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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여자의 일생(Une Vie)

Joyfule 2009. 6. 29. 01:31

    9.여자의 일생(Une Vie)

    폴은 시골에서 번들번들 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배를 타고 아브르로 도망쳐 버렸다. 경찰이 아무리 찾아보아도 다시는 폴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전 여자 역시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잔은 어느덧 백발이 되었다. '사랑하는 어머니 아무 걱정 말아 주십시오. 저는 지금 런던에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옹색해서 먹을 것조차 없는 날도 있습니다. 저와 같이 있는 여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유산에서 1만 5천 프랑만 미리 쓰게 해 주십시오. 얼마 후에 저도 성년이 되니까요...' 절망 속에서 허덕이고 있던 잔은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아들의 행동을 용서하고 돈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아들과 함께 있는 여자에 대한 증오는 악착스러우리 만큼 큰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다섯 달 동안 또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년에 달한 아들의 대리인이 느닷없이 나타나 아버지의 유산 상속을 청구했다. 12만 프랑을 받은 폴은 그 후 여섯 달 동안에 간단한 편지 네 통을 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에 날아든 절망적인 편지가 세 사람을 놀라게 했다. '어머님 저는 지금 막다른 데까지 왔습니다. 만일 어머니가 도와 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자살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폴의 편지는 또 8만 5천 프랑을 청구해 온 것이다. 토지를 저당해서 돈을 보내 주었더니 1년쯤 있다 "폴드라마르 주식회사"라는 기선 회사가 파산했다는 통지가 왔다. 결손은 23만 5천 프랑이었다. 남작은 저택과 두 농장을 저당에 넣고 최후의 수속을 하고 있는 동안 갑자기 졸도로 세상을 떠났다. 이어 겨울이 다간 어느 날 리종 이모가 기관지염으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잔은 이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아무것도 괴로워할 것 없이 자기도 죽어버리고 싶다고 빌면서 묘지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건장한 농촌 여자 하나가 잔을 번쩍 안아 들고 집으로 데려왔다. "당신은 누구지...?" 밤중에 눈을 뜬 잔은 아무리 생각해도 안면이 있는 그 얼굴을 쳐다보면서 물어 보았다. "가엾은 잔 부인! 저를 몰라보시는가요?" "앗, 로잘리!" 잔은 정신없이 로잘리를 얼싸안고 키스했다. 두 사람은 서로 끌어안은 채 언제까지나 흐느껴 울고 있었다. 로잘리도 이미 남편이 죽고 줄리앙의 아들은 장가를 들여서 훌륭한 일꾼이 되어 있었다. 로잘리는 집을 아들 내외에 넘기고 외로운 잔을 돌보아 주기 위해서 24년만에 레페플에 돌아온 것이다. 잔은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정리하고 오랫동안 정든 저택을 팔아서 조그마한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로잘리는 여러 가지로 잔을 위로하고 시중해 주었다. 사실 잔은 이제 아주 늙어 버렸고 슬픔에 지쳐 소생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왜 나는 남처럼 사랑을 받지 못했을까? 왜 나는 조용한 행복마저도 은혜받지 못했을까?" 잔은 자신의 불행한 일생을 돌이켜 생각하면서 힘없는 한숨을 내쉬는 날이 계속되었다 돈을 보내 주면서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귀여운 내 아들아 나는 네가 내 곁으로 돌아오도록 간청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늙고 병들고 일년 내내 하녀 하나밖에 없이 혼자 지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 좀 해다오. 나는 지금 큰 길가의 조그만 집에서 살고 있단다. 참 슬픈 일이다. 그러나 너만 있어 준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너밖에는 없으면서도 칠 년 동안이나 너를 못 만나 보고 있으니... 네 어미는 얼마나 불행했었는지 얼마나 내 마음을 네게 의지해 왔었는지 너는 도저히 모를 것이다. 너는 나의 생명이었다. 나의 꿈, 오직 내 하나의 희망, 내 하나의 사랑이었다. 그런데도 너는 나를 배반했고 또 나를 버리고 말았구나 아아! 돌아와다오. 나의 귀여운 폴아 돌아와서 네 어미에게 키스해다오. 절망의 팔을 내밀고 있는 네 늙은 어미의 곁으로 돌아와 다오. 잔' '그리운 어머님, 진작 편지를 드리지 않은 것은 파리에 소용없는 여행을 하시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 자신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찾아뵈어야만 했기 때문에 저는 현재 몹시 불행한 처지에 빠져서 대단히 고생하고 있습니다. 제 처는 사흘 전에 계집애를 낳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동전 한푼도 없습니다. 애는 문지기가 간신히 키우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어린애를 길러야 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죽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가 됩니다. 어머님이 맡아 주실 수는 없을까요? 정말이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유모에게 맡기자니 돈도 없으니 말입니다. 이 편지를 받으시는대로 곧 회신을 바랍니다. 어머님을 사랑하고 있는 아들 폴' 잔은 의자에 맥없이 앉아서 로잘리를 불렀다. "제가 아이를 맡지요. 부인 아무래도 이대로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결국 로잘리가 말문을 열었다. "그렇게 해 줘, 로잘리" "그리고 공증인한테 갑시다. 아드님 결혼 수속을 해야 해요. 만약에 그 여자가 죽는다면 어린애의 훗날을 생각해서라도..." 로잘리는 그 날 밤 곧 파리로 떠났다. 그리고 사흘만에 돌아왔다. "그래 어땠어?" 잔은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젯밤에 죽었어요. 결혼식은 올렸답니다. 아드님은 장례식을 마치고 오실 거에요. 이게 손녀입니다" 이불에 싸여 보이지 않는 갓난애를 내밀었다. 잔은 '폴'하고 중얼거릴 뿐 입을 다물었다. 잔은 허공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포근한 온기가 생명의 체온이 잔의 옷을 통해서 다리로 전해 오고 살 속까지 스며들어 왔다. 그것은 무릎 위에서 잠들고 있는 어린 것의 체온이었다. 그리고 무한한 감동이 잔의 온 몸에 파고들었다. 잔은 왈칵 아직 보지 못했던 어린 것의 얼굴을 덮은 헝겊을 벗겨 버렸다. 자식의 딸 그러자 이 연약한 것이 불안에 싸인 채 심한 광선을 받고 입을 움직거리면서 파란 눈을 떴을 때 잔은 품안에 들어올리고는 꼭 껴안고 빗발 같은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나 로잘리는 무뚝뚝하면서도 즐거운 낯으로 그것을 말렸다. "자, 자. 부인, 그만 좀 두세요, 그러시다가는 울려요" 로잘리는 아마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답하려 하는 듯이 이렇게 덧붙였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즐거운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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