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적인 성도가 되라
< 책임적인 성도가 되는 길 >
신앙은 책임이고 사랑도 책임이다. 보아스는 세심하고 사려 깊고 책임적인 사람이었다. 보아스의 삶이 보여주는 교훈으로서 책임적인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명예심을 가지고 살라
룻 당시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할 때 신을 벗어 이웃에게 주는 전례가 있었다(7절). 그 전례를 따라 룻의 친족은 스스로 신을 벗어 자신의 기업 무를 권리를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했다(8절). 당시의 전례와 관습에 의하면 수치스런 모습이었다. 아마 그곳에 있던 장로들도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욕했을 것이다. 일부 사람은 그의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이 집은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야.”라고 손가락질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무책임한 친족처럼 재산 문제로 믿음과 명예를 팔지 말라. 특히 가족을 위한 책임을 다함으로 명예를 지키라.
한 부부가 해외 패키지여행을 갔다. 그런데 남편이 식사 시간에 틈만 나면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니까 아내가 참다못해 4일째 되는 날에 짜증을 냈다. 그로 인해 근사한 점심식사 시간이 망쳐지고 식사 후 3시간 동안 부부간에 아름다운 경치에 대한 대화도 없이 침묵만 흘렀다. 그때 침묵 중에 남편이 결심했다. “내가 식사 시간에 가족을 배려하지 않고 가족에게 집중하지 못했구나. 앞으로 식사 시간에는 핸드폰으로 뉴스를 듣거나 보지 않겠다.” 그렇게 결심하자 그다음부터 가족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가정을 작은 교회로 알고 가족을 잘 살피려는 책임감도 갖추라. 교회에서 주일성수와 교회사랑의 기본 책임을 인식하듯이 가정에서 가족을 살피고 돌보는 기본 책임을 인식하라. 성도는 불신자보다 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세상일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라. 책임 회피로 명예를 더럽히지 말고 가족에 대한 책임 회피로 명예를 더럽히는 모습은 더욱 없게 하라.
2. 청지기 의식을 가지라
모든 법적인 문제가 잘 처리되어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했다.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당신들이 오늘 증인이 되었습니다(9절).” 보아스는 엘리멜렉 가문의 땅을 산 것을 사람들 앞에서 선포하고 룻을 아내로 맞이해 자식을 낳은 후 룻의 원래 남편이었던 말론의 이름으로 그 땅을 상속시켜서 엘리멜렉과 말론 가문의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10절).
보아스는 사려 깊고 신중했지만 한편으로는 화끈하게 룻 가정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지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태도는 금전적으로는 손해되는 태도였지만 그는 물질보다 사랑과 명예를 더 중시했다. 어떻게 보아스가 그렇게 과감하게 결단할 수 있었는가? 물질에 대한 청지기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나는 잠시 소유하는 것이다.”라고 여기고 그 땅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을 전혀 아깝지 않게 여겼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란 청지기 의식을 가지라. 특히 가장 분명하게 가져야 할 청지기 의식은 “땅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땅에 관한 청지기 의식이다. 하나님은 원래 땅을 마음대로 사고팔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사람으로부터 땅을 샀어도 희년이 되는 50년째에는 그 땅을 원 주인이나 원 주인 가문에 돌려주어야 했다.
왜 하나님은 희년 제도를 만드셨는가?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땅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는 사실을 교훈하시기 위해서다. 땅은 생존과 적절한 필요에 의해서만 소유하라. 그런 의미에서 불필요하게 너무 많은 땅을 소유하거나 직업적인 정당한 중개 외에 그저 땅을 사고팔기만 하는 투기로 돈을 벌려는 행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항상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경제생활에서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라.
3. 믿음의 가문을 만들라
보아스의 헌신적인 고백을 듣고 백성들과 장로들은 형제도 아닌 보아스가 계대결혼의 부담을 떠안는 것을 보면서 감동 가운데 보아스를 축복했다(11-12절). 그 축복의 핵심 내용은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도 가문을 빛낼 훌륭한 자녀가 생기기를 원한다는 축복이다. 그런 축복의 말씀은 하나님이 성도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말씀일 것이다. 성도의 핵심 책무는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만들고 자녀를 믿음과 사랑으로 잘 교육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녀에게 더 많이 나누는 것이 복이라고 가르치고 그런 삶의 모범을 보이라.
유산 문제로 형제간에 갈등이 생기면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이미 많은 것을 받았기에 부당하게 더 가지려고 안달하지 않겠다.” 그러면 현재의 삶은 더 초라해지고 성공이 더 힘들 수 있다. 기반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과 맨 몸으로 시작하는 것은 확실히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양보하는 삶으로 인해 맨 몸으로 시작하면 살아 계신 하나님이 그 모든 상황을 보시고 신적인 축복 기회와 만남을 허락하심으로 넘치게 보상하실 것이다.
진짜 유산은 대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타나고 계승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대의를 좇아 살다가 당대에 축복이 없다면 나의 후대를 통해서도 축복의 열매가 있을 것을 믿으라. 양보하면 지금은 초라해져도 최종적으로는 초라해지지 않고 후대도 하늘의 별이나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할 것이다. 나의 복된 삶을 후대로 계승시키라. 특히 자녀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원하면 믿음과 사랑과 헌신을 가르치라.
많은 유산은 자녀를 좋게 하기보다 오히려 자녀의 마음과 정신을 살해할 수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남긴 물질이 자녀에게 행복의 절대 조건은 되지 않는다.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 주어야 할 가장 핵심 유산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믿음의 삶이다. 하나님 안에서 큰 뜻을 품고 사랑하고 헌신하며 책임적으로 살라. 그런 책임적인 삶의 결말이 좋지 않는 경우는 없다. 하나님은 책임적인 성도의 앞날을 반드시 책임져 주실 것이다.
< 책임적인 존재가 되라 >
요새 필자가 소속된 C&MA(기독교선교연맹) <총회신학원 전문인 목회연구 과정(MSP)>에 좋은 학생들이 많이 등록해 공부하고 있다. 지원 자격을 법조인과 의료인 등의 전문인 자격증을 가진 사람과 대학원 졸업자 이상으로 제한해서 입학 관문을 좁혀 놓으니까 신학생 모집이 적어지는 손해가 있지만 반면에 한국 목사들이나 작은 교단들이 너무 배움을 소홀해 한다는 비판을 덜 받는 유익이 있다. 목사는 기도도 많이 해야 하지만 배움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한 신학생이 밤새 철야기도를 하고 다음 날 시험에서 “하나님! 시험으로 인해 시험 들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시험지를 봤는데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 시험지에 이렇게 썼다. “교수님! 저는 이 문제 해답을 모르지만 성령님은 아십니다. 어제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철야기도를 한 제 마음을 교수님도 알아주실 줄 믿습니다.” 교수는 성령님의 이름을 내세워 은근히 게으름을 영성으로 포장하는 것을 보고 더 괘씸하게 여겨 빵점을 주었다.
그가 비록 간신히 졸업했지만 나중에 교회를 크게 성장시켰다. 그리고 부흥회에 가는 곳마다 자기 간증을 섞어 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성령 충만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설교했다. 그러자 청중들이 “아멘!” 하고 소리쳤다. 그런 모습이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성령 충만하다고 배움을 소홀히 하지 말라. 성공했다고 혹은 성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고 성령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칭하지 말라.
배우지 않고 자기 멋대로 성경에 없는 기발한 얘기를 하면 속이 시원해지거나 호기심에 사로잡힌 대중이 더 몰려올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편이 다 좋은 편은 아니다. 살면서 자주 느끼고 체험하는 것은 바른 편에 서려는 의인이 상당히 적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은 편이라도 바른 편에 서라. 배움이 부족한 것은 용납되어도 배움을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은 스스로 용납하지 말라. 더 나아가 배움을 경시하는 모습은 결코 없게 하라. 배우려는 지식보다 배우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배우려는 태도가 책임감 있는 태도다.
필자는 총회 신학원장이 MSP 지원자 면접할 때 종종 같이 면접한다. 그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원자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등록금은 잘 낼 수 있습니까?” 그러면 대부분 잘 내겠다고 한다. 그런 대답을 들은 후 그렇게 질문한 이유를 설명한다. “총회 신학원이기에 등록금을 면제해 주고 할인해 줄 수 있지만 최소한으로 받는 적은 등록금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책임적인 모습을 가졌는지 보고 싶어서 그렇게 질문했으니 이해하세요.”
몸만 건강하다면 어떤 일을 해서라도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다. 등록금이 모자랄 때 금식해서라도 등록금을 먼저 내려는 삶도 일종의 희생이다. 신학생 때부터 작은 등록금마저 내달라거나 깎아달라는 모습이 틀이 되면 후일에 자기는 희생하지 않고 교인만 희생시키는 목사가 되기 쉽다. 최소한의 등록금마저 내려는 자세가 없는 것은 희생정신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모습이다. 신학교 때부터 그런 공짜 의식이 배이면 나중에 목회할 때도 교인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기에 신학교 때 등록금을 스스로 마련하는 훈련도 중요하다.
영적인 리더는 기도만 열심히 하는 것으로 모든 허물을 커버하려고 하지 말고 삶의 기본에서 모범도 되고 희생정신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 리더가 헌신을 강요하며 착취하지 않는다. 신학교 때에 “성령 충만! 오직 예수! 오직 기도!”라고 입에 달고 다니면서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나중에 목사가 되면 재정적으로 책임적인 모습을 보이기보다 의존적인 비굴한 모습이나 강요적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책임적인 삶이 중요하다.
이제 필자도 10년 후에는 교회를 좋은 후임 목사에게 물려주고 문서 선교와 목회자 양성 사역에 전념하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후임목사 선택 기준에 대해 기도하고 있다. 그중에서 핵심 기준 중 하나로써 ‘교인을 자기 신분 상승이나 물질 확대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마음이 없는 태도’는 면밀히 살펴보려고 한다. 재정적인 책임감이 있는 것도 희생적인 삶을 사는 표식이다. 결국 책임감과 희생정신은 관련이 깊다. 성도의 기본에 충실하고 땀 흘려 일하며 공동체에 헌신하는 책임적인 모습을 통해 어디에 가든지 평화와 평안이 넘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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