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153과)1. |
학개(2): 다가올 영광 (2장) |
2-1. 하나님의 격려(2:1-5)
"칠월 곧 그 달 2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1),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라(2).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3)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4).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찌어다(5)."
학개의 두 번째 메시지는 7월 21일에 선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레 23:39-44)을 보면, 이 날은 수확의 마지막 절기인 장막절 제 7일임을 알 수 있다. 성전 재건을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성전과 솔로몬의 성전을 비교하고 있었다. 백성들에게는 선지자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권면에 응답하여 성전 건축을 시작한 후, 그들이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한 희망과 격려가 필요했다. 학개 1장에서는 이 민족의 냉담과 무관심에 대하여 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예언이 필요했다. 이제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들의 손과 결심을 굳게 할 격려와 위로의 말이 필요했다.
다시 한 번 이 민족의 세속지도자와 종교지도자, 그리고 바벨론에서 돌아온 남은 자들에게 메시지가 주어진다. 하나님께서 친히 솔로몬의 성전과 지금 건축 중에 있는 성전을 비교하신다. 하나님은 그들 중에 누가 첫 성전의 영광을 기억하느냐고 묻고, 그 성전과 비교할 때에 이 성전이 보잘 것 없어 보이지 않느냐?고 물으신다. (에스라 3:8-13)은 하나님의 이 질문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기록하고 있다. 에스라서에는 두 번째 성전을 건축할 때에 그 기초를 놓는 일에 제사장들이 함께 하여 찬양의 시편으로 노래하고, 나팔을 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젊은 세대는 기쁨과 환희의 소리를 외친 반면, 첫 성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던 노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2;3)에 기록된 선지자의 말은 특히 후자의 무리를 향한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의 이전 영광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솔로몬이 지은 것이든, 스룹바벨에 의해 지은 것이든, 후일 헤롯이 지은 것이든, 시온산 위에 지어진 하나님의 집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백성들의 재산이 한정되어 있었고, 법궤와 같은 보물이 없었기 때문에, 스룹바벨의 성전은 사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 때문에 실망하여 작업을 멈추는 일이 있어야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굳세게 하라!"는 말이 스룹바벨, 여호수아,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세 번에 걸쳐 주어졌다. 두 성전의 차이저을 생생하게 비교하신 하나님은, 또한 건축의 속개를 위한 영적 자극을 주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2:3)의 비교는 그들을 낙심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하나님의 평가는 우리의 평가와는 크게 다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시리라는 거듭된 확신을 가지고 그 일을 게속하라는 요구를 받는다(1:13). 또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인도해 내실 때에 그들과 계약을 맺은(문자 그대로는 "자른", 계약을 비준하기 위해서 희생 제물을 자르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말씀을 지키셨다. 여기에서 시내산에서의 계약이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은 개입하실 때마다 약속을 지키시므로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시리라고 믿을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영은 그 순간에도 여전히 그들과 함께 거하고 계셨다. 그들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일하고 계시는데, 누가 능히 그들을 대적하겠는가?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6),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7).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8).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9)."
이어서 나오는 2장의 4절(2:6-9)은 메시야에 대한 언급이다. 이 구절에는 (슥 9:9-10, 사 61:1-3, 단 9:24-27)과 같이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이 함께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은 머지 않아 하늘과 땅과 바다와 땅의 모든 나라들을 진동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일은 자연계에서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과시일 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건에 포함된 여러 가지 의미 중에서 지극히 일부분만을 본 것이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진술은 (2:4-5)에 언급된 하나님의 약속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유대인들은 열방의 하나님께서 메시야 왕국 건설을 준비하기 위해서 능력을 베풀어서 세상 나라들을 전복시킬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확신을 통해서 성전 재건 작업을 계속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구절은 바사와 헬라 제국 시대에 있었던 반란들을 의미한다고 생각되어 왔다. 물론 이 나라들이 통치할 때에 그러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통치가 흔들리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게 될 긴 과정의 시초에 지나지 않는다. (2:7)에 나오는 "많국의 열방"(영어 흠정역), 또는 "만국의 보배"(영어 표준역)로 번역된 말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제시되어 왔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기도 한다. "이방인들이 자기들이 기뻐하는 것들을 가지고 올 것이다." 또는 "만국 중에서 가장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이러한 번역들의 의미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성전의 외관을 장식하는 데 부족한 것은 만국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가져올 많은 값진 예물로 충분히 채워질 것이다. 그들은 참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기꺼이 이러한 일을 행할 것이다. 이 말은 새 언약 중에서 "장차 일어날 좋은 일들"에 관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다수의 초기 기독교 해석자들도 이 구절을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언급이라고 간주해 왔다. 그리고 유대교의 전승에서도 이것을 메시야와 연관시키고 있다. 우리는 교회에 얽매이지 말고, 만국의 열방은 그들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구속자에게 대한 기다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종종 구상 명사가 추상 명사로 대치된다. 그러므로 이 말도 메시야를 의미할 수 있다. 첫 성전은 영광의 구름으로 충만했었다. 재건되는 이 성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나라들이 진동될 것이라고(회개가 아님) 약속하고 계신다. 이 진동은 주님이 초림의 준비로 시작되어 재림 때에 완성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자신의 집을 말로 할 수 없는 영광으로 채우실 것이다. 학개는 (2:8)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금 짓고 있는 성전에 보석들(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에는 값으로 환산하면 1000만불 이상 되는 금이 덮여 있었다)이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초림과 재림의 영광을 통해서 처음에는 감추어져 있다가, 후에는 드러내어 그 성전을 더 아름답게 만드실 것이다.
당시의 남은 자들은 가난했기 때문에, 재건된 성전을 장식하고 꾸밀 재물이 없었다. 그러나 은과 금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이 집의 나중 영광은 이전 영광을 능가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곳에 평화를 내려 주실 것이다. "나중 영광"에 대해서는 (2:3)의 "이전 영광"이라는 진술과의 대조를 보라!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은 다른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성전에 임재하시므로 그 영광이 솔로몬의 성전의 영광을 능가하게 될 것이다. 나중 영광이 (겔 40-48장)에 묘사된 성전의 천년 영광을 의미한다는 견해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이 여러 단계를 거친 성전들간의 연속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 지를 살펴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을 배제할 수 없다. 헤롯이 스룹바벨의 성전을 재건할 때에, 그 기초까지 완전히 파괴했지만, 그의 성전은 여전히 두 번째 성전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에 언급된 평강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오늘날의 신자들에게도 내려주시는 영적 평화일 뿐 아니라, 평강의 왕으로서 가져 오실 궁극적인 외적 평화이기도 하다. 이로써 우리는 (2:3)의 낙담한 상황에 대한 충분한 대답을 얻었다. 하나님은 미래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남겨두셨다. 그것은 신앙의 눈으로만 분별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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