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4과)4. |
스가랴(1): 위로의 메시지 (1-4장) |
3. 정결케 된 제사장 이스라엘(3장)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6),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7). 정결케 된 대제사장에게는 새로운 임무가 필요하다. 이것이 (3:7)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자는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선포한다. 그는 우선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라는 개인적인 경건에 관한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나서 그의 공적인 임무를 수행할 것을 지시받았다. 봉사는 경건생활로부터 흘러나와야 한다. 만일 이러한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분할하여 그가 일부를 다스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집이란 당시에 건축 중이던 성전을 말한다. 제사장의 임무에는 정결함과 부정함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일이 포함된다. 뜰 역시 부정한 것으로부터 지켜져야만 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성전에 들어가서 허용되지 못한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제사장의 일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하늘 천사의 사이를 왕래하는 허락을 받은 것이다. 이 약속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교제를 의미한다. 이것은 의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결한 제사장들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민족을 대표하는 여호수아는 책임있는 위치에 있다. 만일 그가 신실하다고 판명되면, 그는 하나님의 면전에 있는 안전한 장소를 약속받게 될 것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8).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10)."
(3:8)에서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완전한 대제사장의 미래에 대한 말씀을 받는다. "들으라!"는 명령은 이제 계시될 말씀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여호수아와 동료 제사장들은 예표의 사람들로 지명된다. 이것은 예표들을 맡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그드을 위해 예표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선지자들의 난해한 말들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것은 예표의 사람들, 즉 상징적인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 사자는 제사장의 직무는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직 자체를 위해 행해온 것과는 달리 예언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이어서 하나님의 종 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순은 결코 스룹바벨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스룹바벨은 이미 역사의 무대에 등장해 있었지만, 순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정황을 살펴볼 때에 이 순은 메시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장차 오실 이스라엘의 구원자의 이름과 같다. 그의 동료 제사장들은 신자들을 상징하는 반면에, 그는 대제사장이신 메시야를 상징한다. 제사장직은 위대한 원형이신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여기에 언급된 "내 종"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특수한 명칭이다. 그리고 순이란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라소 다윗 계보에서 나올 새 순이다
장차 오실 메시야의 부드러움, 겸손, 인간성 등이 더욱 자세히 언급된다. (3:9)에서는 메시야에 대한 세 번째 이름인 "돌"이 사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메시야에 대한 삼부작, 또는 삼중주가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제시된 돌에 대하여 많은 해석들이 있다. 성전의 주춧돌, 성전의 갓돌, 메시야의 면류관에 박힌 보석, 그 당시 건축 중이던 성전의 모든 돌들, 수룹바벨, 제단, 대제사장의 가슴받이, 혹은 면류관에 박힌 보석, 또는 완성된 성전 등의 다양한 해석이 있다.
여기에 돌이 소개된 방법이나 이에 대한 진술을 보면, 이 돌은 평범한 돌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미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돌은 메시야를 가르킨다. 이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는 (창 49:24, 시 118:22, 사 28:16, 마 21:42, 행 4:11, 벧전 2:6)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돌 위에 있는 일곱 눈은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이라기 보다는(4:10 참조), 오히려 지식의 완전성, 또는 그 돌의 전지하심을 가리킨다.
돌에 새긴다는 것은 메시야의 아름다움, 재능, 은혜, 그리고 귀중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성전 건축의 완성과 성전 봉헌의 날과는 관계가 없으며, (레 23:27)의 국가적 속죄의 날과도 관계가 없다. 그것은 메시야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대속사업을 완성하시어 이스라엘로 구원받을 수 있게 하신 날과 관계가 있다. 더 나아가서 이 날은 이러한 구원이 실현되는 때, 즉 (12:10)의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속죄의 날과 관계가 있다.
(3:10)의 "그 날에"란 말은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의 사역은 오직 한번 뿐이다. 이제 어찌하여 여호수아와 동료 제사장들이 예표의 사람인지 명백해졌다. 용서하시는 은혜와 정결의 행위는 그 민족이 잠재적으로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구원을 받으며, 그들의 죄악이 영원히 제거되어질 메시야의 행위를 향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영적 상태에 있을 때에-이것은 구약성경의 공통된 증거이다-항상 물질적인 변영이 이스라엘에게 약속되었다. 그러므로 (3:10)은 평화와 번영의 시기를 나타낸다. 오 주여, 그 날이 속히 임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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