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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8 장 종말의 발단 3.

Joyfule 2008. 11. 14. 04:45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8 장 종말의 발단 3.  
    ”어머니는 그걸 감지하셨다네. 
    어머니가 갑자기 나더러 자네에게 가 봐달라고 부탁하시더군. 
    그때 마침 러시아에 관한 소식을 이야기하고 있던 참이었네.” 
    우리는 되돌아서 걸었고 이미 할 말이 거의 없었다. 
    그는 자기의 말을 풀어서 올라탔다. 
    이층의 나의 방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나는 데미안이 전해준 소식에 의해서, 
    아니 그 이전의 긴장에 의해서 내가 얼마나 기진맥진해 있는가를 느꼈다. 
    하지만 에바 부인은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나는 마음속의 생각만으로 그녀에게 도달했던 것이다. 
    그녀가 직접 와주었더라면‥‥‥. 오지 않았다 해도---
    이 모든 것은 얼마나 기이한 일인 것인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 것인가! 
    이제는 전쟁이 일어난 것이었다. 
    우리가 자주 이야기했던 바로 그 일이 시작되리라는 것이었다. 
    데미안은 그것에 대해 그리도 많이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의 조류는 이미 그 어느 곳에선가부터 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우리의 가슴 한복판을 뚫고 흘러가고 
    모험과 거친 운명이 우리를 부르고 있으며 
    지금이 아니라도 불원간 세계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스스로 변화되고자 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것은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데미안이 옳았다. 
    그것을 감상적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다만 이상한 일은 이제 내가 그렇게도 고독하게 염원해왔던
     ‘운명이라는 문제를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아니 오 세상과 더불어 함께 경험해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좋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저녁 무렵 시내를 걸어가자니 
    거리는 구석구석 흥분으로 들끓고 있었다. 
    어디를 가도 ‘전쟁’이라는 말밖에는 들려오는 것이 없었다. 
    나는 에바 부인의 집으로 가서 정원의 정자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내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전쟁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내가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에바 부인이 내게 말했다. 
    ”친애하는 싱클레어, 당신이 오늘 나를 부르셨지요. 
    왜 내가 직접 가지 않았는지를 잘 아시겠지요. 
    그러나 이걸 잊지 마세요. 당신은 이제 부르는 법을 알게 된 거예요. 
    그러니 언제든지 표지를 지닌 누군가가 필요하게 될 때는 다시 부르세요!” 
    그녀는 몸을 일으키고는 정원의 황혼 속으로 걸어나갔다. 
    잠잠한 나무들 사이를 이 신비에 찬 여인은 아주 당당한 걸음으로 지나갔고 
    그녀의 머리 위에는 뭇별들이 조그맣게, 조용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 이야기의 끝이 가까워졌다. 
    사태는 급속히 진전되었다. 
    곧 전쟁은 시작되었고 데미안은 은회색의 군복을 입고 
    이상스레 낯선 모습으로 떠나갔다. 
    나는 그의 어머니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그녀와 작별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내 입에다 입을 맞추고 잠시 동안 나를 가슴에 끌어안아주고는 
    불타는 큰 두 눈으로 나의 눈을 바싹 들여다보았다. 
    모든 사람들은 형제와도 같았다. 
    그들은 조국과 명예를 생각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한 순간 들여다본 운명의 가리지 않은 얼굴에 불과했다.
     젊은 사람들은 병영에서 나와서 기차를 탔고 
    그 많은 얼굴들 위에서 나는 하나의 표지를 보았다-
    --그것은 우리들의 표지가 아니라---
    사랑과 죽음을 의미하는 아름답고 고귀한 표지였다. 
    나도 역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포옹을 당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흔현히 그것에 응답했다. 
    그들이 그런 짓을 하는 심정은 단순한 도취일 뿐이지 운명의 의지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흥분은 신성했는데 그것은
     모두가 운명의 눈에 잠깐 동안의 도취된 시선을 던진 데서 기인된 것이었다. 
    내가 전쟁터에 왔을 때는 거의 겨울이 다가와 있었다. 
    처음에 나는 끊임없는 사격의 느낌에도 불구하고 만사에 대해 다소 실망했다. 
    옛날에 나는 인간이 왜 그렇게 드물게 밖에는 
    하나의 이상을 위하여 살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아니 모든 사람들이 이상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았다. 
    물론 그것은 개인적이거나 자유롭거나 선택된 이상일 수는 없었고 
    공통적이고 떠맡겨진 이상임에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