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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 김만중.3

Joyfule 2010. 1. 11. 10:36

 

     사씨남정기 - 김만중.3  

 

 

소저가 점점 크면서 모친을 모시고 지냈는데

그 용모와 재덕이 기이함은 말할 것도 없이 증자(曾子)와 같이

편모를 지성으로 받들어 봉양하며 모녀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딸이 성장하여 혼기가 되었으나

주혼될 사람과 방도가 없어서 근심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매파가 찾아와서 용광색덕을 칭찬하면서
"제가 유씨 문중의 명을 받자와 귀댁 소저와 혼인하겠다는 뜻을 전하러 왔습니다.

신랑되실 유한림으로 말하면 소년 등과하여 벼슬이 한림학사에 이르고

소년 풍채와 문장재화가 일세에 압두하니

귀 소저의 용색과 일대가연인가 하옵니다."


부인은 이미 유한림의 풍채가 범류에서 뛰어난 소문을 들은 지 오래였으나

인륜의 대사를 매파의 말만 듣고 가볍게 허혼할 수가 없었으므로

소저가 아직 유약하다는 핑계로 시원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매파가 하는 수 없이 그냥 돌아와서 사실대로 자세히 유공과 두부인에게 보고하였다.

유공은 실망하고 오랜 생각 끝에 매파에게 물었다.
"그 댁에 가서 할멈은 무어라고 말하였나?"
매파가 처음 인사부터 하직하고 오던 인삿말까지 자세히 되풀이하여 말하였다.

유공이 그 매파의 교섭 경과를 듣고 문득 깨닫고,
"내가 소홀하게 할멈에게 잘못 가르쳐 보냈었구나."
하고 매파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이튿날 유공이 직접 신성현으로 가서

지현(知縣)을 찾아보고 정중한 중매를 부탁하였다.
"아들의 호사로 사가(謝家)에 매파를 보냈더니

규수의 모친이 규수의 유약을 핑계로 허혼하지 않으니

귀관이 나를 위하여 사가에 가 주시는 수고를 아끼지 마시오."
"노 선생님의 말씀을 어찌 범연히 듣겠습니까?"
"가시거든 다른 말은 하지 마시고 다만

고(故) 사급사의 청덕을 흠모하여 구혼한다는 말만 전해 주시오.

그러면 반드시 허혼할 줄로 믿습니다."


유공이 부탁하고 돌아간 뒤에 지현이 사가로 찾아가서

부인에게 만나기를 청하자 다른 일로는 찾아올 리가 없는 지현의 방문이라

요전에 매파가 와서 청하던 혼사인 줄 짐작하고

객당을 깨끗이 치우고 손님을 청해 들일 준비를 하였다.

부인은 딸을 미리 객당의 옆방에 깊이 숨겨 두고,

노복을 시켜서 지현을 객당 안으로 인도하여 들였다.

우선 주과를 잘 차려서 대접한 뒤에 부인은 시비에게 전언(傳言)하여,
"성주께서 친히 누지에 왕림하셔서

한가의 외로움을 위로하여 주시니 저의 집의 영광이옵니다."


지현이 부인의 인사 전언을 공손하게 다 들은 뒤에 시녀에게 전언하여,
"소관이 귀댁을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귀댁 소저의 혼사를 꼭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뜻에서입니다.

전임 이부시랑참지정사 유공 현이

귀 소저가 재덕을 겸비하고 자색이 비상함을 듣고 기특히 여길 뿐 아니라

사급사의 청명 정직함을 항상 흠앙하오매

그 여아의 재덕은 불문가지라 하여 귀댁 소저로 며느리를 삼고자 하옵니다.

유공의 아들은 금방 장원하여 벼슬이 한림학사에 이르옵고

상총(上寵)이 극하오매 사람마다 사위를 삼고자 하는 바이나,

유공은 그 많은 구혼을 모두 물리치고

귀댁 소저에게만 나를 통하여 청혼함이니 이 좋은 때를 잃지 마시고

허락하시면 내가 돌아가서 유공을 뵈올 낯이 있을까 합니다."
부인이 다시 전언하여 대답하되,
"용우(庸愚)한 여식이 재덕이 부족하고 용모 또한 취할 것이 없는데

성주께서 이처럼 친히 오셨으니 어찌 사양하오리까.

성주께서는 돌아가셔서 쾌히 통혼하겠다는 비가의 뜻을 전해 주십시오."


지현이 크게 기뻐하고 돌아와서 유공에게 그 경과를 상세히 알렸다.

유공은 기뻐하면서 지현의 수고를 치하하였다.

곧 택일하고 혼례 준비를 시작하는 한편 사급사의 청렴결백으로

집에 유산이 없어서 가세가 빈한함을 알기 때문에 납폐를 후하게 보내었다.

그러나 유공은 아들의 성혼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부인 최씨를 생각하고 비회를 금하지 못하였다.


어느덧 길일이 되매 양가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예식을 이루매

남풍여모(男風女貌)가 발월하여 봉황의 쌍을 이루었다.

신부의 모친이 신랑의 신선 같은 풍채를 사랑하여

딸과 아름다운 쌍을 이룬 것을 즐기면서도 남편 급사가

그 모양을 보지 못함을 슬퍼하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었다.

신랑이 신부와 함께 빨리 집으로 돌아와서 신부가 폐백을 드리자

유공과 두부인의 남매 양위가 눈을 들어서 비로소 신부의 모습을 보니

용모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고 현숙한 덕성이 나타나서

주가(周家) 팔백 년을 이루던 임사의 덕이 전해 남은 듯하였다.


날이 서산에 지매 잔치 손님들이 돌아가고 신부 또한 숙소로 돌아가매

유한림이 이 첫날밤에 신부와 더불어 운우지락을 이루어서 남녀의 정이 흡연하였다.
이튿날부터 소저는 시부를 효성으로 받들고 남편을 즐겁게 섬기더니

유공이 우연히 병을 얻어서 백약이 무효하매

유공이 소생하지 못할 것을 깨닫고 매제 두부인에게 길이 탄식하고 유언하였다.
"현매(賢妹)는 나 죽은 후에 자주 왕래하여 가사를 주관하고 잘못이 없게 하라."
또 아들 한림의 손을 잡고,
"너는 앞으로 가사를 고모와 상의하여 가헌을 빛내도록 하라.

네 아내는 덕행과 식견이 높으니

가부를 불의로 섬기지 않을 것이니 공경하고 화락하라."고 유언하고,

며느리 사씨에게도,
"너의 현부(賢婦)로서의 요조 성행을 탄복하니, 안심하고 세상을 떠날 수 있다."
하고 마지막까지 칭찬하고 신임하였다.

유족들에게 일일이 유언한 유공은 그날 엄연한 자세로 별세하자

한림 부부의 호천애통은 비할 데 없었고 매제 두부인의 애통이 또한 극진하였다.

상일(喪日)에 임하여 영구를 선영에 안장하고

한림부부가 집상하매 애회(哀懷)가 뼈에 사무쳐서 통곡하는 정상이

모든 사람의 눈물을 자아내어서 효성에 탄복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