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초돌사에서

예수님께서 출제한 천국시험

Joyfule 2018. 9. 22. 17:13


 

예수님께서 출제한 천국시험 

 

여러분은 아마 고등학교 다닐 때 대입시험을 보기 위해 몇 시간 안 자고 머리 싸매가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스칠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 열심히 공부했는지 헛웃음이 나오겠지만, 그 당시에는 대학입시가 나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절박함과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얼떨결에 따라가는 그런 기계적인 열심, 이런 게 누적되어 결국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개인시간을 포기하고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날겁니다.

피나는 열심으로 인한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잠시의 해방감은 찾아왔지만 결국 또 군대 제대하고 직장을 목표로 삼아 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직장 문을 두드리기에 유리함을 선점하고자 또 공부 공부, 학과공부도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스펙을 남기기 위해서 또 공부 공부, 결국 졸업과 때를 같이하여 직장에 취직하니 또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계속 공부 공부, 이렇게 우리의 인생은 공부와 시험으로 거의 도배가 되다시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인생을 더 질 좋은 삶을 위해 피튀기듯 투자하면서 가장 중요한 구원을 위해서는 어찌 준비하고 계십니까? 천국가는 시험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요 천국시험도 있습니다. 천국시험은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인본적인 상식선을 훨씬 초월합니다. 우리 때 대입시험은 경쟁률이 평균 삼대일 정도였고, 요즘 같은 불경기에 대기업 취직 시험은 대입경쟁률의 몇십 배고, 9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어떤지 인터넷으로 조회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세상의 각종 시험의 문도 좁디좁은 문이고 그 시험에 겨우 통과한 사람만이 들어가는 문인데 천국문은 어떨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천국이 중고생들 학교에서 수학여행 가는듯 대형버스 끌고와서 단체로 가는 게 천국인가요? 맞습니다. 적어도 요즘 교회에서는 천국을 그렇게 간다고 가르칩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주님의 은혜로 너도나도 다 들어가는 것이 천국이라고 가르쳐서 천국을 아주 싸구려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피튀기는 그 어려운 시험공부도 안 하고 나는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저 대학 총장은 사랑이 많고 은혜가 넘쳐서 우리를 다 합격시켜 줄 거라는 근거 없는 자기 최면적인 착각입니다. 직장에서 회사에 필요한 인력을 뽑기 위해 시험이라는 스펙트럼을 이용해서 걸러내는데도 정체모를 믿음과 자신감만 있으면 그냥 취직시켜주던가요?

하다못해 옷가게의 점원을 뽑아도 기본적으로 성실한지 정직한지를 먼저 보고 뽑는데, 천국이 세상적인 목사님들의 말대로 입으로 주님만 시인하면 다 합격하는 게 천국인가요? 천국은 결코 단체로 수학여행 가는 곳이 절대 아닙니다. 지식적으로 머리로만 믿으면서 눈물 몇번 흘리는 은혜만 있다면 구원받는다는 사람들은 결국 그 때가 되면 상상도 못 할 상황을 접하면서 세상에서 맛보지 못한 엄청난 좌절감을 느끼고 통곡할 것입니다. 천국은 이 세상의 그 어느 시험보다도 어렵고 그 어느 문보다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이 왜 좁은 길, 좁은 문이라고 했을까요? 그냥 머리로 믿고 은혜받았다면서 눈물 흘리는 것이 천국시험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그것은 좁은 문도 아닙니다. 좁은 문이 그런 것이라면 천국은 누구나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럼 어찌 해야 하나요? 예수님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깊숙이 인정하고 보혈의 피로 내 죄 사함이 씻겨졌다고 믿으면, 그다음부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누가 보든 안보든 상황을 판단하지 말고 성경에 잘 기록된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뺨을 맞았다고 다른 뺨을 돌려대지 못할망정 화를 낸다거나, 아파트 밑을 지나가는데 누가 피던 담배를 던져서 내 옷이 탔다고 위를 바라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다 쓰지도 못할 재산을 쌓아두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보고도 외면한다든지, 남의 슬픔을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고 고개 돌리거나, 운전하다가 다른 운전자가 방해 좀 했다고 얼굴 찌푸리며 카리스마 있는 척하지 말고,,,,이렇게 살아가면서 신경 자극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응 하면서 교회에서는 믿음 있는 척 나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거룩한 티 내지 말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말씀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과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사람은 선한 행함에 인색하고, 좁은 길을 가기 싫어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자신를 위로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고, "네 이웃도 이와 같으니 네 자신에게 함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요지는 무엇인가요? 머리에 든 지식같은 믿음으로 되는 일인가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서...이 말씀이 무더운 한 여름날 예수님께서 느티나무 정자 아래서 부채질해 가며 동내 아저씨들과 장기 두시면서 가볍게 하신 말씀으로 보이나요? 네 이웃에게도 이처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서 사랑으로 행하랍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제가 가끔 칼럼에 즐겨 쓰는 구절이 있습니다.
신실한 마음으로 믿는 자는 반드시 선한 행함이 따라오고, 
신실한 행함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구원받은 자답게 살게 되어있습니다.

반대로 머리로만 믿고 구원받겠다는 영적으로 게으른 사람은 거룩한 행함이 없고,
거룩한 행함이 없는 사람이 오로지 믿음과 은혜로만 천국 간다고 스스로 합리화 하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믿는 믿음은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진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신실한 믿음이 없는 행함도 죽은 행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신실한 행함이 있는 믿음과, 신실한 믿음이 있는 행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야고보의 신실한 믿음을 동반한 행위구원론과 바울의 신실한 행함이 들어간 믿음구원론은 충돌이 아니고 같은 진리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같은 성령의 통치를 받는데 결코 다를리가 없습니다. 

이 글에 반발하며,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리플레이 해 보십시오. 과연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면서 거룩한 행함이 있었는지, 입으로만 주여주여 하면서 믿습니다만 외쳤는지 확증해 보십시오. 바울의 믿음 구원론은 그 당시 바리새인들의 사랑이 없는 위선적인 믿음으로 억지로 행하는, 회칠한 무덤같은 작태를 준엄하게 꾸짖고 올바른 진리를 가르치려는 것이 믿음구원론의 의도입니다. 당연히 바울의 말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를 잘못 오해하여 오로지 머리로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다고 하는데 이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천년전 바리새인은 회칠한 믿음과 위선적인 행함을 가지고 구원받는다 착각했는데, 요즘 교회들은 그와 반대로 신실한 행함이 없이도 거품같은 믿음과 은혜만으로도 구원받는다 가르치니 수많은 사람들을 안심시켜서 지옥으로 인도하니 그 죄를 어찌 다 감당하리요.

이 글을 초보신자들이 읽으면 천국문이 너무 좁으니 좌절하여 믿음 생활에 엄두도 못 낸다고요?
그럼 제가 초보신자들을 위해서 천국가는 좁은 문을 넓히는 글을 써야 옳은 것입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기독카페에 제 글을 어느 분이 올렸는데 사람관리 하려고 했는지, 믿음과 보혈의 은혜로만 구원 받는 것인데, 제가 쓴 글은 천국문을 너무 좁혀놓고, 지나치게 행함을 강조했다고 불편해 하면서 초신자가 보면 시험에 들어 믿음에서 떠난다고 제 글을 퇴출했고, 그 글을 올린 분도 퇴출했다더군요. 초보신자든 오래된 신자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진리는 정해져 있는 것이고 그 누구도 그대로 따라가지 아니하면 어떤 사람도 천국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개는 짖어야 하고, 기차는 달려야 하고, 성경의 진리는 상대를 가리지 말고 누가 뭐라고 해도 무조건 있는 그대로 외쳐야 합니다.

하다못해 대입시험도 똑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르지 사람 봐가면서 시험문제의 난이도를 조절하던가요?
이 시대의 교회는 인본적인 관점에서 사람관리 하려고 천국을 싸구려로 만들어 놓고, 좁은 문을 대문으로 만들어서 배나 지옥 자식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천국 시험에 합격하는 길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 보혈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거듭났으면 무조건 좁은 길을 가야 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마태복음에 기록된 이 구절을 읽으면 정말 겁이 나고 식은땀이 납니다. 누구나 다 아는 너무나 유명하며, 제가 제일 두려워하는 성경구절이지만 예수님의 안타까운 마음으로 탄식하시면서 외치시는 일성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장 21절)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문제와 답을 동시에 가르쳐 주시면서 천국가는 길을 제시한 시험문제입니다. 이 세상 시험 다 통과하고도 천국시험에 실패한다면 우리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시험 다 실패해도 천국시험에 합격한다면 우리는 대단히 성공한 인생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랑별파파(인천방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