도 있는데......' 하고. 그 결과 너처럼 되는 거야.
     아, 공부할 것을 날마다 내일로 미룬 게 우리 알사스의 가장 큰 불행이었어. 
    이제 저 프러시아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거야.
     '뭐라고? 너희는 프랑스인이라며 너희 말도 할 줄 모르고, 쓸 줄도 모르는군!' 하고. 
    하지만 프란츠, 너만의 잘못은 아니야. 우리가 다 가책을 느껴야 해.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교육에 별 관심이 없었어. 
    몇 푼의 돈을 더 벌기 위해 여러분을 밭이나 공장으로 보내기를 원했지. 
    그럼 나 자신은 가책을 느낄 만한 짓을 하지 않았나? 
    공부시키는 대신 우리 집 마당에 물을 주라고 하지 않았던가? 
    또 나는 은어를 낚으러 가고 싶을 때, 여러분을 놀린 적이 없었던가?" 
    아멜 선생님은 이어 프랑스어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즉, 프랑스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명증한 말이며, 
    우리가 잘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한 겨레가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될 지라도 자기 말만 잘 간직하면, 
    마치 감옥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지요. 
    다음에 선생님은 문법책을 읽어 주었어요. 
    나는 그것이 하도 알기 쉬워 놀랄 지경이었어요. 
    선생님이 말씀하는 것이 아주 쉬워 보였어요. 
    하긴 내가 이처럼 열심히 들은 적이 없었고, 
    또 선생님이 그처럼 성의있게 설명해 준 적도 없었어요. 
    그것은 이 가엾은 선생님이 이곳을 떠나기 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전부 
    우리의 머리 속에 단번에 넣어주려는 듯이 보였어요.
    우리는 외기를 끝마치고, 다음 시간에는 쓰기 연습을 했어요. 
    아멜 선생님은 이 날을 위해 새 쓰기 책을 준비했는데, 
    거기에는 동그스름한 아름다운 글씨체로 
    '프랑스, 알사스, 프랑스, 알사스' 하고 씌어 있었어요. 
    그것은 마치 조그마한 깃발들이 
    우리 책상에 꽂혀 교실 전체에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어요. 
    모두가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몰라요. 아무도 떠들지 않았어요. 
    펜촉이 노트 위를 스치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어요. 
    한번은 풍뎅이들이 날아들었으나 아무도 거기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어요. 
    그것은 무슨 프랑스어라도 되는 것처럼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작대기를 긋고 있던 꼬마들까지도 그랬어요. 
    나는 학교 지붕 위에서 꾸르르 우는 비둘기들의 울음 소리를 듣고 이렇게 생각했어요. 
    '저 비둘기들도 멀지않아 독일어로 울게 되지 않을까?' 
    내가 가끔 책에서 눈을 들어 보면, 
    아멜 선생님은 교단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마치 이 조그마한 학교를 
    온통 눈 속에 넣어 가기라도 할 듯 주위의 물건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똑같은 장소에서 교정을 마주보며 같은 교실에서 사십 년 동안을 지내온 거예요. 
    다만, 오래 쓰는 동안에 의자와 책상들이 닳아 반들거리고, 
    마당의 호두나무가 자라고, 
    선생님이 심은 홉덩굴이 지붕까지 뻗어 창문을 장식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선생님은 이 모든 것들과 헤어져야 하는 거예요.
    2층에서는 선생님의 누이가 짐을 꾸리느라고 왔다갔다 하는 발소리가 들려 왔어요. 
    그러니 선생님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이튿날이면 선생님과 그 누이는 이 땅을 아주 떠나야 하거든요. 
    그러나 선생님은 수업을 끝까지 계속하려는 각오를 굳게 하고 있었어요. 
    쓰기가 끝나자, 다음은 역사 시간이었어요. 
    다음에 우리 꼬마들은 바, 브, 비, 보, 뷔를 합창했어요. 
    교실 안쪽에서는 오제 영감이 교과서를 두 손으로 든 채 
    안경을 쓰고 아이들과 함께 한 자 한 자 띄어 읽고 있었어요. 
    그도 무척 열심이었어요. 그의 목소리는 감동한 나머지 떨리고 있었어요. 
    그의 책 읽는 소리가 하도 우스워 우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어요. 
    아, 나는 이 마지막 수업을 평생 잊을 수가 없겠지요. 
    성당의 괘종시계가 열두 시를 치더니 이어 앙젤뤼의 종소리가 들려 왔어요. 
    때마침 교실 창문 아래로 훈련을 끝내고 돌아오는 프러시아군들의 나팔소리가 들려 왔어요. 
    아멜 선생님은 매우 창백한 얼굴을 하고 교단에서 일어났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어요. 
    "여러분, 나는...... 나는!......" 
    하고 선생님은 말씀했어요. 
    선생님의 목줄을 무엇인가가 죄이고 있었던 거예요. 
    선생님은 말을 다 끝맺지 못했어요. 
    선생님은 흑판을 향해 돌아서더니, 백묵을 쥐고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쓰는 것이었어요. 
    '프랑스, 만세!' 
    선생님은 벽에 이마를 댄 채 한참 계시더니, 우리에게 손짓하면서 알려 주는 것이었어요. 
    "끝났다...... 다들 돌아가거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