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안에서 하나 되라
타국인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거하길 원하면 그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에게도 율법을 지켜야 할 책임과 동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누리는 권리와 혜택이 똑같이 주어졌다. 그것을 보면 유대교는 원래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인 종교가 아니었다. 기독교인도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지 않고 성도의 책무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예수님 안에서 어떤 차별, 배타, 편견도 없기를 힘써야 한다.
예전에 한 미국 교회 담임목사가 사임했다. 교회 중직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나중에 장로들이 담임목사가 사임한 경위를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젊은 목사가 나이 많은 장로들과 한마디 상의 없이 강사를 초청해서 문제가 생겼죠. 그분은 이태리계 이민자 출신인데 너무 질서와 체계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면 됩니까?”
담임목사가 장로들과 한마디 상의 없이 부흥회 강사를 초청했다면 잘못한 것이지만 그때는 담임목사의 말도 들어봐야 누구의 잘못인지 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는 사실상 정확한 내막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경우에 장로들에게는 있었던 아주 큰 잘못은 문제의 본질과 관계없이 담임목사가 이태리계 출신임을 밝힘으로 민족적인 편견으로 자기들의 견해를 옳게 보이려고 한 것이다.
< 믿음 안에서 하나 되라 >
편견적인 언어로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려는 태도는 비겁한 태도다. 사람들의 언어생활을 보면 그런 편견적 언어구사가 상당히 많이 발견된다. 편견적 언어 구사는 자신이 아무런 잘못과 인격적인 결함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또한 자기의 깨끗함과 정당함을 역으로 증명하려는 본성 때문에 구사한다. 편견적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공통적인 자세는 자기 잘못에 대해서는 쉽게 용납하지만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가 잘못된 삶을 살지 않는 의로운 인생임을 편견적 언어구사를 통해서 역으로 증명하려는 것은 잘못된 태도다. 편견은 교만을 나타내는 증거다. 교만에도 두 종류가 있다. 진짜 무엇인가를 가지고서 교만한 것과 가진 것이 없으면서 교만한 것이다. 진짜 무엇인가를 가지고서 교만해진 사람은 사람의 본성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가진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편견적 언어구사를 통해 남을 부당하게 폄하하는 모습은 부끄러운 모습이다.
누가 더 편견이 심한가? 진짜 무엇인가를 가지고서 교만해진 사람은 의외로 편견이 심하지 않다.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드러내고 남과 정당한 비교를 해도 자기가 가진 것이 있어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세울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의외로 편견이 심하다. 수시로 편견을 내세워 자기 입자를 세우고 자기가 타당함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남에게 편견을 가지고 대하지 말라. 남에게 편견을 가지다 보면 자신은 마치 심판자가 된 느낌을 가지게 하고 자신은 죄가 없는 사람인양 착각하게 한다. 그런 태도가 결국 패망의 원인이 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편견적이고 배타적인 본능이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려고 힘쓰 때 그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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