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5과)6. |
스가랴(2): 악의 제거 (5-8장) |
3. 금식인가? 경건인가? (7장)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8),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9),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10)..."
스가랴는 과거의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경고와 메시지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조상들에게 제시되었던 경건의 길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재판의 진행은 진리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을 증오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공의의 재판관이시기 때문이다. 이웃간에는 서로 인애와 승휼을 베풀어야 하며, 모든 공적 사적인 관계들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본을 따라 행해져야 한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은 의지할 데 없는 연약한 사람들, 즉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궁핍한 사람들을 돌아보라고 명하고 있다. 또한 율법은 그들에게 이웃에 대해 노를 품지 말고, 그들을 해치려고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다.
이웃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올바르게 될 수 없다. 경건이 없는 신앙은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 대한 모독이다. 윤리가 결핍된 종교는 무익하며, 참된 신앙이 없는 윤리 역시 근거가 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형식보다 내면의 진실을 원하시며, 그것이 이웃을 향해 나타나기를 원하신다. 스가랴 선지자가 그들에게 선포한 이러한 메시지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전부터 이러한 요구를 계속해서 해오셨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통치 원리는 과거나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11),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1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13),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14)."
하나님께서 그듭해서 경고하시고 권면하셨지만, 포로 전에 살았던 조상들은 그 경고와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완악함과 불순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둘째로 그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리는 것은 멍에를 거부하는 황소의 태도에서 나온 비유이다. 그들은 멍에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황소처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주시는 권고의 말씀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셋째로 그들은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일만으로도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들은 귀를 막고 그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더욱 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금강석과 같이 굳게 하였다. 그들의 불순종과 거역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들은 게속해서 진리를 거부함으로 점점 더 마음이 완악해지고 냉혹해 졌으며, 둔감하기 이를 데 없게 되고 말았다.
영적인 경화는 육적인 것만큼 사실적이며, 그 결과는 육적인 것보다 훨씬 더 비참하다. 생명의 근원인 마음이 병들면, 그 증세는 절망적인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성령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없이 대적했다. 여기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진리가 있다. 첫째로 스가랴는 선지자들의 계시와 메시지를 모세의 율법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서 등급을 매길 수는 없다. 선지자들의 말과 율법은 동등한 권위를 갖는다. 인ㄴ 이 두 말씀이 모두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우리들은 이 두 가지 수단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유의해야 한다.여기에 언급된 "이전 선지자들'은 포로 이전에 이스라엘과 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순종은 하나님의 큰 진노를 불러 일으켰다. 하나님의 진노가 컸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내린 큰 징벌을 통해 알 수 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징계는 갑자기 이스라엘 위에 내려졌다.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면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자주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끝내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환난 중에 부르짖었지만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곤경에 빠진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향해 도움을 요청할 때에 응답이 없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하나님은 환난 중에 부르짖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폭력과 회오리 바람을 일으켜서 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이방 땅에 흩어 놓으셨다. 스가랴가 사역하던 시대에 이미 그들은 앗수르와 바벨론 등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앗수르와 바벨론 포로 이후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로 상태로 지냈으며, 여러 지역에 흩어져서 방황하며 살게 되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불순종한 백성에게 충만하게 임했다. 이스라엘 주변과 그들이 살고 있던 곳의 민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동정을 나타내려 하지 않았다.
바벨론 포로 생활의 결과로서 이스라엘 땅은 버려진 황무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로 인해 이방 강대국들은 그 땅을 소유하지는 못했다. 그 땅에 살아야 할 적법한 사람들이 없는 때에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70년 후에 귀환할 것을 대비하여 그 땅을 보존시켜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고, 제 멋대로 행한 그들을 치기 위해 대적들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 땅을 황폐케 했다는 책망을 받는다. 그 땅이 황무하게 된 것은 바로 그들의 죄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땅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기꺼이 주셨던 땅, 곧 문자 그대로 "소망의 땅"이었다. 인간이 만든 폭탄 등의 파괴 도구들은 결코 죄만큼 치명적으로 땅을 황무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죄가 아름다운 가나안 땅을 파멸시켜 황무케 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인간 생활에 있어서 지가 얼마나 무서운 해악을 끼치는 지를 잘 알 수가 있다. 스가랴 7장의 주제인 금식은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것이다. 그들의 종교력에는 많은 금식일이 있다. 그 모든 금식일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교훈은 민족사에 있어서 죄 때문에 닥쳐왔던 재앙과 파멸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했더라면 얼마나 현명했을까? 그들은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된 말씀에 꾸준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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