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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6.

Joyfule 2009. 11. 1. 23:11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6.   
    물론 내 인생의 그 시기에도 내 삶을 씁쓸하게 만드는 일이 있기는 하였다. 
    특히 따져 보자면, 
    첫째, 초단파로 송신되는 라디오 수신기를 마음대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목요일 저녁 10시에서부터 11시까지 방송되는 재미있는 형사극을 못 듣고, 
    그 다음 날에야 등교 버스 안에서 내 친구 코르넬리우스 미켈한테서 
    제대로도 아닌 엉터리에 가까운 프로그램 내용을 
    뒤늦게 들어야만 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둘째, 우리 집에 텔레비전 수상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텔레비전 수상기를 우리 집에 들여놓을 수는 없다) 라고, 
    주세페 베르디가 죽은 해에 이 세상에 태어난 아버지가 천명하였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은 집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습성을 망쳐 놓고, 
    눈을 나쁘게 만들기도 하고, 가족 생활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을 전반적으로 멍청이로 만들기 때문이다) 
    아타깝게도 그 점에 있어서 만큼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최소한의 문화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예를 들자면 (엄마가 최고야), (라씨) 혹은 (히람 홀리데이의 모험) 등을 보려고 
    코르넬리우스 미켈네 집을 종종 찾아가야만 했다. 
    공교롭게도 그런 프로그램들은 거의 초저녁 시간대에 방영되어서 
    8시가 되어야 뉴스의 시작과 함께 끝났다. 
    하지만 나는 8시가 되면 손을 깨끗이 씻은 다음 
    식탁에 앉아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사람이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서로 다른 장소에, 
    더구나 자전거로 7분 30초나 달려야만 될 만큼 
    떨어져 있는 장소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므로
     - 손을 닦는 것은 고사하고서라도 -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내게서 의무와 욕구의 전통적인 갈등을 야기하던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프로그램이 끝나기 7분 30초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 매번 극적인 클라이막스를 놓쳐 버리고 - 집으로 가건, 
    혹은 끝까지 보고 앉아 있다가 결과적으로 
    저녁 식사 시간에 7분 반을 늦게 도착하여 어머니의 꾸지람을 감수하거나 
    텔레비전으로 인한 가족 생활의 마비에 대한 아버지의 일장 훈계를 각오를 해야만 했다. 
    사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 무렵의 내 생활은 
    그런 비슷한 일들로 인한 갈등의 점철이었던 것도 같다. 
    언제나 어떤 것은 반드시 해야만 하거나, 
    도리상 해야 되거나, 하지 말아야 된다거나, 
    차라리 이렇게 했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라든가….. 
    언제나 나는 뭔가를 해야 되다는 강요를 받았고, 
    지시를 받았으며,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만 했다. 
    이것 해! 저것 해! 그것 하는 것 잊어버리면 안돼! 
    이것 끝냈니? 저기는 갔다 왔니? 왜 이제서야 오니?….. 
    항상 압박감과 조바심, 언제나 시간이 부족했고, 
    무슨 일이든지 항상 끝마쳐야 되는 시간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만 편안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무렵에는….. 하지만 나는 지금 한탄에 빠져들면서 
    젊은 날의 어떤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빠른 손길로 뒤통수를 긁어 주고, 
    어쩌면 가운뎃 손가락으로 그 문제의 자리를 가만히 몇 대 때려 주고는, 
    내가 본래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 
    정신을 집중하여 좀머 아저씨와의 마지막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씀으로써 
    이 이야기의 끝을 맺고자 한다. 
    그것은 코르넬리우스 미켈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본 다음 
    집으로 향하던 어느 가을날의 일이었다. 
    그날의 프로그램 내용은 시시해서 
    시청자가 끝이 어떻게 맺어질지를 미리 알 수 있는 것이라서 
    나는 저녁 식사 시간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게 하기 위해서 
    8시 5분 전에 미켈네 집을 나섰다. 
    어스름한 빛이 이미 들판에 가득 깔려 있었고, 
    서쪽에만 호수 위로 하늘에 잿빛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무렵 나는 우선은 자전거의 라이트에 - 전구, 갓 혹은 전선에 - 
    고장이 잦았던 것이 한 가지 이유였고, 
    다른 이유로는 발전기를 작동시키면 바퀴의 회전이 엄청나게 방해받아서 
    집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분 이상 더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그날도 불을 켜지 않은 채 자전거를 탔다. 
    사실 내게는 불빛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길은 내가 자면서도 훤히 알 수 있는 길이었다. 
    그리고 캄캄한 밤중이라도 길가의 울타리나 
    길 반대편의 덤불 숲보다는 길이 더 까만 색이었으므로 
    안전하게 달리기 위해서 가장 까만 곳만 달리도록 신경만 쓰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초저녁에 몸은 손잡이 쪽으로 잔뜩 구부린 채 
    기어를 3단에 놓고 귓전에 바람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달렸다. 
    약간 서늘했고 습기가 차 있었으며 가끔씩 연기 냄새 같은 것이 났었다. 
    집까지의 거리에서 정확히 중간되는 지점에서
     - 뒤쪽의 무성한 숲과 붙어 있는 옛날의 자갈 채취 장으로 인해 
    그 부근의 길이 호수와 약간 거리를 두고 굽어 있었다 - 
    자전거의 톱니바퀴에 연결된 쇠사슬이 풀려버렸다. 
    그것만 제외하면 아무 무리없이 작동되는 자전거에 수시로 발생하는 결함이었다. 
    원인은 닳아빠진 스프링이 쇠사슬을 적당히 팽팽하게 조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나는 사실 오후 내내, 결국 고치지도 못하면서 그것 가지고 온갖 씨름을 다했었다. 
    그래서 아무튼 자전거를 세우고 안장에서 내려 
    톱니바퀴와 보호대 사이에 끼워져 있던 쇠사슬을 풀어내어, 
    페달을 적당히 움직여 가면서 그것을 톱니바퀴에 
    다시 올려놓으려고 뒷바퀴가 있는 쪽으로 몸을 구부렸다. 
    그런 일은 어둠 속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잘 해낼 정도로 내게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그것을 고치는 과정에 생기는 한 가지 안 좋은 점이라면 
    그것을 하다가 손이 엉망진창으로 더렵혀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쇠사슬을 톱니바퀴에 잘 건 다음
     단풍나무 숲으로 가 커다란 마른 잎으로 손을 닦으려고 호수 쪽으로 나있는 길가로 갔다.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꺾자 호수 쪽으로 시야가 탁 트였다. 
    호수는 마치 큼직한 거울 같은 모습으로 거기 있었다. 
    그리고 호수 가장자리에 좀머 아저씨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 나는 아저씨가 신발을 신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물이 아저씨의 장화 위까지 차 있었다. 
    둑에서 몇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등은 나를 향하고, 
    산 너머에 여전히 남아 있던 마지막 노르스름한 햇빛이 
    한 줄기 비치고 있는 반대편 둑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그곳에 박아 놓은 말뚝 같았으며, 약간 구부러진 지팡이는 오른손에 들고 
    밀짚모자는 머리에 쓰고 있는 모습이 호수의 환한 수면에 검은 색 실루엣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저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발씩 한 발씩 발걸음을 떼어놓으며 
    세 번째 발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지팡이를 앞으로 옮겨 찍고, 
    뒤쪽을 단호히 물리치면서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땅 위를 걷고 있는 것처럼 목적지를 향한 아저씨 특유의 고집스러운 성급함으로 
    호수 바닥이 평평한 편이었는지 아주 조금씩만 깊이가 더해 갔다. 
    20미터쯤 가자 물이 아저씨의 엉덩이 위까지 찾으며, 
    물이 어느새 아저씨의 가슴까지 차 올랐을 때 아저씨는 
    둑에서 던진 돌이 날아 갈 수 있는 곳보다도 더 멀리 나간 상태였다. 
    그렇지만 아저씨는 비록 물 때문에 속도가 떨어지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쉬지도 않고,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꿋꿋하게 거의 열정적으로 걸었고, 
    마침내는 앞을 가로막는 물을 좀 더 빨리 헤쳐 나가기 위해서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양팔로 노를 저어 가며 앞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