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과연 그럴까?
뉴올리언즈에는 시계를 아주 잘 만드는 케토 라는 장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할 수 없이 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낼 수 밖에 없게 되고
연이어 아들의 싸늘한 주검 만을 맞이하게 된다.
케토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새롭게 지어지는 기차역에 붙일 시계를 거꾸로 가게 만든다.
시계를 설치하는 행사가 열리는날 케토씨가 만든 시계를 보고 많은 이들은 당혹스러워 했지만
이윽고 케토씨는 시계를 일부러 거꾸로 가게 만들었다고 얘기하면서 이렇게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 전쟁터에서
죽은 아들이 혹시나 살아 돌아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이후 케토씨는 고향을 떠났고 죽었다는 소문만이 돌아다닐 뿐이다.
이후 1차세계 대전이 끝날즈음 버튼가 에서는 아이가 태어난다 하지만 아이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태어나자 마자의 모습이 80대의 할아버지 같이 늙어서 태어난 것이다.
감독은 이 대목에서 이 아이가 케토씨의 환생 이라는 복선을 부여한다
케토씨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고 싶어 했었다
공교롭게도 케토씨가 사라진지 얼마 안된 시점에 태어난 아이가 노인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것이다.
이 장면에서 한가지 놀라운 점은 감독은 동양의 윤회사상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하튼 이렇게 흉칙한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버튼가의 아기는 양로원 앞에 버려지게 되고 양로원을 운영하고 있는 퀴니는
아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장면에서 부터 감독은 이 영화가 운명에 대한 얘기 라는 복선을 깐다.
퀴니는 아이의 이름을 벤자민 이라고 짓게 되고 벤자민은 여느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시간이 흐를 수록 젊어진다.
즉 보통의 인간들과는 다른 생체주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보통의 인간들은 태어날때 신생아로 태어나 갈수록 성장하게 되고 20대에서 40대까지 가장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다가
40대 이후부터 조금씩 퇴화 되기 시작해서 60대가 넘어가면서 부터 급격하게 노쇠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벤자민은 80대 정도의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갈수록 젊어지기 시작해서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건장한 청년시절을 보내고 보통사람들이 60대가 넘어 가면서 부터
급격하게 노쇠하는 시점에서는 급격하게 어려지고 보통의 인간들과는 달리 신생아 상태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감독이 이러한 설정을 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케토씨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아들이 살아 돌아 올지도 모른다는 강한 열망을 않고 있었다
그래서 케토씨가 환생한 벤자민은 생체주기가 거꾸로 되어서 살아가야 할 운명으로 나온다.
하지만 케토씨의 열망과는 틀리게 벤자민은 생체주기 시간만 거꾸로 일뿐이다.
다시말해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진 않는다는 것이다.
벤자민은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의 모습으로 죽을 운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진 않았다
왜냐하면 벤자민은 자기와 비슷한 시기에 정상적으로 태어나 자란 데이시와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되고
서로가 다른 모습으로 늙어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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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과 데이시는 모습만 반대로 변해갔을뿐 시간은 정상적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감독이 케토씨의 열망과는 틀리게 그의 생체주기만 거꾸로 돌린데는 나름이유가 있다.
케토씨가 아무리 시간을 돌리고 싶어도 시간만은 절대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이 대목에서 못박아 둔다.
벤자민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첼시호의 선원이 됨으로써 자립하게 된다
마초기질이 다분한 첼시호의 선장은 벌새를 통해 이 영화를 관통하는 또다른 주제인 사랑에 대한 복선을 얘기한다.
벌새는 1초에 80회나 날개짓을 하는데 그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숫자8 과 모양이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숫자 8을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가 된다고 주장한다.
"∞" 무한대 표시는 고등학교 정도의 학력을 가지면 다 알고 있는 기호일 것이다.
"∞" 무한대를 한번 잘 관찰해 보자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한번 꼬아 놓은것 처럼 보인다
즉 다시말해 끊임없이 순환하는 구조이며 일방이 아니고 그것도 쌍방향이다
양쪽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쌍방향의 사랑은 무한대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 감독은 자신이 주장하는 무한대의 사랑을 영화속에서 벤자민의 두가지의 에피소드를 통해 역설한다.
벤자민과 첼시호 선원들은 겨울궁전 이라는 한 호텔에서 머물게 되고 벤자민은
이 곳에서 운명적인 또 다른 여인 엘리자베스를 만난다.
벤자민과 엘리자 베스는 처음에는 잠이 오지 않는 야심한 시각에 대화 친구로서 친해지게 되지만
이후 급격하게 뜨거운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들은 매일밤 밀회를 즐기게 되지만 어느날 엘리자베스는
기약도 없이 편지 한통만 남긴채 남편과 함께 사라진다.
이 둘의 밀회는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단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고 싶었던 것이다.
보통의 우리 인간들도 이러한 오류를 자주 범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선장이 주장했던 "∞" 무한대 기호같이 서로의 마음이 완벽하게 쌍방향으로 순환할때 가능하고
무한대로 확장이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고 얘기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서로가 사랑한다고 얘기하면서도 사랑이 변질되면 분노와 증오로 바뀌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사랑이 썩으면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이 사랑이라고 착각을 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은 벤자민과 데이시의 평생의 러브스토리를 보여 주면서 그들의 모습은 정반대로 늙어가도록 설정함으로써
선장이 말했던 "∞" 의 사랑을 보여준다.
벤자민과 데이시는 완벽하게 대칭된 모습으로 어린시절부터 만나서 사랑을 싹틔우고 생의 마감을 함께 한다.
이들의 대칭된 모습과 평생의 사랑은 바로 선장이 얘기한 무한대 기호"∞"와 일치 한다는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러한 설정에 필자는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름끼친다는 표현은 이럴때 쓰는 것이다.
벤자민과 데이시는 데이시의 교통사고로 다시 운명적인 만남을 이어가게 된다.
여기서 감독은 데이시의 사고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 영화를 관통하는 또다른 주제인 운명에 대해서 얘길 한다.
물론 감독은 영화곳곳에서 운명을 거부할 순 없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복선을 깐다.
하지만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틀려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것 또한 친절하게 암시해 준다.
데이시는 연습을하고 샤워를 한후 친구와 집을 나오는 과정에서 친구는 신발끈을 묶고 있다.
그리고 데이시가 사고 나게 될 택시는 전혀 다른 손님을 태우고 길을가다 행인에 의해서 잠시 멈춰서고
등등의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이 중에서 조금만 다른 행동을 했거나
사고를 낸 택시가 조금이라도 다른 행동들을 했다면 사고타이밍의 시간은 어긋났을거라고
아쉬운 가능성을 부여하면서도 때때로 우리는 불가항력 적인 운명의 충돌에 휩싸이게 된다고 역설한다.
다시말해 감독은 이 장면에서 두가지의 메세지를 던진다.
하나는 모든것이 잘 짜여진 운명이라는 각본대로 움직인다는 것이고
또하나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우리들 모두는 운명이라는 잘 짜여진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메세지는 브래드 피트의 전작인 바벨과 김민씨의 남편으로 더 알려져 있는 지호 리의 내가 숨쉬는 공기라는 영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크게 봤을때 3가지다.
첫째는 시간이 거꾸로 갈 순 없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시간은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모두는 운명이라는 네트워크에 엮혀 있고 미리 정해진 운명이라는 각본에 의해 살아 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라는 한국판 제목은 사실 벤자민의 생체주기가
거꾸로 가는것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우리모두는 이미 태어나면서 부터 죽음까지 미리 설계 된 운명이라는
각본대로 거꾸로 살아간다는 의미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찰해 보면 우리전부와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무한대 "∞" 의 사랑은 쌍방향이고 서로가 완벽하게 쌍방향으로 순환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작년에 개봉했던 배트맨 다크나이트에 연이어 헐리우드가 또 한번의 엄청난 영화를 들고 찾아 온것 같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세븐과 파이트클럽 이라는 영화를 워낙에 재밌게 봐서 강렬한 인상이 남아 있었지만
이 정도 일줄은 정말 예상 못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나오지만 우리 인간들은 오직 두개의 눈을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보고 기록하게 된다.
따라서 지구상의 그 누구도 완벽하게 똑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인간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우리도 늙어가고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감독이 이 영화속에서도 주장하다시피 오직 자신만의 삶을 기왕에 살아가지만 좀더 열정적으로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 사랑을 여러분들도 하시길 바란다.
어차피 운명의 선택 또한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필자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정말 소름끼치도록 슬프고 아릅답고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심장을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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