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설교예화 3389

영혼이 낙원에 간다면 몸의 부활이 왜 필요합니까?

영혼이 낙원에 간다면 몸의 부활이 왜 필요합니까? 성경 말씀에 따르면 예수께서 다시 세상에 오셔서 세상의 종말이 이르면 우리 몸은 부활합니다. 우리는 그 때 신령한 새로운 몸을 덧입게 됩니다(고린도 전서 15:42∼49). 몸을 떠난 영혼이 낙원에 혹은 천국에서 지낸다면, 그리고 영혼이 우리 자아(自我)의 정체(正體)라면 왜 구태여 몸의 부활이 있어야 하 는지 의문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런 의문에 대하여 시원스럽게 답하지 않습니다. 단지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따라 우리 몸이 다시 부활할 것임을 분명히 말씀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말씀을 따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종교들이 영혼의 불멸을 말하나 부활을 말하는 종교는 오직 기독교입 니다. 죽음 저편의 세계는 아무도 경험하지..

십자가를 진 사람들

십자가를 진 사람들 주님께서 두 제자를 데리고 어떤 길로 들어서셨다. 거기서 주님은 각자에게 무게가 똑같은 십자가 하나씩을 건네주시며, 당신은 이 길이 끝나는 곳에 가 있을 테니 그곳까지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지시한 다음 자취를 감추셨다. 첫 번째 제자는 가볍게 십자가를 매고 가는데 반해, 두 번째 제자는 지독히 힘들어하면서 뒤쳐져 따라왔다. 십자가를 걸머진 지 하루만에 첫 번째 제자는 길 끝에 당도하여 십자가를 스승에게 넘겨드렸다. 주님은 첫 번째 제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아들아, 아주 잘 했다." 두 번째 제자는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길 끝에 도착했다. 도착한 제자는 십자가를 주님의 발 밑에 내동댕이치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한테는 다른 제자보다 훨..

네 십자가부터 먼저

네 십자가부터 먼저 사랑받는 자 마카리우스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속에서 주님이 더없이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이었다. 이를 본 마카리우스는 주님께로 달려가서 십자가를 대신 져 드리겠노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주님은 그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가실 따름이었다. 마카리우스는 또다시 주님께로 달려가 간청했다. "주님, 제발 저에게 십자가를 넘기십시오." 그러나 이번에도 주님은 그를 모른 체 하시며 십자가를 양어깨로 무척 힘들게 걸쳐매고 묵묵히 걷기만 하셨다. 마카리우스는 가슴이 아프고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끈기 있게 주님 곁을 따라붙으며 십자가를 넘겨 달라고 다시 한 번 애원했다. 그러자 이윽고 주님은 여전히 십자가를 양어깨에 둘러맨 채 발걸음을 멈추더니 마카리우..

텅 빈 십자가

텅 빈 십자가 지난주 어느날 기독교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분이 '십자가'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연약해 보이는 아가씨가 사람 키보다도 더 큰 십자가를 번쩍! 들어서 어깨에 매는데 이상하다 싶어 자세히 봤더니 속이 텅 빈 십자가 였습니다. 얇은 베니어판으로 조립한 다음 겉에 나무결무늬의 벽지를 발라 만든 모양만 '십자가'였습니다. 아마도 교회당 강단 뒤 휘장 가운데 거는 십자가인 모양입니다. 아하! 십자가! 사형틀. 어깨에 매면 장정이라도 휘청거릴 만큼 무겁게 짓누르는 십자가! 내가 달려 죽어야 할 내 십자가를 내가 지고 사형장으로 향하는 그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십자가는 예사로운 물건이 아닙니다. 언젠가 어느 시골교회에서 둥이 휜 소나무로 만든 진짜 십자가가 휘장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도 어떤 신자가 목사에게 찾아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으며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은 일인 것 같습니다." 불만 섞인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던 목사는 즉시 성경을 펴들고서 말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고 구원받을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래도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은 것입니까?" 이 말을 들은 불신자는 무안하여 얼굴을 붉히며 돌아갔다.

처절한 십자가

처절한 십자가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처형은 그 당시 로마뿐만 아니라 고대 아프리카, 애굽, 바사, 헬라 등에서 유행했던 형벌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은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하게 치욕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로마 시민들에게는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예나 반란자들, 극악한 강도들에게 이런 십자가형이 주어졌습니다. 보통 십자가에 달리면 약 3일 정도의 고통을 겪게 되는데, 탈진과 아픔 때문에 최대한의 고통을 느끼고 난 후에 사흘째에는 절명하게 됩니다. 고통과 탈진이 너무나 심할 경우에는 자비를 베풀어 주는 방법으로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창으로 찔러서 죽음을 재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형수의 시체는 연고자가 있을 경우에는 그들에게 주어서 무덤에 장사하게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나 아주 극악한 사형수의 경우..

죽으심의 대가

죽으심의 대가 본문: 요한복음 3장 16∼17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한국전쟁 피난 시절 부산은 발 디딜틈 없이 사람들로 바글거렸습니다. 그때 저는 범일동 매축지 근처에 살았는데 부산 항구에서 화차가 석탄을 잔뜩 싣고 범일동 매축지까지 와서 기관차를 바꿉니다. 그 시간이 10분내지 한 15분쯤 걸립니다. 그동안 피난민들은 개미떼같이 그 화차위에 올라가서 석탄을 끌어 내립니다. 그래서 그 석탄을 각각 그릇에 담고 혹은 보퉁이에 담아서 연료로 쓰기도 하고 팔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일용할 양..

십자가 고통의 의미

십자가 고통의 의미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농부의 집에 하숙을 하고 있었다. 그 농부는 예수를 믿지 않고 그 부인은 늘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 목사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침에 그 농부가 목사님을 부르더니 닭장엘 같이 가보자고 했다. 가보니까 그 닭장 둥우리에 암탉이 앉아 있는데 그 날개 밑에서 막 병아리들이 삐약 삐약 소리를 내면서 한 마리씩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농부가 그 암탉을 건드려 보라고 해서 툭 건드렸더니 그 암탉은 죽어 있었다. 농부가 말하기를 "저 머리에 상처를 보십시오. 족제비란 놈이 그 몸에서 피를 다 빨아 먹었는데도 그 놈이 새끼들을 잡아 먹을까봐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죽은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곳은 해골 모양의 바위 언덕이었다. 언덕 이름은 라틴어로는 갈보리라 하였고 히브리어로는 골고다라고 불렀다. 십자가는 악한 죄인을 처형시키는 사형틀이다. 사형수가 십자가를 지고 현장에 도착하면 옷을 벗기고 십자가 형틀에 두 손과 두 발을 고정시킨다. 그러면 손과 발이 찢어지면서 몸속의 피가 흘러나와 결국 죽게 된다. 어떤 죄수는 3일동안이나 고통을 당하다가 죽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지 6시간만에 운명하셨다. 채찍에 너무 많이 맞아 기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죄로 타락한 모든 사람의 죄값을 대신 치르셨다. 이것이 바로 대속의 은혜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

착각의 십자가와 복음의 십자가

착각의 십자가와 복음의 십자가 어떤 사람이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다 십자가로 생각하고 참고 살아야지요.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는데, 이런 병도 십자가로 생각하고 견뎌야죠.”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병의 원인입니다. 이 사람은 평소 너무 많이 먹고 불규칙한 식사 생활로 인해 위장병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렇듯 자신이 몸 관리를 잘 못하고 음식에 지나친 탐욕을 부리다가 얻은 병을 십자가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십자가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가난이 한때 방탕하고 사치해서 생긴 것인데, 그렇게 해서 생긴 가난을 십자가로 간주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탄소 금식

탄소 금식 사순절은 근신과 절제의 기간입니다. 지상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40일은 모든 인류의 죄악을 감당하기 위한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제자들과 진솔한 대화, 회중을 향한 강력한 선포, 하나님 앞에서 행한 처절한 기도, 어린 양과 같은 온전한 순종 등이 모두 이 기간에 이뤄졌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언택트 시대가 열리면서 배달이 급증했고 일회용품 사용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덩달아 많은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쌓이고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지금 현세대를 보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영혼의 건강을 위한 금식은 물론 하나님이 만드신 환경을 되살리기 위한 탄소 금식을 하라고 말씀하시지 ..

가까운 세상 여행

가까운 세상 여행 과거 유럽의 귀족 사이에선 여행이 고상한 취미였습니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자제들은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세상을 배우러 타국에 갔습니다. 이들은 본국에 돌아가 새로운 학파를 만들기도 했고, 미술의 새로운 유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낯선 것을 만나 흡수하고, 자기 것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가 태동한 것입니다. 요즘 여행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것을 접하는 갈망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꼭 멀리, 물리적 공간을 이동해야 낯선 문화와 접촉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동일 문화권 내에서도 평소 방문하지 않던 낯선 곳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너무 가까워서 지나쳤던 동네 뒷산, 옆 동네 재래시장, 가까운 하천 산책로 등 말입니다. 대화를 잘 나..

기준이 되는 진리

기준이 되는 진리 미국에서 지낼 때,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내비게이션이 없었기에 지인은 자신의 집으로 오는 길을 전화로 설명해줬습니다. 그분의 설명은 간단했습니다. 어느 길을 말씀하시곤 그 길로 ‘죽’ 와서 막다른 길을 만나면 좌회전해서 ‘좍’ 오면 큰 노란색 쓰레기통이 보일 텐데 그 노란색 쓰레기통 앞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설명을 기억하고 무작정 그분의 설명대로 차를 몰고 갔지만, 커다란 노란색 쓰레기통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몇 번의 전화 통화 끝에 겨우 그 집에 도착했는데, 노란색 쓰레기통은 없었습니다. 어제까지 분명히 노란색 쓰레기통이 있었다는 지인의 말에 따님이 말했습니다. 매주 수요일에는 쓰레기 수거하는 차가 그 통을 가져가기 때문에 쓰레기통이 없는데 오늘..

천냥 시주 말고

천냥 시주 말고 흔히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계명을 준다 하시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사랑을 말하면서도 그중 인색한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반성하듯이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혹시 헌금 생활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하나님께 헌금하고 있다는 생각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건네는 마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천냥 시주 말고 없는 사람 구제하랬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러줍니다. 큰 금액인 천냥을 시주하는 것보다 주변의..

봄 봄의 어원이 ‘보다(見)’에서 비롯됐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봄은 보는 계절입니다.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보고,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기 시작하면서 봄이 옵니다. 열왕기하 6장에는 엘리사가 사는 성읍을 이방인 아람 군대가 포위한 사건이 나옵니다. 이 상황을 본 엘리사의 사환은 탄식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사환의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사의 기도로 영적인 눈이 열린 사환이 다시 상황을 보니 아람 군대와 비교도 안 되는 하나님 군대가 산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문제만 볼 때는 겨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보기 시작하면 봄이 온 것입니다. 봄이 와도 보지 못하면 여전히 겨울이요, 겨울에도 볼 줄 알면 겨울도 봄입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