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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옮긴이 서문

Joyfule 2008. 11. 17. 01:47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옮긴이 서문  
    하퍼 리 지음 -  앵무새 죽이기 
    박경민 옮김
    ★ 앵무새는 기쁨과 양심의 상징
    옮긴이 서문을 쓰면서 내가 마치 저자이기나 한 것처럼 설렘과 책임감이 앞서는 것은 
    이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기에 번역을 시작했고 
    그래서 문장 한 줄, 단어 하나하나에도 많은 시간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있다는 나의 말에 
    외국인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좋은 책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아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자 하는 나의 의지를 더욱 굳혀주었던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 곳이 시드니의 어느 단아한 책방에서였듯이 
    1960년대에 발표된 이 책은 지금도 영어권 어느 나라 책방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책이 문학수업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또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 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도 두 차례에 걸쳐 소개되었다.
    고전으로 통하여 비영어권의 많은 나라에서도 출간이 된 이 좋은 책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출간이 늦어진 이유 중 하나는 
    지은이 하퍼 리 특유의 재치있는 문장과 유머 등을 언어의 구성이 완전히 다른 
    우리말로 옮기는 것에 따른 어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앵무새 죽이기)는 To Kill a Mockingbird란 원제를 직역한 것으로 
    머킹버드mockingbird는 미국에서만 사는 앵무새과에 속하는 새로서 
    인간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고 노래만을 불러주는 새라고 한다.
    지은이 하퍼 리는 유일한 출간 작품인 이 책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녀를 잠시 소개해보고자 한다.
    하퍼 리는 1926년 앨라배마 먼로빌에서 변호사인 아버지 프란시스핀치 리와 
    어머니 아마사 콜맨 리 사이에서 태어나, 그 소도시에서 자라고 교육받았다. 
    이런 배경은 자전적 소설이 아니라는 작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그녀의 어린시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리라는 혐의를 짙게 하고 있다. 
    그녀는 먼로빌에서 공립학교를 마치고 
    헌팅턴 대학에서 이 년, 앨라배마 대학에서 사 년간을 수학했다. 
    1950년 대학을 떠나 단기법률과정을 밟고, 그리고 뉴욕에서 집필경력을 쌓았다.
    이 작품의 모태는 한 편의 단편 원고였다. 
    이 원고를 본 문학출판 전문가가 장편소설로 늘리면 어떻겠느냐고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이런 격려와 친구들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리는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싸구려 아파트에서 창작에만 전념하여 이 역작을 탄생시켰다.
    이 한편의 소설로 그녀는 1961년에 퓰리처 상, 
    같은 해 앨라배마 도서관협회상과 국제 기독교도 및 유태인 연맹조합상, 
    1962년에 그해 최고 베스트셀러상을 수상하였다.
    (앵무새 죽이기)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많은 암시와 긴장감을 주면서도 
    재치와 유머, 어린아이의 천진성으로 인해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잃지 않게 하는 감동적인 소설이다. 
    이 책은 진 루이스 핀치(스카웃)라는 여성이 
    일곱 살부터 열 살가지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카웃은 1930년대 미국 남부 앨라배마 중의 조그만 마을인 메이컴을 배경으로, 
    변호사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네 살 위의 오빠 젬과 함께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스카웃과 젬은 이 소설에서의 삼 년 기간 동안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조금씩 이해를 넓혀간다.
    그들을 성숙시킨 사건의 열쇠는 검둥이라는 이유만으로 
    강간범으로 몰린 흑인 톰 로빈슨을 그들의 아버지가 변호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로빈슨의 결백을 명백하게 증명했는데도 배심원들은 결국 유죄라고 결정한다. 
    뿌리깊은 인종적 편견을 지켜본 젬은 눈물을 흘리며 인종 편견 타파를 맹세한다.
    이 소설에서의 또하나의 재미는 속세와 단절하고 사는 이웃에 대한 미스터리에 있다. 
    그 미스터리의 주인공 부 래들리는, 
    그 아버지의 양보 없는 종교성과 그 집안 자존심의 희생자로서, 
    점차적으로 그 시대 사회구조적 편견의 희생양이 되어 어른을 무서워하는 어린아이 성향으로 변해간다. 
    부에 대한 호기심을 날로 키워가던 아이들은 부야말로 진정으로 진실된 친구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톰 로빈슨과 부 래들리라는 소외된 이웃은 아이들에게 진실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즉 앵무새 는 두 이웃의 기쁨과 양심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애티커스, 
    낙천적인 이웃 머디 아줌마, 개구쟁이 친구 딜, 젬과 스카웃의 또다른 식구인 칼퍼니아,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는 커닝햄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카웃과 젬 ,,, 
    이들은 어느 나라의 성인을 막론하고 추억을 더듬는 행복감과 
    동시에 교육적인 만족을 주는 우리의 이웃이 되리라 믿는다.
    끝으로 심오한 철학이 아닌 그저 어린시절의 삶의 일상을 통해 
    이토록 많은 재미와 교훈을 줄 수 있는 하퍼 리 여사께 존경을 보내며, 
    이 책의 어려운 번역 작업을 도와주신 미국인 교수 로버트 해롤드Robert Harrold와 
    이 책에 빛을 주신 도서출판 한겨레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992년 가을 박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