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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9. 아버지의 마음 4

Joyfule 2008. 12. 28. 01:17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  9. 아버지의 마음 4  
    프란시스와 이야기할 때면 난 언제나 대서양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앤 내가 이제껏 본 아이 중에서 가장 싫증나는 아이였다. 
    그애가 모빌에 살 때에도 나에겐 학교에 대해 한 마디도 해주지 않았으면서도 
    알렉산드라 고모에게는 나에 관해 별걸 다 일러바쳤었다. 
    그러면 고모는 아버지께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짐을 덜어내곤 했고, 
    아버진 잊어버리거나,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나를 꾸짖었던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가 그토록 날카롭게 말씀하시는 걸 처음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알렉산드라, 난 애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뽀빠이 바지차림으로 마구 돌아다니는 것과 관련이 있는 듯했다.
    고모는 나의 옷차림에 대해선 거의 광적이다시피 했다. 
    치마를 입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아무리 호소해도 
    반바지는 숙녀되기를 포기하는 것이고, 
    밤낮 그런 바지만 입으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될 거라고 못박았다. 
    그리고 내가 태어났을 때 고모가 준 진주박힌 목걸이를 하고 
    소꿉장난이나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품행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난 아버지의 고독한 생애에 한줄기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바지차림으로도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고모는 그렇게 되려면 태양 빛과 같은 행동을 해야만 할 것이라고 하며 
    나는 잘 태어났지만 해가 갈수록 못되게 자란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 식으로 내 감정을 아프게 한다면 나는 고모를 영원히 싫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아버지와 의논했다. 
    아버지는 우리집엔 이미 충분한 태양광선이 있으니까 네 할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또 내가 그런 식으로 자라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크리스마스 만찬 때면 나는 식당의 간이 테이블 앞에 앉아야 했다. 
    고모는 큰 테이블에서 어른과 함께 자리잡은 오빠와 
    프란시스로부터 계속해서 나를 떨어뜨려 놓았다. 
    그럴 때면 나는 잠깐 공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그릇을 내동댕이친다든가, 
    다른 사람과 함께 앉도록 해준다면 예의바르게 행동할 거라고 간청해볼까 등등. 
    난 우리집 식탁에서도 아무런 말썽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결국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손님이니까 고모가 정해주는 곳에 앉아야 하며 
    알렉산드라 고모는 딸이 없어 여자아이를 이해 못하는 것뿐이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고모의 음식솜씨는 모든 것을 덮어주기에 충분했다. 
    세 가지 종류의 고기, 여름야채, 복숭아 피클, 
    두 가지 종류의 케이크와 맛좋고 향기로운 음식들이 
    지나치지 않은 품격으로 크리스마스의 만찬을 장식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저녁 식사 후에 거실을 차지하고 한가롭게 둘러앉아 있었다. 
    오빠는 바닥에 엎드렸고, 나는 뒷마당으로 나왔다.
    코트를 입고 나가야지. 
    아버지가 졸린 목소리로 일렀지만 난 듣지 않았다. 
    뒷계단에서 프란시스가 내 옆에 앉았다.
    음식은 최고였어, 프란시스. 
    할머닌 정말 요리를 잘하셔. 나에게도 요리법을 가르쳐주실 거야. 
    사내아이가 무슨 요리를 하니? 
    나는 오빠가 앞치마를 두른 것을 상상하며 킬킬거렸다.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남자들도 모두 요리를 배우고, 
    아내를 소중히 여겨서 아플 때는 시중도 들어야 한다고 하셨어. 
    난 딜이 내 시중드는 거 싫어, 내가 딜의 시중을 드는 편이 좋지. 
    딜? 
    응, 아직 말할 순 없지만 어른이 되면 우린 결혼할 거야. 
    지난 여름 나한테 청혼했거든. 
    프란시스가 야유를 퍼부었다.
    그 아이가 어때서? 걘 아무 문제도 없어.
    너 그럼, 할머니가 말씀하신 라이첼 아줌마 집에 오는 그 쬐그만 녀석 말하는 거냐? 
    응 바로 걔야. 
    난 그 자식에 대해 다 알고 있지.
    프란시스가 거들먹거렸다.
    뭘 안다는 거야?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걘 집이 없다더라.
    아니야, 메리디안에 집 있어. 
    집이 없어서 이집저집 친척집을 떠돌아다니며 사는 거래. 
    라이첼 아줌마가 여름마다 맡는 거구. 
    그렇지 않아, 프란시스!
    프란시스가 비웃듯 웃음을 날렸다.
    넌 가끔 지독히 멍청하단 말이야, 
    진 루이스. 그래, 역시 넌 모르는 게 좋겠지. 
    그게 무슨 소리니? 
    할머니 말씀대로 큰할아버지가 널 
    길 잃은 개처럼 키운다고 해도 그게 네 잘못은 아닐 테니까. 
    거기다 검둥이 변호사라 해도 어쩔 수 없을테고. 
    하지만 내가 분명히 말하겠는데, 
    그건 나머지 식구들에게 창피를 주는 거란 말이야.
    프란시스, 너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니? 
    말한 대로야, 할머니가 그러셨는데 
    너를 멋대로 놔두는 것도 나쁜 데다가 검둥이 옹호자가 되셨으니 
    우린 이제 다신 메이컴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게 됐다고 하셨어. 
    너희 아빤 집안을 망쳐놓고 있어. 바로 지금 그런 일을 하고 계신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