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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9. 아버지의 마음 2

Joyfule 2008. 12. 26. 01:19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9. 아버지의 마음 2    
    다음날 나는 세실 제이콥과 학교 마당에서 마주쳤다.
    너 그 말 취소해! 
    네가 먼저 싸움을 걸었잖아! 
    우리집에서 그러는데 너희 아빠는 창피를 알아야 되구 
    그 검둥이 녀석은 저 물탱크에 달아매야 된댔어!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가 그를 때리려 손을 쳐든 순간 아버지의 충고가 떠올랐다. 
    난 주먹을 내리곤 그냥 걸어와버렸다.
    스카웃은 겁쟁이래요! 
    그 소리가 귓전에 울려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싸움을 포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세실과 싸운다면 난 아버지를 실망시킬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오빠와 내게 부탁을 하신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난 겁쟁이라는 소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은 나를 무척이나 고상한 기분에 빠지게 했고, 그 기분은 삼주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리곤 성탄절이 오고 재난의 서곡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빠와 나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바라는 것은 크리스마스 트리와 잭 핀치 삼촌이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때면 언제나 잭 삼촌을 마중하러 나갔고, 
    그 이후 일주일을 함께 보내곤 했다.
    그리고 원치 않는 것은 알렉산드라 고모와 프란시스의 양보를 모르는 굳은 얼굴이었다. 
    지미 고모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딱 한 번 그 담장에서 어서 내려와! 라는 말을 제외하곤 한 번도 내게 말을 시키지 않았다. 
    이 세상 어느 것도 그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오래 전 두 분의 사이가 좋을 때 아들 헨리를 낳았고 
    헨리는 성인이 되자마자 결혼해 프란시스를 낳았다. 
    헨리 부부는 크리스마스 때면 프란시스를 부모님께 맡기고 홀가분한 생활을 즐겼다.
    아무리 애원해도 아버지는 크리스마스를 우리집에서 보내지 않았다. 
    우린 언제나 핀치 가문의 영토로 가야 했다. 
    고모의 훌륭한 요리솜씨만이 이런 성스런 축제일을 
    프란시스 핸콕과 억지로 보내야 하는 것에 약간의 위안이 될 뿐이었다. 
    그 아이는 나보다 한 살 위였는데, 
    내 기본방침은 될 수 있는 한 그 아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내가 싫어하는 일만 골라했고 
    그 애는 그 애대로 나의 솔직한 표현을 싫어했다.
    알렉산드라 고모는 아버지의 여동생이었지만 난 그것을 믿지 않았다. 
    오빠가 혈연관계나 바뀌어진 아이에 관한 얘기를 할 때면 
    난 그것이 바로 고모의 일이라고 단정지었고 
    할아버지가 핀치 대신 크러포드 집 아이로 바꿨을 거라고 믿어버렸던 것이다. 
    고모는 꼭 에베레스트 산 같았다. 
    내가 그때까지 품어왔던 산에 대한 신비한 개념은 
    법률가나 재판장 같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선입견과 같았다.
    어린시절 고모에 대해 내가 가진 인상은 차갑게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런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잭 삼촌이 열차에서 뛰어내린 후, 
    우리는 역무원이 기다란 포장꾸러미 두 개를 넘겨주길 기다려야 했다. 
    오빠와 나는 언제나 잭 삼촌이 아버지 뺨에 뽀뽀하는 걸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남자끼리 뽀뽀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오빠랑 악수를 하고 나를 한 번 휙 올려주었다. 
    하지만 별로 높이 들지는 못했다. 삼촌은 아버지보다 한 뼘 정도 작았다. 
    그는 고모보다 아래인 집안의 막내였고, 
    고모와 닮았지만 좀더 표정이 풍부해서 결코 그 날카로운 코와 턱이 문제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무섭게 하는 않는 몇 안 되는 의사 중 한 사람이었다. 
    발의 가시를 빼는 것 같은 가벼운 처치를 할 때에도
     언제나 설명과 함께 아픔의 정도, 사용되는 의료기구에 관해서 일러주었다.
    어느 크리스마스였다. 
    비틀린 가시가 발에 단단히 박혀 나는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며 숨어 있었다. 
    그때에도 잭 삼촌은 나를 붙들었다 
    괴상한 목사 얘기, 즉 후카를 피워 정신적 위안을 받고 
    강론은 오 분도 안 돼 후닥 해치우고 교회에 가길 무척이나 싫어하는 
    그런 목사 이야기로 나를 웃게 하고는 엉겁결에 가시를 빼 핀셋으로 들어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곤 내가 웃는 동안 가시를 빼낸 그것이 바로 상대성 이론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포장 꾸러미는 뭐예요? 
    나는 역무원 아저씨가 넘겨준 길고 가는 꾸러미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가씨가 상관할 일이 아닌걸. 
    삼촌의 대답이었다.
    로즈 아일머는 잘 있나요? 
    오빠가 물었다. 로즈 아일머는 잭 삼촌의 고양이였다. 
    그 고양이는 매끈한 누런색 암컷으로 
    삼촌은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 사는 몇 안 되는 여자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고양이의 스냅사진을 몇 장 보여주었고 우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점점 살이 찌는 것 같아요, 삼촌. 
    내가 말했다.
    그렇지? 내가 병원에서 나오는 사람고기를 갖다 먹이기 때문이지. 
    어휴, 그건 정말 개 같은 얘기네요. 
    뭐라구 했지? 
    신경쓰지 마라, 잭. 그저 널 떠보려는 거니까. 
    칼이 그러는데 요즘 나쁜 욕을 자주 해댄다는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