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Joyfule 2024. 5. 5. 01:10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수학을 하다보면 점점 더 어려운 문제와 부딪칩니다.

그래서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앙도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이 가면 깔대기와 같이 좁아집니다.

초보일 때는 어느 찬송가 가사처럼 구주만 생각만 해도 그렇게 좋았는데

가다보면 과연 내가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들만큼 정체감이 흔들립니다.

모세의 노래도 출15에서는 홍해를 건넌 사건에 대한 감격이고

신명기의 찬양(신32장)은 장차 이루어질 일에 대한 노래들입니다.

40년 광야의 생활을 통해 그만큼 성숙해지고 충만해 진 결과입니다.

신앙이 성숙해 지면 밋밋한 상태에서 믿음의 스위치를 켜면 공장의 기계들이

스위치 온하면 다 돌아가는 것과 같이 온 몸이 꿈틀거리며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진리의 지식을 따라 믿음으로 주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면

온 몸에 주의 영과 생명이 역사하여 살아 있는 자신으로 발견되어

그 기막히고 놀라운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다가 그 사랑을 표현할 말이 없으면 드디어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Q. 이스라엘의 구원의 스위치를 끈 결과는 무엇인가요?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롬11:30)

 

A.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순종하여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여

죄 사함과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기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적이며 천지개벽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율법과 성전이 있는 유대인의 구원이 일어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11:31)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얻고 있음은 그들이 순종하지 않는 기간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그들도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하나님의 말씀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믿어지고 영생을 얻게 되는

일은 순전히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해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로 부를 수 있음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Q. 하나님이 만인을 불순종에 가두시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라”(롬11:32)

 

A. 율법과 성전을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였다면 이방인인 우리는 영원히 곁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불순종의 자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공평한 게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인데 이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답니다(롬3:21-22)

여기서 만인 구원설이 등장하지만 그러나 누구든지 이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Q.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A. 율법과 성전을 이스라엘에게 줘서 불순종의 모델을 삼아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음을 만천하에 알리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십자가에 죽이시고 다시 살려 그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 의를 베푸시는

그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 곧 부요하심은 도무지 측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주의 모사가 되었느냐”(롬11:34)

왜냐하면 아무도 주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상천하지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롬11:35)

누가 주께 먼저 제안하거나 의견을 제시를 한 다음에 갚으심을 받겠느냐?

곧 인간의 어떤 물음이나 대안에 대답하실 분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 하시는 분입니다.

아무도 끼어들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기 때문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그 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와 같은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

링컨의 연설을 여기서 땄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창조주이시며 또한 구주이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의식을 늘 일깨워야 합니다.

지금 중동과 이스라엘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2,000년 만에 망한 나라를 다시 세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존재나 나라는 반드시 성경과 그 역사를 같이 합니다.

지금 그들이 성전을 세우려고 하는 노력과 또 여러 종교들이 예루살렘에다

그들의 본부를 두려고 하는 일 등이 다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면에는 세상은 모르게 진리의 영으로

도적 같이 오신 주님께서 지금 이방인들의 구원을 이룩하고 계십니다.

과연 우리는 현재 겨자씨와 누룩과 같이 임하신 주님과 장차 구름타고 오실

주님을 구분하여 정확하게 주님이 임재 내주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바로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생명 곧 하나님의 씨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증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요1:12)

 

말씀은 반드시 사랑과 합쳐져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빛과 생명으로 오신 말씀은 사랑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소망이 되고 그 소망은 사랑으로 완결이 됩니다.

또 성령과 진리가 합일 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 레에마의 말씀이 됩니다.

문제는 기록된 말씀(written Word)만 주목하느라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 가운데서 살리는 영으로 역사하시는 살아 있는 말씀(living Word)를 모르니

주의 대속의 은총을 따르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하는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다 율법의 올무에 걸려 긴긴 광야를 유리하며 방황을 하는 꼴입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의 복음, 성령 받아 방언하자 등의 초보의 수준으로는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생명의 영으로 역사하시는 체험을 하기는 멀고멉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접착제로 붙인 것 같은 연합이며 하나가 되어 영원합니다.

아무도 그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습니다(롬8:39)

중요한 것은 과연 롬1장부터 8장까지의 개인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져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에서 해방이 되어 영의 생각으로 의식화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비밀을 아느냐 하는 겁니다.

롬12장 이후의 거룩한 산제사 곧 영적 예배의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과 우리의 구원의 관계를 반복해서 다루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