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0과)1. | ||||||||||||||||||
다니엘(4): 미래 역사를 주관 하시는 하나님 (10-12장) | ||||||||||||||||||
둘째 이야기: 미래의 세계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7-12장)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 하에 흘러가고 있는가 ? 거대한 왕국에 포로로 잡혀와 소수 민족으로 흩어져 살며, 때로는 박해를 받으며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장래가 있는가 ? 유다 민족으로 남아서 수치와 박해를 받는 것보다 열강의 민족으로 귀화하여 살아가는 것이 더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 이같은 내적 회의를 품고 있는 포로들에게 (단 7-12장)은 어떤 답을 제공해 주고 있는가 ? 그 동안에는 줄곧 주어를 3인칭으로 기술하던 다니엘서가 여기에서부터는 1인칭으로 변화한다. 이는 다니엘 자신이 직접 받은 환상이기 때문이다.
4. 마지막 이상(4) - 왕들의 전쟁(10-12장) 4-1. 선지자의 준비(10장)
가. 이상이 나타난 때와 하늘 사자의 모습(10:1-9) 나. 하늘 천사의 설명(10:10-14) 가. 바사 아래에서의 역사(11:1-2) 나. 헬라 치하에서의 역사(11:3-35) 가) 알렉산더의 출현(1:3-4)
나) 남방 왕과 북방 왕-프톨레미와 셀류커스와의 분쟁(11:5-20)
11:5 - "남방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들 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11:6 -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맹약하리니" 11:7-8 - "그러나 이 공주의 본족 중에 난 자가" 11:9-10 - "북방 왕이 남방으로 쳐들어 갈 것이나" "두 아들들" 11:11-13 - "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11:14-17 - "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11:18-19 11:20 안티오쿠스 3세 대왕의 뒤를 이어 시리아의 왕이 된 사람은 에피파네스(안티오쿠스 4세; 175-163년)였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현저한 자"라는 뜻을 가진 '에피파네스'라고 불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이름을 바꾸어 "미친 자"라는 뜻을 가진 '에피마네스'라고 불렀다. 그는 필로파터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다. 이때에 이집트와 유대인이 동맹하여 그를 공격하였는데 에피파네스는 그들을 격파하고 이집트와 동맹한 제사장 오니아스 3세를 폐위시켜 버렸다(21-22). 이 승리로 인해 에피파네스는 비교적 적은 군사의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부자들의 재물을 탈취하여 자기의 무리들에게 주려고 하였다(23-24). 안티오쿠스는 나라를 안정시킨 후에 이집트를 공격하였다(170년). 이집트는 수많은 대군을 이끌고 펠루시움에서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에피파네스에게 패배하였다. 그들은 한 밥상에 앉아 서로 평화 조약을 맺으려 하였지만 서로 속였기 때문에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25-27). 안티오쿠스는 많은 재물을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을 더럽힘으로 유대인들에게 분풀이를 하려고 했다. 그는 모세의 율법을 거스렸으며 성전을 더럽힌 후에 본국으로 돌아갔다(28). 그는 다시 군대를 정비하여 이집트롤 치려고 왔으나 로마에서 파견된 깃딤의 배의 반격을 받았다. 로마 원로원인 포필리우스 라에나스는 안티오쿠스에게 이집트와 언약을 맺지 말라고 하였으며 결국 그는 로마의 요구에 굴복하여 이집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29-30). 그는 또 다시 예루살렘을 더럽혔다. 그는 모세의 법을 제한하고, 언약을 버리는 자들을 후대하였으며(30), 성전 문을 닫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금지했다(31). 그는 군대를 보내 안식일에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부녀자와 어린아이를 노예로 잡아갔고 도시를 약탈하고 방화했다.
에피파네스는 유대주의를 종식시키고 헬라 화하기 위해서 할례와 절기와 같은 종교 관습을 금지하고 율법 서를 불태우게 하였다. 그는 성전 밖 번제 단 위에 제우스 제단을 세웠으며(주전 167년 12/16), 그 제단에서 돼지를 잡았다(31). 그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우스를 섬기는 자에게 상을 주겠다고 하였고, 많은 유대인들이 이 유혹에 넘어갔으나 소수의 무리만이 하나님께 대한 신의를 지켰다(32). 그러나 안티오쿠스의 명령에 불복종한 유대인들은 율법을 계속하여 가르쳤으며 그들은 칼과 불과 포로와 약탈을 당하여 순교를 하게 되었다(33). 주전 166년에 제사장 맛다디아스는 이 정책에 반항하기로 결심을 하고 그의 5 아들을 데리고 산으로 도망하였다. 처음에는 적은 사람들이 이에 동조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많은 지지 세력을 얻게 되었으며, 안티오쿠스 4세가 바사에서 정신병으로 죽은 주전 164년 말에는 성전을 다시 정결케 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고난을 통하여 연단 되고 정결케 되었다(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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