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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8 장 종말의 발단 2.

Joyfule 2008. 11. 13. 01:30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제 8 장 종말의 발단 2.  
    그는 내 말을 거의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매우 창백해 보였으며, 땀이 그의 이마에서 양쪽 볼 위로 흘려내리고 있었다. 
    그는 잔뜩 열이 올라 있는 말의 고삐를 정원의 울타리에 매고는 
    나의 팔을 잡고 거리로 내려갔다. 
    ”자네도 벌써 무엇인가 알고 있는 건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데미안은 나의 팔을 꽉 눌러쥐고 
    어둡고 동정적이면서도 이상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봐. 이제 터졌다네. 
    자네도 물론 러시아와의 긴박한 긴장상태를 알고 있었겠지만---.” 
    ”뭐라고, 전쟁이 일어났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는 아주 낮은 어조로 말했다. 
    ”아직 정식으로 선전포고가 된 건 아니야. 하지만 전쟁이야. 
    내 말을 믿게. 나는 그날 이래로 이 문제를 갖고 자네를 괴롭히진 않았었지. 
    하지만 나는 그때부터 세 차례나 새로운 징조를 보았다네.
     요컨대 그것은 세계의 몰락도 아니고, 지진도 아니며, 
    혁명도 아닌 걸세.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 
    자네는 사태가 어떤 결과을 초래하게 될지를 볼 수 있을 걸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기쁨이 될 걸세.
     벌써 지금도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난 것을 기뻐하고 있다네. 
    그들에겐 생활이 그렇게도 무미해졌단 말일세---
    하지만 싱클레어, 자네는 이것이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걸세. 
    모르긴 하지만 대전쟁, 굉장한 대전쟁이 될 걸세. 
    하지만 그것도 역시 단순한 시작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있네. 
    그 새로운 것이란 낡은 것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질겁할 일이 되겠지만. 자네는 어떻게 하려는가?” 
    나는 낭패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내게는 낯설고 아직도 사실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나는 모르겠네---자네는?” 
    그는 어깨를 움찔했다. 
    ”동원 당하게 되면, 나는 곧 입대하겠네. 나는 소위라네.” 
    ”자네가? 그런 줄은 조금도 모르고 있었네.” 
    ”그렇겠지. 그건 나의 적응의 하나지. 자네도 잘 알겠지만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눈에 띄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언제나 올바르기 위해서 좀 과다한 일을 해왔던 것일세. 
    나는 일주일 내로 전쟁터에 가게 되리라고 생각하네만---.” 
    ”제발---.” 
    ”이봐, 이 일을 감상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네. 
    물론 살아 있는 사람에게 발포를 명령한다는 것은 
    내게도 조금도 재미나는 일이 아닐 걸세. 
    하지만 그것은 전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네. 
    이제 우리들 모두는 커다란 수레바퀴 속에 휩쓸려 들어가게 될 걸세. 
    자네도 마찬가지겠지. 자네도 필경 징집당하게 될 거야.” 
    ”그럼 자네 어머니는, 데미안?” 
    이제서야 비로소 나는 불과 십 오 분 전에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세상은 얼마나 변해버렸는가! 
    그 감미롭기 그지없는 영상을 불러일으키려고 
    나는 온 영혼을 모우고 있었던 것인데 지금 운명은 
    새로이 위협적인 무서운 가면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 말인가? 
    아,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네. 
    어머니는 믿을 만한 분이니까. 오늘날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말이네. -
    --자네는 어머니를 그렇게도 사랑하는 건가?” 
    ”자네도 그것을 알고 있었군, 데미안?” 
    그는 밝고 아주 활달하게 웃었다. 
    ”이 어린 친구야! 물론 그걸 알고 있었지. 
    나의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고서 에바부인이라고 부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네. 
    그런데 어땠나? 자네는 오늘 어머니나 나를 불렀지, 그렇지 않나?” 
    ”그래, 불렀었네‥‥‥. 
    나는 에바 부인을 불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