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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153과)2.

Joyfule 2010. 11. 5. 08:28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153과)2.

학개(2):  다가올 영광 (2장)

 


2. 다가올 영광(2장)

 

2-3. 원인과 결과(2:10-)

 

 

  "다리오왕 이년 구월 이십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10),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11),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12).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13)."

 

  학개 2장의 둘째 부분은 첫 메시지를 선포하고 나서 약 2달 후-다리오왕 2년 9월 24일-에 선포되었다. 이것은 이제 그들이 순종하였기 때문에 불순종 때문에 거두어가셨던 축복을 다시 주실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과 관계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들의 과거의 불순종이 과거의 응징과 시련을 초래했고, 현재의 순종은 미래의 축복을 가져올 것이다. 학개는 백성들에게 당시의 제사장들에게 율법에 관하여 배우라고 교훈했다. 제사장은 백성에게 모세의 율법에 관한 문제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율법을 해석하는 것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일이었고(2:11-13), 학개는 이를 실제 생활에 적용함으로 자기의 의무를 행하였다(2:14). 1:11-13에서는 과거에는 있었던 일이지만, 앞으로는 다시 반복되지 않을 상태를 그 백성에게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질문이 있었다. 1) 만일 사람이 제물로 드릴 (거룩한) 고기를 가지고 가다가 다른 물건을 건드리게 되면, 그 건드려진 물건이 그 고기로 인해 거룩해 지거나 하나님의 몫이 되겠는가? 2) 만일 시체를 만진 연고로 부정해진 사람이 어떤 물건을 건드린다면, 그  의 부정으로 인해 그 물건이 부정해지겠느냐? 첫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이 주제에 대한 구절들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모세의 율법은 도덕적 정결함은 전달될 수 없지만, 도덕적인 부정은 전달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율법적 부정은 율법적 정결보다 쉽게 전달된다. 건강한 아버지가 자신의 건강을 아픈 아이에게 줄 수는 없지만, 병은 아이는 그 병을 아버지에게 옮길 수 있다.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14).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15). 그 때에는 이십석 곡식더미에 이른즉 십석 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 뿐이었었느니라(1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17).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 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18).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19)."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또 전에는 성전의 일을 소홀히 했었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예물을 가져오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러한 예물들이 용납되지 앟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 선지자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제의적으로 부정한 사람은 자신이 건드리는 모든 것을 오염시켰다. 이와 같이 그들의 오랜 불순종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했고, 그들이 한 모든 일이 아무 이익에 없게 만들었다. 또 희생 제사로 드리는 거룩한 고기가 그 제사에 쓰여지는 물건들 외의 어느 것에도 그 성결함을 전할 수 없듯이, 그들의 외적인 선행, 심지어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을 드리는 일까지도 외적인 의식을 거행하는 일 외의 효과를 가져오지 못하며, 하나님의 축복이나 거룩한 기쁨도 얻어낼 수 없었다.

 

  그들의 이전 일들은 모두 영적 부정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전에 행하던 불순종하던 길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그들은 과거에 행하던 일들을 그만두라는 경고를 받는다. 학개는 1:6,9-11에서 씨를 뿌리고 거두는 관전에서 간단히 설명했는데, 여기에서는 모세의 율법이라는 시각에서 인과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1:2)에 "이 백성", 2:14에 "이 백성...이 나라"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의 동일한 시간을 이갸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집에 대해 무관심했던 상태가 2:15-19에서 재고되고 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성전의 재건을 중단했을 때에 그들이 겪은 곤경을 생각해보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 그 환난의 날에 20석을 추수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곡식이 10석밖에 수확하지 못했다. 그리고50석의 포도주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통에는 20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계속 응징하셨다. 아모스 시대처럼 하나님께서 극심한 한재로 인한 폭풍과 극심한 습기로 인한 곰팡이로 그들을 치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고도 남은 것은 우박으로 치셨다. 하나님의 불만을 나타내는 이러한 분명한 징조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회개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선지자의 외침은 숙고되고 또 숙고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삶의 긴요하고 중요한 관계들, 특히 만물의 하나님의 행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계들을 소홀히 여긴다. 선지자가 말한 것들은 헛간과 창고를 조사해봄으로써 쉽게 증명할 수 있었다. 창고에는 씨앗이 없었고, 포도나무와 나무들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순종하는 날로부터 그들을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축복을 거두어 가신 하나님은 믿음과 순종에 대한 응답으로 축복을 주권적으로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2-4. 스룹바벨과 메시야(20-23)

 

  "그 달 2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20),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21),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며, 열방의 세력을 멸하고,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게 될 것이라!(22)"

 

  학개의 마지막 메시지는 스룹바벨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 메시지는 백성들의 부정과 축복받지 못함에 대한 메시지와 똑같은 날(24일)에 선포되었다. 당시의 통치자에게 주어진 그의 메시지는 장차 있을 열국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난다. 이 부분에서는 마지막 때를 바라보면서 메시야의 인성에 대해서 예시해주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진동과 세상 세력의 전복은 2:6-7에 제시된 것과 동일하다.

이 구절은 주전 521년 다리오 왕이 통치하기 시작했을 때, 바사제국을 멸망시키려고 한 민족들과 속국들(바사, 바벨론, 메대, 아르메니아 등)의 반란과 전복이 있었던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예언적인 것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보좌"가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표현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는 하나님에 의해 용인되고 사단에 의해 수행되는 하나의 지고한 통치가 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통치로 대치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병거와 그 병거에 탄 자들, 말과 그 말을 탄 자들을 뒤엎으실 때에 열방의 세력은 멸망하게 될 것이다. 당시에 병거와 기병들은 동양 군대의 주된 전투력이었다. 이 멸망은 서로 동료들에게 칼을 들림으로 성취될 것이며, 이 일은 아마겟돈 전쟁 때에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23)."

 

  그러나 스룹바벨은 진노가 아니라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는다. 하나님은 그를 높이시고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 약속은 그가 유다의 통치자로서 지녔던 직무에 적용되었다. 왜냐하면 그 약속이 스룹바벨 자신의 생애와 관련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생전에는 여기에 제시된 것과 같은 반란들이 없었다. "이 날에"가 아니라 "그 날에"라고 묘사한 것을 주시하라! 메시야는 다윗과 스룹바벨의 혈통을 통해서 오실 것이다.

 

여기에서 다윗의 보좌가 불운한 세상 왕조들과 생생하게 대조되고 있다. 스룹바벨은 두 개의 메시야 족보에 나타나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스도는 진실로 다윗의 아들이며 스룹바벨의 아들이었다. 유대인 주석가들도 이 구절을 메시야에 관한 것으로 보았다. 종이라는 칭호는 메시야에 관한 것으로 잘 알려진 칭호였다.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택하셨기 때문에, 그를 인(도장)으로 삼겠다고 약속하신다. 인은 영광과 권위의 표징이며, 보살핌과 즐거움의 대상이다.

인은 서신이나 문서에 서명 날인하는 데 사용되었으므로 그 것을 소유한 사람을 대표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인의 소유자가 인을 두고 다니는 것은 거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인은 한 사람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소유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하고 있는 중요한 상징들이다.

                                   - 학개서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