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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이방인(L'Etranger:1942)

Joyfule 2009. 7. 3. 01:51

    4.이방인(L'Etranger:1942)

    -제2부- 체포되어 나는 여러 번 심문을 받았다. 판사는 그 날 사건을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재촉했다. "당신의 행동에 나로서 이해하기 곤란한 점들이 있는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을 확신합니다" 나는 그 날의 사건을 요약하여 레이몽, 바닷가, 해수욕, 싸움, 다시 바닷가, 조그만 샘, 태양, 다섯 방의 권총, 쓰러진 시체까지 이야기를 마쳤다 "좋습니다" 다음 그는 다짜고짜로 어머니를 사랑했느냐고 물었다. "네,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사랑했습니다" "첫 번째 방아쇠를 쏠 때와 두 번째와의 사이에는 왜 간격이 있었습니까?" 그가 말하였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붉은 바닷가를 눈 앞에 보고 뜨거운 햇볕이 나의 이마 위에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당신은 땅에 쓰러져 이미 죽은 사람 위에 다시 총을 쏘았습니까?" 그 물음에도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판사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왜 그랬어요? 그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나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예심은 십개 월이나 계속되었다. 그 동안 마리는 여러 번 찾아와서 석방되면 곧 결혼하자고 했고 해수욕도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결국 여름이 지나가고 또 다시 여름이 되었다. 아침 일곱 시 반. 나는 호송차를 타고 재판소에 닿았다. 재판장은 서류를 뒤적이고 나서 처음으로 왜 어머니를 양로원에 넣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를 부양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으로 마음이 괴로웠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우리들은 서로 아무것도 누구에게도 기대할 것이 없었으므로 곧 그 생활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다음으로 증인 심문이 있었다. 먼저 양로원 원장이 진술했다. 그는 어머니가 나에게 불평을 했다고 말하고 또 장례식 날 나의 냉정한 태도에 놀랐다고 말했다. 내가 어머니를 보려고도 하지 않고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무덤 앞에서 묵도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로 문지기의 진술로 그는 내가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것 담배를 피웠다는 것 잠을 자고 까페 오 레를 마셨다는 것을 말하였다. 다음에 마리 마송 레이몽 등의 공술도 끝났다. 검사와 변호사의 변론은 너무나 차이가 있었다. 검사는 어머니가 죽은 뒤의 사실을 요약하였다. 내가 냉정했다는 것 어머니의 나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 이튿날 여자와 함께 해수욕을 갔었다는 것 영화 구경을 가고 마리와 함께 집으로 왔다는 것을 지적하고 레이몽과 합의하여 그의 정부를 꾀어다가 성품이 불측한 사나이의 흉악한 행위에 맡기려고 편지를 썼으며 바닷가에서는 레이몽의 적에게 대들었다는 것이다. 레이몽이 다친 뒤 레이몽에게 권총을 받아 가지고 그것을 사용할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계획대로 아랍 사람을 쏘아 죽인 것이다. 잔인하게도 일이 잘 되었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시 네 방의 탄환을 태연하게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쏘았다고 검사는 말하였다. 끝으로 검사는 말했다. "나는 이 사람에게 사형을 요구합니다" 재판장이 나에게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동기는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하자 장내는 웃음으로 소란해졌다. 변호사의 긴 변론이 끝난 다음 나는 옆방으로 끌려갔다. 변호사는 "배심원의 답신을 재판장이 읽습니다. 당신은 판결을 언도할 때에야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변호사는 나를 두고 가 버렸다. 나는 마리 있는 쪽을 보지 못했다. 재판장은 내가 프랑스 인민의 이름으로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되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소속 신부의 면회를 여러 번 거절하고 새벽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새벽녘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풀벌레의 울음 소리가 축축한 대기에 울려 퍼지고 검은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는 밤을 보내며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형제애를 느꼈다. 나는 그 동안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