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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지막잎새(The Last Leaf:1905)

Joyfule 2009. 6. 20. 00:59

4. 마지막잎새(The Last Leaf:1905)

그들이 2층으로 올라왔을 때 존시는 자고 있었다. 수우는 커튼을 밑으로 잡아 내리고 베어먼에게 눈짓을 하여 다른 방으로 옮겼다. 거기서 두 사람은 두려운 마음으로 창밖의 담쟁이 덩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깐 동안 말이 없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발 섞인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베어먼은 낡은 곤색 셔츠를 입은 시골 광부가 되어 뒤집어 놓은 남비를 바위 삼아 걸터 앉았다. 다음 날 아침 수우가 한 시간쯤 자고 눈을 떠 보니 존시가 기운 없는 커다란 눈으로 늘어진 녹색 커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커튼을 좀 올려 줘. 밖을 보고 싶어" 그녀는 가느다란 소리로 부탁했다. 그러나 보라! 밤새도록 비가 내리치고 사나운 바람이 불었는데 벽돌담 벽에는 담쟁이 잎새 하나가 그대로 붙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실로 담쟁이의 마지막 잎새였다. 줄기 가까이는 짙은 녹색을 띠었으나 잎새 가장자리는 약간 누런 빛을 띤 채 당당하게 지상 20피트 높이의 가지에 매달려 있다. "마지막 잎새야" 존시가 말하였다. "난 저 잎새가 간밤에 틀림없이 떨어졌으리라 생각했는데 바람 소리가 얼마나 요란했던지 아마 오늘은 떨어지겠지 그러면 나도 이 세상을 떠날 거야" "아니 그게 무슨 소리니?" 수우는 그의 창백한 얼굴을 존시에게로 돌리면서 "네 자신을 생각지 않겠다면 나를 좀 생각해 주렴 난 어떻게 하란 말이니?" 그러나 존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것은 장차 신비한 곳으로 먼 길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의 영혼일 죽음에 대한 환상이 점점 더 그녀를 사로잡아 그녀로부터 친구와 현실을 멀리 떼어 놓은 것 같았다. 하루가 지났다. 저녁이 되었는데도 그들은 그 외로운 담쟁이 잎새가 담벽 위에 꼭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더니 밤이 되자 북풍이 다시 휘몰아치고 세찬 비가 창문을 들이쳐 나직한 네덜란드식 처마를 두드렸다. 날이 밝자 존시는 커튼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담쟁이 잎새는 아직 그대로 있었다. 존시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그녀는 가스 난로에서 닭고기 수프를 젓고 있는 수우를 불렀다. "내가 잘못했어, 수우" 존시는 말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지를 가르쳐 주기 위하여 누군가가 저 마지막 잎새를 그대로 있게 한 거야. 죽기를 원하는 건 죄악이야. 수프를 좀 갖다 줘. 그리고 내 옆에 베개를 많이 쌓아 줘. 이렇게 앉아서 네가 요리하는 걸 구경하고 싶어" 한 시간 뒤에 그녀는 다시 말하였다. "수우, 난 나폴리 만을 꼭 한 번 그리고 싶어" 오후에 의사가 왔다. 그는 갈 때 수우를 복도로 불러 내었다. "회복할 가능성은 이제 80퍼센트입니다" 의사는 수우의 수척한 손을 잡고 말하였다. "간호만 잘하면 문제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또 다른 환자를 보아야 하겠군. 무슨 베어먼인가 하는 사람인데 아마 화가인 모양입니다. 역시 폐렴이요. 그는쇠약한 노인인데다가 급성입니다. 그는 살 희망이 없어요. 안정이나 할 수 있도록 입원을 시켜야겠습니다" 다음 날 의사는 수우에게 말했다. "아가씨는 고비를 넘겼습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이젠 영양과 간호만 잘하면 됩니다" 그 날 오후 수우는 존시가 누워 있는 대로 침대로 다가갔다. 존시는 짙은 푸른색 털실로 별 쓸모도 없이 보이는 어깨걸이를 느긋한 자세로 뜨고 있었다. "글쎄 내 말 좀 들어 봐" 수우는 존시를 부둥켜안으며 말했다. "베어먼 씨가 오늘 병원에서 돌아가셨어. 병이 난 첫 날 아침에 그 노인이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을 문지기가 발견했대. 그의 신발과 옷이 온통 젖어서 몸이 얼음장같이 차더래. 그렇게 춥고 무서운 밤에 그가 어디에 갔었는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던 거야. 그런데 아직 불이 켜진 램프와 늘 놓아 두던 장소에서 꺼낸 사다리 흩어진 붓 몇 자루와 함께 녹색과 노란 색 물감이 섞인 팔레트가 발견되었대. 잠깐 저 밖을 좀 내다 봐. 저 벽에 남은 마지막 잎새를 보란 말야. 바람이 그렇게 몹시 불었는데 저 잎새가 어떻게 흔들리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았는지 이상하지 않았니? 글쎄, 그게 베어먼 씨의 걸작품이었거든!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던 날 밤에 그 잎새를 그려 놓았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