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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 김만중.5.

Joyfule 2010. 1. 13. 08:19

 

 

     사씨남정기 - 김만중.5.  

 

 

멀지 않아서 교씨 몸에 잉태하였으므로 유한림과 본부인 사씨가 매우 기뻐하였다.

한편 간사한 교씨는 아들을 낳지 못할까 미리 염려한 나머지 여러 무당을 불러서 물었지만

어떤 자는 생남한다고 하고 어떤 자는 생녀한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또 아들을 낳으면 단명하고 딸을 낳으면 장수한다는 점괘풀이도 하였다.

교씨는 이런 무당들의 불길한 점괘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근심으로 지냈다.

하루는 시비 납매가 교씨에게 이상한 말을 속삭였다.


"동리에 어떤 여자가 있는데 호를 십랑이라 합니다.

본디 남방 사람으로서 여기 와서 우거 중인데 재주가 비상하여 모를 것이 없으니

그 사람을 불러다가 물어 보십시오."
교씨가 그 말을 듣고 기뻐하고 곧 자기 거처로 불러들였다.

교씨는 그 십랑에게 운수를 물었다.
"임자는 뱃속에 든 아기의 남녀를 알아낼 재주가 있소?"
"제가 비록 식견이 밝지 못하오나 수태한 사람의 남녀를 분별치야 못하겠습니까?

부인의 손을 잠깐 빌려주시면 진맥한 후에 정확하게 판단해 올리겠습니다."
교씨가 팔을 걷고 맥을 짚어 보이자 십랑이 잠시 맥을 짚어 본 뒤에,
"여맥입니다."
하고 말하자 교씨는 그 엄연한 선언에 깜짝 놀라면서,
"대감께서 나를 이 댁으로 들여놓으신 것은 한갓 색을 취하심이 아니라

사속할 생남으로 농장지경(弄掌之慶)을 보고자 하신 것인데

만일 첫아기를 생녀하면 낳지 않느니만 못하니 이 일을 장차 어쩌리요."
"제가 일찍이 산중에 들어가서 도인을 만나서 수업하고

복중의 여맥을 남태로 변화시키는 술법을 배운 바 있습니다.

그 뒤에 그 술법을 시험해 보았더니 영험이 백발백중입니다.

부인께서 꼭 생남하시고 싶으시면 저의 그 묘한 술법을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교씨가 반색을 하고 그 술법으로 다행히 생남하면

천금을 아끼지 않고 후한 상을 주리라고 약속하였다.

십랑은 그 술법이 매우 어렵다는 태를 뺀 뒤에 문방사우를 청하여

기묘한 부적을 여러 장 써서 기괴한 비방을 많이 한 뒤에

교씨의 방 안의 각처와 침석 속에 감추어 둔 뒤에,
"저의 술법은 끝났습니다. 금후 만삭이 되면 반드시 옥동자를 낳으실 것입니다.

그때 다시 와서 득남 하례를 하겠으며 후하신 상금은 그때 받을까 합니다."
하고 십랑은 자신만만하게 돌아갔다.

 

그 후에 어느덧 십 삭이 차매, 교씨는 과연 순산득남하였다.

어린아이의 이목이 청수쇄락하고 크기가 세 살된 아기만 하매,

한림은 본부인 사씨와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고

노복들도 모두 경희하며 칭송하였다.
교씨가 남아를 낳은 뒤로는 유한림의 교씨에 대한 대접이 더욱 두터워지고

사랑이 비할 데 없어서 백자당을 떠난 일이 없고

아들의 이름을 장지라 하여 장중보옥같이 여겼다.

더구나 본부인 사씨는 아기에 대한 정이 극진하였으므로

교씨가 낳은 아이인지 모를 정도로 두 부인 사이의 정까지 한층 깊어졌다.


때는 마침 늦봄이라 동산의 백화가 만발하여 경치가 아름다웠다.

유한림이 황제를 모시고 서원에서 잔치를 배석하고 집에 일찍이 돌아오지 못하였다.

이때 사부인이 책상에 의지하여 글을 보고 있었는데,

시녀 춘방이 와서,
"지금 화원 정자에 모란꽃이 만발하였으니 구경하십시요.

대감께서 아직 조정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니

한가로운 이때에 한번 화원에 소풍하시고 꽃구경하십시요."
하고 권하였다.

사부인이 반가운 소식이라고 곧 책을 덮고 옷을 가볍게 갈아입은 뒤에

시녀 오륙 명을 거느리고 연보를 옮겨서 화원의 정자에 이르렀다.

버들 그늘이 정자의 난간에 기대고 꽃향기가 연못에 젖었으며

그윽한 경치가 매우 고요하여 봄경치가 매우 즐길 만하였다.

사부인이 시녀에게 차를 명하고 교씨를 청하여

함께 봄경치를 구경하려던 참에 바람결에 문득 거문고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사부인이 이상히 여기고 귀를 기울이고 자세히 들으니

거문고 소리가 맑아서 비취가 옥쟁반에 구르는 듯, 사람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켰다.

사부인이 좌우 시녀에게 물었다.
"어디서 누가 저렇게 거문고를 잘도 타느냐?"
"그 거문고 소리가 교낭자 침소에서 나는 성싶습니다."
"그럴까? 음률은 여자의 할 바가 아닌데 교낭자가 어찌 거문고를 저리 잘하겠느냐.

남의 말은 믿기 어려우니 저 소리 나는 곳에 가 보고 와서 사실대로 고하라."


시비가 사부인의 명을 받들고 그 거문고 소리나는 곳으로 찾아가 보니 과연 백자당이었다.

시녀가 밖에서 안을 엿본즉 교씨가 요리상을 풍부하게 차려 놓고

섬섬옥수로 거문고를 희롱하고

한 사람의 미인이 화려한 의상으로 마주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시비가 자기의 눈을 의심하고 몇 번 자세히 본 뒤에

돌아와서 사부인에게 사실대로 고하였다.
사부인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교랑이 어느 사이에 거문고를 배웠으며

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누구냐고 노하였다.
그리고 교씨를 불러서 좋은 말로 훈계한 후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곧 시비를 보내어 교씨를 데려오라고 명하였다.


이때 교씨는 십랑의 술법으로 생남하고

유한림의 사랑이 두터워지자 십랑과 더욱 친해졌다.

그 뒤로 교씨는 십랑의 힘과 방예로 유한림의 총애를 독점하려고 애쓴 나머지

음률로 유한림의 마음을 매혹시키고 농락하려고

 거문고와 노래까지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낭자가 유한림의 총애를 더 얻으려면 음률을 배우시오.

거문고와 노래는 장부를 혹하게 하는 마술이니

거문고 잘하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으시오."
"나도 그런 마음이 있으나 그런 사람을 구할 길이 없으니 소개해 주오."
"거문고 잘 타는 여자가 있는데 이름이 가랑으로서

거문고와 노래의 명수이니 그 여자에게 청하여 배우시면 됩니다."
교씨가 찬성하고 십랑을 통해서 가랑을 백자당으로 불러들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