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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47과)1.

Joyfule 2010. 10. 19. 08:27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47과)1.

다니엘(1): 서 론

 

 

1. 다니엘과 이스라엘의 역사

 

  다니엘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은 이스라엘이 매우 어려웠던 시기에 발생했다. 유다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마침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유다는 약 1세기 전(주전 722년)에 멸망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 교훈을 받았어야 했다(왕하 17:4-23).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했고,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유다의 멸망은 3차례에 걸친 바벨론 침략에 의해 이루어졌다. 첫 번째 침략은 주전 605년, 즉 "여호야김 3년에" 있었다. 이 때에 다니엘을 비롯한 유능한 시민들과 장인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단 1:1-2, 렘 25:1, 46:2 참고). 이것은 이사야와 미가, 스바냐, 하박국에 의해 예고된 예루살렘 멸망의 시작이었다. 하나님은 범죄한 유다를 치시고, 성전의 기구들이 바벨론 신의 창고에 옮겨지게 하셨다(단 1:2). 그 후에 유다는 두 차례 더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다(주전 597년, 주전 586년). 1차 포로 사건이 있은 8년 후(주전 597년)에 2차 포로 사건이 있었다. 이때에는 우리가 잘 아는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갔다. 에스겔은 포로의 신분으로 유다 백성들의 영적 생활을 인도했다. 2차 포로 사건이 있은 지 11년 후(주전 586년)에 유다는 3번째 침략을 받고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이때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포로가 된 지 19년이 지난 때였다. 


2. 다니엘에 대해서


  다니엘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God is my Judge), 또는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다"(God is Judge)란 뜻을 가지고 있다. 다니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성경에 그의 부모들이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그는 분명히 왕이나 귀족 출신이었을 것이다(단 1:3). 그리고 다니엘이 놀랍게 헌신된 것을 보면 그의 부모 역시 하나님께 헌신된 경건한 부모였을 것이다.

  다니엘은 본서 외에도 다른 성경에 5번이나 기록되어 있다(겔 14:14,20, 28:3, 마 24:25, 막 13;13 등). 에스겔은 다니엘을 노아와 욥과 함께 어려운 시대에 의를 지킨 경건한 인물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니엘과 동시대인인 에스겔이 다니엘을 높이 평가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또한 예수께서도 직접 다니엘의 예언을 인용하심으로 다니엘서의 진정성을 입증해 주셨다.

  다니엘은 유다 멸망 전 19년 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다. 그는 바벨론에 살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1) 이방 땅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
  하나님은 유다가 비록 바벨론에게 멸망을 했지만, 여호와께서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다니엘을 통해 알려주셨다.

2)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들의 복지를 강화해 준 일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총리와 고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들의 형편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들은 좋은 농경지에서 살았고, 집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종교 제도(장로, 제사장, 선지자)를 유지하고 있었고, 고국과도 계속해서 서신을 왕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은 다니엘이 바벨론의 총리로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유다가 멸망하기 19년 전에 미리 다니엘을 바벨론에 보내서 준비할 수 있게 하셨다. 이러한 일은 요셉을 먼저 애굽에 보내서 후에 야곱의 가족을 애굽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셨던 일과 매우 비슷했다.

3. 다니엘서의 시대적 배경: 바벨론-페르시아 시대-  

 

1. 바벨론 시대

 

 가. 나포폴라살(주전 627-605년)
 바벨론의 나포폴라살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함으로 바벨론을 세계 최대의 강대국으로 등장하게 했다. 이때에 앗수르 왕은 하란으로 도주했다(주전 612년). 1년 후에 나포폴라살은 다시 하란에 있는 앗시리아 군대를 공격했다(주전 611년). 1년 후에 바벨론 군대는 메대와 손을 잡고 다시 하란에 있는 앗시리아 군대를 공격하여 격퇴했고, 이때에 앗수르 군대는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서 도피했다(주전 610년). 이때에 앗수르왕은 이집트에 원병을 요청하게 된다. 그리고 애굽 왕 바로 느고 2세가 앗수를 돕기 위해 출정했다. 이 때에 유다 왕 요시야는 바로 느고의 출정을 막다가 전사하고 말았다(주전 609년; 왕하 23:28-30). 그 후에 이집트는 앗수르가 연합하여 바벨론과 싸웠지만, 바벨론 군대가 길가메쉬에서 이집트 군대를 격퇴시켰다(주전 605년 5-6월).

 

 나. 느부갓네살(주전 605-562년)
 이때에 나포폴라살이 죽게 된다. 나포폴라살의 아들인 느부갓네살은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 군대를 이끌고 팔레스타인으로 온다. 그리고 이때에 느부갓네 살은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게 된다(605년). 이때에 느부갓네살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포함한 유능한 젊은이들을 포로로 끌고 가게 되었다. 이것은 유다의 제 1차 포로 사건이었다. 그 후에 유다의 왕이 된 여호야긴은 바벨론을 배반했고, 이 소식을 들은 느부갓네 살은 다시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유다를 점령한다. 그리고 이때에 에스겔을 비롯한 유다 백성들이 두 번째 포로로 잡혀 가게 된다(597년). 그 후에 왕이 된 시드기야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또 다시 애굽과 손을 잡고 바벨론을 배반하게 된다. 그리고 느부갓네 살은 다시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여 완전히 유다를 멸망시켰다(588-586년). 그리고 이때에 유다의 백성들은 3번째로 포로로 잡혀 가게 된다.

 

 다. 에빌 므로닥(주전 562-560년): 느부갓네살의 아들
 
라. 릭리살(주전 560-556년): 느부갓네살의 첫째 사위
 
마. 나바쉬 말둑(주전 556년 2개월간 통치): 릭리살의 아들
 
바. 나보니두스(주전 556-539년): 느부갓네살의 둘째 사위

 

 사. 벨사살(553-535년): 나보니두스의 아들인 벨사살은 아버지와 함께 나라를 다스렸다. 그리고 그는 성전의 그릇들을 가져다가 잔치를 열었으며, 그때에 손가락이 나와서 벽에 글씨를 쓰게 되었다. 그 날 저녁에 바벨론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게 멸망하게 된다.

                        <신 바벨론 제국의 왕들>

                       1. 나포폴라살(주전 627-6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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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느부갓네살(주전 605-5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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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빌므로닥(주전 562-560년)  4. 릭리살(560-556년)    6. 나보니두스(556-5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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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나바쉬-말둑(556년, 2개월)   7. 벨사살(주전 553-539)


2. 페르시아 시대(주전 538-331년)

 

 가. 고레스(538-530년)
  고레스 왕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메대-페르시아 왕국을 세웠다(주전 539년). 고레스는 유대인들을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귀환 명령을 내렸다(주전 538년). 그리고 이때에 세스바살의 인솔 하에 제 1차 유대 백성들의 귀환이 이루어졌다. 고국에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제단을 건축하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공사를 시작하게 된다(587년 7월).

 

 나. 캄비네스(530-522년)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의 끈질긴 방해로 인해 유다 백성들은 캄비네스 때에 성전 공사를 계속하지 못하고 중단하게 되었다.

 

 다. 다리오 1세(522-486년)- 학개, 스가랴
  그러나 다리오 1세때에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일어나서 성전 건축을 재개하라고 격려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전이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에 의해 완성되었다(주전 520년). 이렇게 해서 유다 백성들이 고국에 돌아온 지 23년 만에 성전 봉헌식이 거행되었다(주전 515년).

 

 라. 아닥사스다 1세(465-424년) - 말라기
  그 후 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유다 백성들이 2차로 고국에 귀환하게 된다(주전 457년). 그는 고국에 와서 백성들에게 율법 교육을 통해서 영적인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후에 다시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한 3차 귀환 사건이 일어났다(주전 444년). 느헤미야는 유다 총독으로 파견되어 고국에 돌아온 지 약 2개월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했다. 3차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던 유다 백성들은 3차에 걸친 귀환을 통해 다시 회복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