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감독. 명화
지난 10회에 걸쳐 <명배우, 명장면>이란 제목으로 1930~60년대에 상영된 여러 영화에 나왔던
유명 남녀배우를 중심으로 장면 사진과 설명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영화에 관해 좀 더 본격적인 접근을 하려고 합니다.
영화를 흔히 종합예술이라고 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처음 기획단계에서 각본, 연기, 연출, 촬영, 편집, 음향 등 단계별로
수많은 인원이 참여하여 협동 작업을 통해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이러한 제작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미국 같이 프로듀서 시스템이 확립된 나라에서는 제작자가 주된 역활을 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제 소견은 영화는 감독이 주된 역할을 하고, 또 그렇게 해야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1939년 MGM 제작자 사뮤엘 골드윈은 에밀리 브론티의 명작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의
영화화를 위해 윌리암 와일러를 감독으로 택하여 작업한 결과 좋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로렌스 올리비에나 멀 오베론 같은 명배우에 촬영, 편집, 음악 등 스텝진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을 지휘하고 연출한 사람은 바로 감독(director)이고 감독이 잘 이끌었기에
명화가 나온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사설이 길어졌습니만, 제 의견은 명감독이 명화를 만드는데 주된 역할을 하고 실제로 영화사에
남을만한 명화를 보면 모두 명감독이 참여하여 완성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이나 영국에서와 같이 제작과 감독을 겸하는 경우도 왕왕 있으며 이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만 무게 중심은 감독에게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명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명화를 한 편 한 편 들어 이야기를 진행코저 합니다.
1999년 AFI(미국영화협회)에서 영화탄생 100주년을 맞아 명화100편을 선정, 발표했습니다.
그 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List
처음 선정한 1999년의 랭킹과 2007년의 랭킹이 상당히 달라졌고 심지어 몇 작품은 아예 밀려
100위 밖으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는 너무나 잘 알려진 명화도 빠진 것이 많습니다.
자세한 경위는 알지 못하나 이것은 아마도 8년 동안에 평가 기준이나 방법이 달라진 때문이겠지요.
1999년 작품을 중심으로 볼 때 100편의 영화를 한편 이상 감독한 사람이 많습니다.
얼핏 관찰해도 프랑크 카프라, 알프레드 히치콕, 존 포드, 존 휴스톤, 윌리암 와일러, 빌리 와일더,
스탠리 큐브릭, 데이비드 린 같은 감독은 영화 2~3편을 취급한 것이 나타납니다.
역시 명감독이 명화를 많이 탄생시켰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래에서는 美英 영화를 중심으로 명감독을 10명 정도 선정하여 감독별로 명화를 살펴보겠습니다.
1. 존 포드 (John Ford, 1894~1973)
존 포드는 아일랜드계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게는 그는 미국 태생이고
그의 아버지가 아일랜드 출신이다. 존 포드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4번 수상한 유일한 감독이다.
1935년 '밀고자(The Informer)', 1941년 '분노의 포도(The Grape of Wrath)', 1942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How Green was My Valley)', 1952년 '아일랜드의 연풍(The Quiet Man)'이 그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 작품 중에 서부극(Western)은 하나도 없다. 존 포드 하면 서부극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역마차', '황야의 결투', '수색자', '아파치 요새', '리오 그란데,
'기병대" 등 존웨인, 헨리 폰다를 주연으로 많은 서부극을 만들었지만 아카데미 수상작은 서부극이
아니었던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중 '분노의 포도'는 잘 알려진 대로 존 스타인백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1030년대 대공황 때 오크라호마의 황폐해진 농촌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동하는 Joad일가의
파란만장한 고난의 이야기. 원작의 영화화에 성공하여 존 포드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고
1999년 AFC 선정 영화 100중 21위에 랭크됐다.
특히 'Red River Valley'를 주제곡으로 삽입하여 전편을 흐르는 애잔한 분위기를 살렸다.
주인공 Tom Joad역의 헨리 폰다는 아카데미주연남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못했다.
이듬 해인 1942년에도 역시 20세기 폭스사의 Darryl F. Zanuck 제작에 John Ford 감독으로
월터 피젼, 모린 오하라 등이 공연한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영하는 남부 웨일즈 탄광지역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삶을 그린 이야기다..
The film tells the story of the Morgans, a close, hard-working Welsh family at the turn of the twentieth century in the South Wales coalfield at the heart of the South Wales Valleys.
It chronicles a socio-economic way of life passing and the family unit disintegrating.
다음은 1952년 '아일랜드의 戀風(The Quiet Man)'
존 웨인, 모린 오하라, 바리 핏츠제랄드, 와드 본드, 빅터 마크라그렌 공연
아일랜드를 무대로 은퇴한 권투선수와 시골 처녀 모린 오하라와가 결혼하기까지
얼키고 설킨 이야기를 웃음과 훈훈한 인정과 감동으로 이끌어 간다.
고교 시절 대구 만경관에서 개봉돼 시종일관 웃으며 재미있게 봤던 영화다.
위 사진은 출연진과 존 포드 감독(맨 오른 쪽)이 기념 촬영한 장면인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존 포드는 4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여 기록을 세웠다.
In a career that spanned more than 50 years, Ford directed more than 140 films (although nearly all of his silent films are now lost) and he is widely regarded as one of the most important and influential filmmakers of his generation. Ford's films and personality were held in high regard by his colleagues, with Ingmar Bergman and Orson Welles among those who have named him as one of the greatest directors of all time.
In particular, Ford was a pioneer of location shooting and the long shot which frames his characters against a vast, harsh and rugged natural terrain.
이쯤 하고 지나가려다 존 포드의 걸작 서부극을 몇 편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부기한다.
존 포드는 무성영화 시절부터 서부극을 했는데 주연은 주로 하리 케리(Harry Carey)를 택했다.
토키 이후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존 웨인을 처음 기용한 1939년 '역마차(Stagecoach)'다.
이 영화에서 존 웨인은 처음 출연하여 클레어 트레버, 토마스 미첼 등과 공연했다.
존 포드의 동적인 촬영기법을 통한 다아나믹한 화면구성은 단연 서부극의 클래식이 된다.
다음은 1945년작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을 빠뜨릴 수 없다.
헨리 폰다, 린다 다넬, 빅터 마추어가 나와서 와이어트 업과 클린튼家와의 'OK목장의 결투'까지
가는 줄거리지만 '驛馬車'에 못지 않는 동적인 화면처리, 주제곡 My darling Clementine을 삽입하여
서정성을 가미한 명작으로 서부극의 고전이 되었다.
끝으로 1956년 搜索者(The Searchers)
The Searchers is a 1956 American Western film directed by John Ford, based on the 1954 novel by Alan Le May, and set during theTexas–Indian Wars. The picture stars John Wayne as a middle-aged Civil War veteran who spends years looking for his abducted niece (Natalie Wood), along with Jeffrey Hunter as his adoptive nephew, who accompanies him.
The film was a commercial success, although it received no Academy Award nominations. It was named the Greatest American Western of all time by the American Film Institute in 2008, and it placed 12th on the American Film Institute's 2007 list of the Top 100 greatest movies of all time.
(일일이 번역해서 옮기려니 힘들어 영문 그대로 가져온 점 양해를 구합니다)
이상 3편을 존 포드의 서부극 3대작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2. 프랑크 카프라(Frank Capra, 1897~1991)
프랑크 카프라는 Sicilian-born American film director다. 그는 여섯살 때 미국으로 이민와서
영화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룩한 사람이다.
그가 제작, 감독한 1934년작 '어느날 밤에 일어난 일(It Happened one Night)'에서 그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모두 3번의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클라크 게이불과 클로뎃 콜벨이 공연한 이 로맨틱 코메디는 그 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여 주연배우상, 각본상 등 5개 부문에 걸쳐 상을 휩쓸어 단연 화제가 됐다.
이어서 1936년에는 게리 쿠퍼, 진 아서가 공연한 Mr. Deeds Goes to Town (1936)도 성공했다.
이어서 그가 제작, 감독한 'You Can't Take It With You (1938)' 은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이 영화에는 진 아서, 라이오넬 바리모아, 제임스 스튜어트가 공연했다.
이어 1939년에는 Mr. Smith Goes to Washington (1939)을 제작 감독하여 개봉해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거의 전부문에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됐으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밀려 끝내 수상하지 못했다.
진 아서와 제임스 스튜어트, 클로드 레인즈, 등이 출연한 인상적인 필리버스터 영화였다.
그리고 1941년 '오페라 헤드(Meet John Doe)는 메스컴의 횡포에 대항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게리 쿠퍼, 바바라 스탄윅, 월터 브레난 등이 공연했다.
Meet John Doe is a 1941 American comedy drama film directed and produced by Frank Capra, and starring Gary Cooper and Barbara Stanwyck. The film is about a "grassroots" political campaign created unwittingly by a newspaper columnist and pursued by a wealthy businessman. It became a box office hit and was nominated for an Academy Award for Best Story. Though the film is less well known than other Frank Capra classics, it remains highly regarded today. It was ranked #49 inAFI's 100 Years... 100 Cheers. In 1969, the film entered the public domain (in the USA) due to the claimants' failure to renew itscopyright registration in the 28th year after release.[1]
그리고 1946년에 개봉된 크리스마스 영화 '즐거운 인생(It's a Wonderful Life)'도 히트작이다.
제임스 스튜어트, 도나 리드, 라이오넬 바리모아, 토마스 미첼 등이 공연했다.
After World War II, however, Capra's career declined as his subjects were more out of tune with the mood of audiences. Critics described his films as being "simplistic" or "overly idealistic". However, the public nonetheless loved his films, especially during the Great Depression years, when audiences needed uplifting themes of inspiration. His pictures let viewers witness "a triumph of the individual over corrupt leaders", and experience "inherent qualities of kindness and caring for others."[2] Most of his best works have been revived, and are today considered timeless fables filled with love and respect for the struggles of the common man.
위 문장에도 나오듯이 프랑크 카프카는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차츰 인기를 잃게 된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너무 단순하다' 든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 이란 등의 비평이 나왔기 때문인데,
사실 戰後에는 하드 보일드 성향의 작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카프카류의 인생관. 영화관에는 관객들은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나름대로 대공황 직후의 시대상황에는 맞게 대중들에게 즐거움과
위안을 제공했던 공적은 평가해야 할 것이다.
3. 윌리암 와일러 (William Wyler, 1902 ~ 1981)
윌리암 와일러는 1902년 지금은 프랑스에 편입된 알사스에서 아버지는 스위스인, 어머니는 독일인인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유년 시절을 거쳐 1921년 그는 미국으로 건너와 로스안젤스에 정착한 것이 계기가 되어
헐리우드에서 일자리를 얻고 점차 영화 감독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그는 1936년 사뮤엘 골드원 제작의 'Dodsworth' 의 감독을 맡아 아카데미감독상 후보에 오른 이후
계속 좋은 작품을 감독해냈다.
1939년 그는 에밀리 브론티 원작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감독하여 또 다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로렌스 올리비에도 주연남우상 후보에 오르는 등 명화의 하나로 기록하게 했다.
이어서 1942년에는 미니버 부인(Mrs. Miniver)으로 와일러는 첫 오스카 상을 받는다.
그리어 가슨, 월터 피죤이 공연한 작품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주연여우상, 감독상 등
6개 부문의 상을 받았다.
1946년 '우리 생애 최고의 해(The Best Years of Our Lives )'에서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주연남우상 등 7개 부문에서 수상하게 된다. 이 작품 역시 사뮤엘 골드윈 제작이다.
1953년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 에서는 그레고리 팩, 오드리 해프번이 공연했다.
1956년 '우정있는 설복(Friendly Persuasion)에서는 게리 쿠퍼, 도로시 막과이어,
안소니 퍼킨스 등이 공연
다음 1959년에는 윌리암 와일러 생애 최대규모의 대작 영화가 나왔다.
Ben-Hur가 그것이다.
Ben-Hur (1959) which won 11 Oscars (equalled only twice, by Titanic in 1997 and The Lord of the Rings: The Return of the King in 2003). Ben-Hur won Wyler his third Academy Award for Best Director.
벤허로 와일러 감독은 3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총 11개의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기록도 세웠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
위에 기록한 영화외에도, 와일러는 1951년 'Detective Story'에서 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1954년에는 험프리 보가트, 프레드릭 마치가 공연한 '필사의 도망자(Desperate Hours)'
1959에 그레고리 팩, 찰튼 헤스턴, 진 시몬즈 등이 나오는 ' Big Country' 를 내 놓았다.
그리고 1965년에는 'Collector', 1969년에는 바브라 스트라이센드, 오마 샤리프가 나오는
뮤지칼 드라마 'Funny Face' 를 감독하는 등 활동을 지속했다.
결론적으로 윌리암 와일러 감독은 좋은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들었고, 그래서 그와 함께
일했던 남녀배우나 스텝들이 오스카를 비롯한 각종 상을 가장 많이 받게 했던 사람이다.
(2012. 2. 24. 鶴軒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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