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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7과)2.

Joyfule 2010. 12. 2. 20:36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7과)2.

스가랴(4):  전쟁과 평화의 왕 (12-14장)

 
제 4장 이스라엘의 속죄의 날(12-14장)


1. 예루살렘의 포위 (12장)

 


1-4. 은총의 영(10-11)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10).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11)."

 

  하나님은 지금까지 열국들에 대한 자신의 의로운 심판을 알리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열국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 안에서 성취해야 할 일도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아직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구세주이신 메시아를 신뢰하거나 메시아에게 순종하지 않고 있었다. 스가랴 는 12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 보기 어려울만큼 생생한 회심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과거의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이 구절은 다가올 이스라엘 역사의 한 시점에 성취될 것이다. 이는 국가적인 속죄의 날이 될 것이다.

이 날에 하나님은 왕궁과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거민들과, 그리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실 것이다. 은총과 간구라는 말은 모두 동일한 히브리 어근에서 파생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능력 있게 임하실 성령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확신의 영을 부어주실 것이며, 이로 인해 그들은 믿음의 기도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때에 하나님께 용서와 은총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완전히 파멸된 상태에서 자신이 찔렀던 메시아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들이 메시아를 진지하게 바라볼 때에 그들은 이전에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던 일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메시아를 거부함으로 불순종했던 조상들의 태도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어급된 "찔림"을 "모욕"으로 번역해야 한다도 주장한다. 그러나 이 번역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구약 성경 전체에서 몸을 찌르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구절 이후에 나오는 애통함 역시 모욕으로 인한 애통함이라고 할 수 없다.

탈무드에서는 이 구절을 요셉의 아들로서 죽임을 당할 메시아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하는 사람에게 평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랍비들은 성경적인 근거 없이 다스리실 메시아와 고난 받으실 메시아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 보면 이 구절이 메시아의 두 번에 걸친 도래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스가랴가 언급하고 잇는 것은 순교자가 아닌 미래에 오실 메시아이다. 이 구절을 연구한 가장 오래된 학자들은 이 구절을 이렇게 이해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장차 회개의 영을 받게 될 것이며, 이로인해 자신이 거부했던 메시아를 생각하고 애통하며 회개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애통함은 독자를 잃은 어미처럼 처절한 것이 될 것이다. 당시에 팔레스타인에서는자식을 잃은 것은 저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의 애통은 처절한 것이었다. 그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은 독자를 잃은 어미처럼 슬픔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12:10에서는 이러한 애통함이 개인적으로 가장 극심한 고통으로 비유되고 있고, 12:11에서는 가장 큰 국가적인 슬픔으로 비유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재난은 히스기야 시대로부터 유대 국가가 멸망할 때까지 백성들에게 가장 신망을 받았던 요시야 왕이 애굽 왕 바로느고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말한다.

 

예레미야는 이 일을 위해서 특별한 장송곡을 만들기도 했다. '하다드림몬'이란 명칭은 수리아의 신 하다드와 림몬이라는 두 이름이 결합된 것이다. 이것은 므깃도 근처에 있는 에스드라 엘론 대평원의 남족에 있는 요새의 이름이다. 이 곳은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 중에서 유명했던 곳이며, (계 16:16)에 의하면 앞으로도 유명해질 곳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그 유명한 아마겟돈 전쟁이라는 이름이 유래하게 된다. (제롬에 의하면) 초기 기독교 시대에 이 곳은 막시아오폴리스라고 불리웠다. 그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예루살렘 사람들은 크게 슬퍼하며 애통했다. 이스라엘은 장차 이러한 애통함과 같이 자신들이 거부하고 찌른 메시아를 보고 슬퍼하며 통곡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건한 슬픔과 회개는 하나님이 부어주신 회개의 영으로 인해 일어나게 될 것이다.


1-5. 국가적인 애곡(12-14)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12),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13),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14)."

 

  스가랴는 민족적인 슬픔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그는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그는 민족적인 애통의 모습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보편적으로 애통하지만, 동시에 개인적으로 슬퍼하게 될 것이다. 스가랴는 그 민족이 각기 나뉘어져서 메시아를 거부한 일에 대해서 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그때에 다윗의 족속이 애통하고 나단의 족속도 애통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나단이 선지자라고도 하고, 다른 이들은 다윗의 동생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전자가 옳다면 왕궁과 선지자들이 함께 애통한 것이 된다. 그러나 만일 후자가 맞다면 왕궁의 가장 높은 자들뿐 안라, 낮은 자들까지도 이 애통에 참여하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어느 견해가 맞는지 정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확증할 수는 없다.

 

  레위의 족속은 제사장의 가문을 의미한다. 시므이는 레위의 아들 게르손의 가문에 속한다. 서로 다른 제사장의 계급들이 여기에 함축되어 있다. 앞에서 지적한 지도자들, 그리고 그 땅의 평민들이 각기 따로 그 애통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 구절들(12:11-14)에는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애곡할 것이라는 사실이 다섯 번이나 언급되었다. 이것은 아내들이 각기 따로 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따로 거처하는 유대인의 관습의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은 본문의 내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스가랴가 의도한 것은 슬픔이 너무나 강렬하여 지상에서의 가장 가까운 관계인 남편과 아내 사이의 유대까지 초월한 것을 의미한다. 그때에 각 사람은 홀로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할 것이다.


1-5. 나를 바라보라!

  우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길은 얼마나 단순하며 얼마나 영화로운가!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계획과 자아로부터 눈을 돌려 세상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에게로 향하고 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기쁜 회심의 시간에 이스라엘은 자기가 거부하고 찌른 메시아, 십자가에 못박힌 죄인들의 구주를 바라봄으로써 자기 죄가 용서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