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메이컴의 수수께끼 2

Joyfule 2008. 11. 19. 09:42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메이컴의 수수께끼 2.  
    메이컴에 돌아온 아버지는 그후 다섯 해가 바뀌는 동안 
    줄곧 근검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엇보다도 잭 삼촌의 학비를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보다 열 살 아래인 잭 삼촌, 존 헤일 핀치는 
    목화값이 폭락하던 시기에 의학공부를 시작했으나 
    그때 마침 아버지는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메이컴을 좋아했다. 
    메이컴에서 태어나 메이컴에서 자란 아버지는 이곳 사람들에 관해 잘 알고 있었고, 
    메이컴 사람들 역시 아버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더구나 사이먼 핀치 가문이 번성하면서 
    메이컴의 여러 집안들은 우리 가문과 혈연 또는 지연으로 맺어져 있었다.
    메이컴은 오래된 마을이었다. 
    내가 처음 그것을 느꼈을 때 이미 이곳은 지쳐 나른해 있었다. 
    장마철에는 골목골목이 붉은 진창으로 변하고 보도블록 사이로 잡초들이 웃자라 있곤 했다. 
    법원 건물은 광장 앞에 축 늘어져 있었다. 어쨌든 지금보다 훨씬 더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꺼먼 개들은 무더운 여름을 견뎌야 했고, 
    후버 말 대여소에는 바짝 마른 노새가 
    무성한 떡갈나무 그늘 아래서 땀투성이가 된 채 매여 있었다. 
    노새는 달려드는 파리를 쫓느라 꼬리만을 휘두를 뿐이었다.
    남자들의 셔츠칼라는 아침 아홉 시쯤만 되어도 후줄근해지고, 
    숙녀들도 아침 샤워 후 세시의 낮잠시간이 지나고 
    땅거미가 질 무렵엔 땀과 화장분으로 얼룩지곤 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른한 걸음걸이로 광장을 가로질러 상점에 들어갔다가는 다시 나와 느릿느릿 흩어져 갔다.
    하루는 스물네 시간이었지만, 그곳에선 왠지 길게 느껴졌다. 
    서둘러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곳도, 사야 할 물건도, 돈도 없었고, 
    메이컴 주변에는 마땅한 구경거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때가 매우 낭만적이었다고 회상하게 하는 시절이었다. 
    그 무렵 메이컴은 걱정거리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되곤 했다.
    나는 읍내 주택가에서 살았다. 
    아버지 애티커스, 젬 오빠, 나 그리고 요리사인 칼퍼니아와 함께였다. 
    오빠와 나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와 놀아주었고 책을 읽어주었으며 예의를 갖추고 우리를 공평하게 대해주었다.
    칼 아줌마는 우리와는 좀 달랐다. 
    그녀는 온몸의 뼈마디가 모두 튀어나온 듯 마른 몸집이었고 근시에다 사팔이었다. 
    손마디는 막대기처럼 뻣뻣했고 살결이 무척 거칠었다.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부엌에서 나가라고 다그쳤다. 
    젬 오빠의 나이가 나보다 더 많다는 걸 알면서도 왜 젬처럼 행동하지 못하느냐고 야단치곤 했다. 
    그리고 아직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 집으로 불러들였다. 
    칼 아줌마와의 다툼은 서사시적이며 늘 일방적이었다. 
    대개 아버지가 칼퍼니아 아줌마의 주장을 거들었으므로 언제나 그녀의 승리로 끝났다.
    아줌마는 오빠가 태어난 이후 줄곧 우리와 함께 지냈고, 
    그래서 나는 언제나 독재 군주적인 그녀의 존재를 느끼며 살았다.
    내 나이 세 살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머니의 부재에 대해 새삼스럽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몽고메리 출신의 그레이엄 집안 사람이었고, 
    아버지가 처음 주 입법부에 당선되었을 때 만났다고 했다. 
    아버진 그 무렵 이미 중년의 나이였고 어머닌 열다섯 살이나 연하였다. 
    젬 오빠가 결혼 첫해에 태어났고, 오빠와 네 살 터울로 내가 태어났으나, 
    그로부터 이 년 후 어머닌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사람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외가의 내력이라고들 했다. 
    나는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았지만 젬 오빠는 달랐다. 
    오빠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선명했고 놀이에 열중하다가도 
    문득 긴 한숨을 쉬곤 갑자기 차고 뒤로 달려가 혼자 놀곤 했다. 
    그럴 때면 난 오빠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는 걸 알았다.
    내가 일곱 살, 젬 오빠가 열한 살 되던 해 여름이었다. 
    우리들이 집밖에서 놀 때는 칼 아줌마가 부르면 들리는 거리에 있어야 했다. 
    집에서 북쪽으로 두 번째인 헨리 라파예트 두보스 할머니 집과 남쪽으로 세 번째인 
    래들리 집까지가 우리의 행동반경이었는데, 
    한 번도 그보다 먼 곳까지 나가 놀거나 한 적은 없었다.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래들리 집은 납득할 수 없는 집안으로 통했다. 
    오랜 세월 우리의 유년기에 영향을 준 이웃사람들의 소문에서나 얼핏 들을 있었다. 
    두보스 할머니의 소름 끼치는 모습 역시 그와 마찬가지였다.
     딜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그해 여름이었다.
    이른 아침 뒷마당에서 그날의 첫 놀이를 시작하려는데 
    라이첼 하버포드 아줌마의 케일 텃밭에서 이상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아줌마의 랫테리어 개려니 하며 철책으로 다가갔다. 
    그 너머에는 키가 케일만한 아이가 우리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