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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꾸준히 간절히 나아가세요!

Joyfule 2014. 8. 31. 07:43
 
주님께 꾸준히 간절히 나아가세요!

우리 집에는 날마다 전화가 참 많이 온다. 
조용하던 나의 삶이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많은 질문 중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왜 자기는 빨리 빨리 성장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성장 조급증에 걸려 있는 것이다. 
영적 성장의 첫 번째 계단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장에 대한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나는 삶의 목표가 영적 성장이라고 가르친다. 
영혼이 발전하고 깨어나는 만큼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으며 
주를 알아가게 된다고 가르친다. 
영이 어리면 이기적이고 육 중심이며 
필요할 때만 주님을 찾지 영적 성장에 대한 갈망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인생의 존재 목적 자체가 영의 성장이며 
그것이 천국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며 
우리가 이 땅에 온 목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영적 성장이란 애매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은사 몇 가지 체험하고 신비 체험 몇 가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기능이 눈을 뜨는 것이며 발전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가치관의 변화, 의식의 변화, 인격의 변화 등 
많은 변화들이 따라오게 된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은사란 하나의 기능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성장과 다르다.   
어떤 사람이 하나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인품과 인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태권도 고단자라고 하자.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인격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피아노를 세계적으로 잘 치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의 고상함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분야이다.   
예언이나 치유나 방언이나 기적의 은사와 같은 것은 외형적인 것이다. 
그것은 성장과 다른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서 한시적으로 사역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영원한 세계에서 그러한 기능들은 대단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그의 심장, 그의 마음이다. 
그의 영격이 얼마나 발전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 영에서 심장에서 마음에서 사랑과 자비와 
모든 풍성함과 아름다움들이 흘러나오게 된다. 
그것이 성장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수준만큼 그는 주님의 통로가 되며 주님과 연합되게 된다.   
능력이나 은사도 주님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외형적인 통로이며 내면적이고 생명적인 통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면이 눈을 뜨고 생명이 눈을 뜨고 
영혼이 자란 사람들만이 주님의 사랑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가 자란 분량만큼 말이다.   
어린 사람은 사랑하는 것이 어렵고 용납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좀 더 자라면 쉬워진다. 
어린 사람은 억울한 것을 참기 어렵고 용서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분노하기가 쉽다. 
하지만 좀 더 자라면 쉬워진다. 
이러한 변화들이 영적 성장의 결과들이다.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교회에 오래 다닐수록 
영적으로 성장하고 주님과 좀 더 깊은 연합에 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을 보면 영이 자라는 것과 신앙경력과는 별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인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렇게 영이 자라고 성장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라는 것이다. 
나이가 많이 들었으나 아직 사랑하기 어렵고 
아직 용서하기 어렵고 아직 용납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실패한 인생이다. 
그것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고난, 모든 실패, 모든 상처, 
모든 시련들이 오직 우리 영혼의 성장을 위해서 주어진 것인데 
그 모든 것을 겪으면 서도 영이 자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인생을 헛산 것이다.   
그 상태에서 하늘나라에 가면 어떻게 될까? 
아마 부끄러운 구원은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여학생이 있다고 하자. 
그녀는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놀기에 바빠서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날마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시간을 보내다가 대학을 졸업했다. 
그녀는 무역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녀의 실력에 따라 바이어와의 상담을 맡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졸업을 했을 뿐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그녀는 어떤 보직을 맡게 되겠는가? 
기껏해야 전화를 받는 일이나 차 심부름 정도일 것이다. 
실력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맡겨질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나는 천국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충성된 종들에게 
주인이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를 많이 말씀하시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한 고을의 권세를, 
어떤 이에게는 다섯 고을의 권세를 맡기신다고 하신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더욱 큰 것으로 맡길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천국에서도 일이 있고 사역이 있으며 이 땅의 일들은 그것을 위해서 
충성도를 점검하는 차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적 성장을 하는 것, 
주님과 실제적으로 연합하며 주님의 마음을 알아 가는 것.. 
그러한 영적 성장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 설정이 첫 번째 계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향 설정이 안 되어 있으면 인생은 문자 그대로 방황하게 된다. 
왜 사는지 모르고 육체의 욕망과 감각과 
그때 그때의 기분과 목표를 따라 왔다 갔다 하게 된다. 
그러므로 분명한 영적 성장에 대한 방향을 잡는 것, 
그것이 성장의 첫 번째 계단이다. 
영적 성장의 두 번째 계단은 무엇일까? 
그것은 간절함이다. 
간곡한 사모함이다. 
그 정도는 모두가 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조금 사모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좀 더 많이 사모할 것이다. 
그 간절함과 사모함만큼 주님과의 거리는 결정될 것이다.   
주님 당시에도 그러한 구분이 있었다. 
주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이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기적을 보고 먹고 마시며 따라다니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주를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멀리서 주를 보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들은 그리 간절하게 주님을 사랑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 
상황이 나빠지면 주를 대적하기도 했다.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소리 질렀던 사람들도 이들이었다. 
군중들은 어느 순간에 주를 따르지만 
어느 순간에 주를 대적할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멀리서 주를 따르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좀 더 가까이 온 무리들이 있었다. 
70명의 무리가 있었다. 
그보다 좀 더 가까이 있어서 생활도 항상 같이 하는 12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3명은 주님이 항상 데리고 다니셨다. 
그들은 좀 더 친밀한 관계 속에 있었다. 
이러한 계층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주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있고 좀 더 소수의 깊이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각 사람의 간절함과 열망에 달려있는 것이다. 
간절하게 주를 사모하는 자들은 주를 얻게 된다.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태양이 아침에 떠오르는 것만큼이나 선명한 사실이다.   
세 번째의 계단은 무엇일까? 
그것은 꾸준함이다.   
방향이 분명하고 그리고 간절하게 주님을 사모한다면 
그들은 꾸준하게 영원토록 날마다 계속 주님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주님과 동행하며 더 깊고 아름다운 여행을 위하여 나아가야 한다. 
중간에 멈추면 안 된다. 
그런데 이 꾸준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간절함과 꾸준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이들을 보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나는 주님에 대해 가르치면서 영성에 대해서 가르치면서 
분에 넘치는 감사와 사랑의 고백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수많은 이들이 울고 또 울었다. 
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다. 
진리를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주를 추구하는 이들은 정말 드물었다. 
그러한 눈물과 감격은 얼마 가지 않아서 식었다. 
아무튼 열정이 강렬할수록 눈앞에서 사라지는 시간은 짧았다. 
그러므로 성장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이 꾸준함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장을 위해서 정말 경계해야 하는 것이 급한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도대체, 도대체 왜 저는 성장이 안 되는 거예요? 라고... 
그들은 하루 전에 씨앗을 심고 
그 다음 날이면 그 씨앗이 커다란 고목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루가 지나서 아무 반응이 없다면 다시 땅을 파고 그 씨앗을 꺼낸다. 
씨앗이 상한 것이 틀림없다고 하면서. 
그래서 다른 씨앗을 심고 내일은 틀림없이 나무가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그들은 평생을 씨앗을 심고 파고하면서 삶을 보낸다. 
하나의 씨앗이 자라서 나무가 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물며 우리의 영원한 생명인 영혼이 깨어나고 
눈을 뜨고 자라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인가.   
은사를 체험하는 것은 순간에 가능하다. 
불을 받을 수도 있다. 
뜨거운 기운을 체험할 수도 있다. 
음성을 들을 수도 있다.   
당신이 호흡기도를 배우고 경험하게 되면 
그 영의 움직임이나 흐름에 예민해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부르짖는 기도를 배우게 되면 영이 강하고 담대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영이 강해지므로 쓸데없이 남에게 눌리고 
눈치보고 그렇게 살지 않게 될 것이다.   
영의 감각이 예민해지고 깨어나게 되면  사람의 마음을 쉽게 느끼게 될 것이다. 
영이 열리고 뇌가 열리면서 영계의 에너지를 받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많은 체험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성장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작은 기능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뿐이다.   
부디 한 순간의 성장을 추구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한 이들은 며칠이 가지 않아서 실망하게 된다. 
권능에 사로잡혀서 저절로 이끌려 가는 것이 성장이라고, 
신령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집회에서는 누구나 다 충만할 수 있다.
기도원에 가서 며칠씩 부르짖고 기도하면 누구나 마음에 평강이 충만해진다. 
성장이란 날마다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것은 갑자기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날마다의 삶에서 주님을 붙잡고 걸어가는 것에 있는 것이다. 
낙심이 올 때, 미움을 선택하고 싶을 때 
불평과 원망을 하고 싶을 때, 
그 때 사랑을 선택하고 주님을 선택하고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사랑이 많게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용서도 저절로 되는 줄 안다. 
자기는 팔자가 사나워서 이렇지 그렇게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부디 그런 생각들을 버리기를 바란다. 
삶은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와 영원을 만든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영원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팔자가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가 성장에 필요한 도구들을 공평하게 나누어 받는다.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여기면 그것은 하나님을 정죄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선택하기에 달려있다. 
지금 사랑하기 어렵지만 지금 주를 바라보며 
사랑을 심으면 내일은 좀 더 쉬울 것이다. 
지금 감사하기 어렵지만 지금 주를 의뢰하면서 
한 걸음 갈 수 있다면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것이다. 
지금 원망을 선택한다면, 지금 신경질을 부린다면 
지금에야 조금 마음이 시원할지도 모르지만 내일의 선택은 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계의 어두운 곳으로 날마다 떨어지면서 사는 삶이다. 
한 번에 한 순간에 왕창 점수를 따서 
지난날의 모든 잃을 것을 회복하려고 하지 말라. 
그러한 한탕주의가 도박군의 특성이다.
바로 그 한탕주의 때문에 성실한 삶이 깨지고 가정이 깨지고 쪽박을 찬다.   
영적 성장에도 한탕은 없다. 
우리는 모두 날마다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그 선택 속에서 조금씩 주를 선택한다. 
감사를 선택하고 사랑을 선택하고 아름다움을 선택한다. 
그렇게 1년, 1년 우리는 걸어간다. 
그렇게 걸어간 세월이 우리를 만들고 
우리의 영원을 만들고 우리의 영혼을 형성한다.   
그러니 제발 부탁하노니 영적 성장에 조급한 마음을 품지 말라. 
이것이 정말 진귀한 보화라면 끝없이 끝없이 
날마다 날마다 사모하고 추구하고 또 사모하라.   
이 길, 영적 성장의 길을 결코 중간에 포기하지 말라. 
넘어질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내일은 좀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을 걸어가라. 
나는 당신에게 권면하고 싶다. 
꾸준하게 영적 성장을 사모하고 추구하며 이 길을 걸어가라는 것이다. 
자유롭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끝까지 잘 가는 이들은 드물다. 
나는 당신이 꾸준하게 이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는 길이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져도   
가면 갈수록 그 길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으며   
즐겁고 행복한 길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주님께서 당신의 여정을 축복하시기를. 
할렐루야. 
<자유롭고 행복한 그리스도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