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4과)6. |
스가랴(1): 위로의 메시지 (1-4장) |
4. 세상의 빛, 이스라엘(4장)
4-3. 스룹바벨에거 주어진 격려의 메시지(7-10)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하리라! 하셨고(7),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8),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9).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10)."
스룹바벨에게 필요한 모든 격려가 4:6에서 주어졌다. 거기에서 그는 끊임없는 하나님의 영의 공급에 대해 알게 되었다. 스가랴는 4:7에서 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약속을 가다듬고 있다. 그는 질문 형태를 사용하여 이 구절을 강조하고 있다. 산은 성전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만날 모든 어려움들을 상징한다. 이러한 장애물들에 대해서는 에스라 4-5장을 참고하라. 스가랴 3장에서 여호수아가 민족을 대표했던 것처럼, 여기에서 스룹바벨도 백성들을 대표한다.총독과 백성들 앞에 있는 모든 어려움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제거될 것이다. 4:9에 기록된 스룹바벨은 성전 건축을 완성하는 명예와 기쁨을 약속, 즉 머릿돌을 내어놓을 것이라는 역속을 받았다. 그 당시에나 오늘날이나 건축할 때에는 기초를 놓은 일과 아울러 머릿돌을 놓는 것이 관습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돌이신 메시야를 배출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에서 부자연스럽고 통일성을 파괴한다. 첫째, 돌을 내어 놓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스룹바벨이다(여기에서는 머릿돌을 의미한다). 둘째, "메시야에게 은총이 있을지어다"라는 외침이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4:9에서의 내용은 당면한 문제가 성전 건축의 완성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전의 기초를 통을 때에 기쁨의 외침이 있었던 것처럼, 성전 건축 완성에도 비슷한 기쁨의 외침이 있을 것이다. "은혜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집에 거하소서!" 스룹바벨이 자기의 과업을 수행하면서 실망하지 않게 하려고 4:9에 약속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가 성전 건축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가 완성할 것이다. 이 약속은 다리오 통치 제 6년에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
4:9에서 "나를 보내었다"는 말씀은 스가랴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네가 알리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사실에 대해서는 4:8도 유의해 보라! 여기에서 보어진 분은 2:9,11에 기록된 것처럼 메시야이다. 스가랴 3장은 하나님의 영은 여호수아와 그의 정결케 됨을 뛰어넘어 복되신 순의 죄를 사하시는 사역에 초점을 맟추었다. 4장에서도 성령께서는 스룹바벨과 선전 건축을 뛰어넘어 앞으로 세상을 다스리실 때에 선전을 완성하실 순에게로 스가랴의 시선을 이끌고 있다. 6:13을 보라. 성령께서 메시야를 등장시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으며, 계시 속에서의 그의 사역이 이보다 더 큰 주제는 없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에스라 3:12-13과 학개 2:3로부터 대적들 뿐 아니라, 그 백성들 까지도 불신앙으로 인해 성전 재건을 시작하는 일을 작은 일로 취급했다. "작은 일의 말'이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한 후에 일어난 일들을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충만한 지식과 진지하신 일곱 눈으로 스룹바벨의 지도 하에 진행된 작업 과정과 완성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전에 작은 시작을 경멸했던 사람들이 그 작업이 되어 가는 것을 기뻐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온 세상을 두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눈은 성전 건축의 완성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돌보심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이미 주어진 이러한 특별하고 복된 보증들 외에 더 이상 무슨 보증이 스룹바벨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필요하겠는가? "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11),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12) 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13).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14)."
그러나 그 환상에 대해 완전히 스가랴에게 설명되어진 것은 아니다. 4:11에서 그는 두 개의 감람나무에 관하여 질문한다. 스가랴는 4:4,11-12에서 세 번에 걸쳐 질문한다. 4장에서 스룹바이 네 번 언급되었으나 등대에 기름을 공급해주는 주발의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두 감람나무가 그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구약성경에는 흔히 사람을 나무에 비유하곤 한다. 4:12절에 언급된 황금 기름이 성령을 상징한다는 것은 4:6로 미루어 알 수 있다. 기름이 성령을 상징한다는 것은 구약 성경에서 선지자, 제사장, 왕에게 그 직무에 따라 기름을 부어주는 데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그러면 감람나무들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해석하는 천사가 두 감람나무가 온 세상의 하나님을 모시고 설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문자적으로는 기름의 아들을)을 상징한다고 지적함으로서 그 일의 절정과 결론에 이른다.
앞에서 이스라엘에서 그 사역을 위해 어떤 사람들이 기름부음을 받았는지를 밝혔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신분은 주인으로부터 명령을 기다리는 종들의 위치이다. "온 세상의 주님"이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칭호이다. 두 명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은 모세의 제도와 그리스도의 제도를 언급하기 위해서, 또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언급하기 위해서 취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기름부음을 받고 성화된 두 사람을 칭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이 온 백성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은혜를 나타낼 통로 역할을 하는 공적 지위에 있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가리킨다. 이 지도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은혜와 특권, 그리고 보호의 위치에 있다고 여겨진다.
이와 같이 스가랴 3장과 4장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인 스룹바벨 모두에 대한 기쁨이 함축된 말로 결론을 맺고 있으므로 상호보완적이다. 이 두 감람나무는 재미있게 각색되어 계시록 11:3-4에 등장한다. 만일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두 사람이 모세와 엘리야라면 그것들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로서 상징되어진 세속 세력과 종교 세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들을 계시록 13장의 로마 짐승(세속적인 세력)과 거짓 선지자(종교적 세력)와 비교해보라. 4:14절의 궁극적인 완성은 왕이요 동시에 제사장인 메시야이다(6:11-13).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하나님의 영의 지혜를 따르며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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